24.03.07 19:45최종 업데이트 24.03.0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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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기자말]

지난해 5월 1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학교폭력 및 사이버폭력 예방을 위한 '대한민국 비폭력 캠페인' 행사장에서 한 시민이 학폭 관련 설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죠. 현재의 학교폭력(학폭) 시스템은 일이 발생한 후 개입하는 사후 조치에 방점이 찍혀 있는 모습입니다. 사후 조치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일 텐데요.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더라고요. 의지만 있다면 말입니다.

학폭 0건이 된 학교

한 해 20여 건에 이르는 학폭 접수가 이뤄지던 학교가 있습니다. 학폭으로만 보면 관내 최고 수준이었죠. 학교장이 새로 부임하고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집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해당 학교는 학폭 0건을 기록합니다. 현재 딸이 재학 중인 학교, 서울 선일여자중학교(교장 정경영) 이야기입니다.


"비결이 뭔가요?"

이 얘길 듣자마자 저는 비결부터 물어봤어요. '학폭 없는 학교'는 모두의 바람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나 이룰 수 없는 목표 같은 것이죠.

선일여중 관계자들의 얘길 들으며 감이 잡히더라고요. 학폭 없는 학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교장의 의지였습니다. 교장 의지에 따라 학교 운영 방식이 바뀌니까요.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은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었대요. 그 옛날 국민학교 시절 조회 시간에 듣던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차원이 아니라 정말로 그러한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학교 운영을 해나가기 시작한 거죠.

적극적인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일단 학폭 처분(1호~9호)이 내려진 후에는 아무리 빵빵한 사후 조치가 취해져도 관련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새 학기를 앞둔 2월에 교사 연수부터 들어갑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선일여중은 한 발 더 들어갑니다. 단순 일회성 연수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교사들이 경험한 사례를 서로 나누며 학생들 간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 나가면 좋을지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잡아 나갑니다.

그래도 선명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교사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학교는 따로 전문가를 초빙해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합니다. 교사 혼자서 고민하지 않도록 학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빛의 속도로 예산 확보

학기가 시작되면 이제 각 담임과 학생인성부장은 서로 협력해 갈등 관계에 있는 학생들을 살핍니다. 교사들의 노력도 잇따르지만 교사의 노력만을 쥐어짜지도 않습니다. 전문성을 지닌 외부 인력을 적극 활용해요.

만약 갈등 관계에 있는 학생이 1:1이면 두 명의 외부 전문가를 따로 투입해 해당 학생에 대한 개별 심리지원과 상담 작업에 들어갑니다. 단기간에 흉내만 내고 끝내는 방식이 아닌 평균 3~4개월, 길게는 한 학기 내내 작업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처음엔 개별 지원 형식이지만 학생들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당사자들이 응할 경우 서로를 만나 갈등을 해결하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연결시키는 작업까지 들어갑니다.

한 반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도 있어요. 이럴 땐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반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관계 가꿈 프로그램을 실시합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학폭 관련한 짧은 쇼츠 영상(3분 내외)을 전교생이 관람해요. 일상에서의 지속적인 교육, 매주 수요일의 루틴인 셈입니다.

선일여중의 사례를 보면 특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외부 전문가를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인데요. 어느 학교인들 전문가 활용을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예산인 거죠.

2월이면 교육경비 보조금을 신청하라는 공문이 오는데 이때 빛의 속도로 신청해 관련 예산으로만 1000만 원 이상을 확보해 둔다고 합니다. 그 외 자체 예산 등을 더하면 한 해 1500만 원 이상의 예산을 학생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투자합니다.

전교생이 3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임을 감안하면 해당 사안에 대한 예산 규모는 큰 편입니다. 학교가 무엇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특수교육대상자에게 절실한 사회성
 

일상에서의 관계 회복 프로그램은 비장애 학생이 아닌 특수교육대상자에게 더욱 절실하다. ⓒ Unsplash

 
선일여중은 특수학교도 아니고 특수학급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특수교육대상자와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선일여중의 사례를 먼저 살핀 건 특수교육대상자의 학폭 대책에서 참고할 만한 점이 보였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선일여중 사례에 주목한 건 학생들 간 관계 회복 프로그램이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사실 일상에서의 관계 회복 프로그램은 비장애 학생이 아닌 특수교육대상자(대다수가 발달장애인인)에게 더욱 절실합니다.

발달장애인은 장애의 '어떤 특성'으로 인해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이 서툴기 그지없거든요. 방법이 서툴기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 상황이 발생하고 그 갈등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을 경우 학폭 사안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고요.

발달장애는 단지 인지가 느리게 발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회성 영역도 천천히 성장해요. 오죽하면 자폐는 '마음의 문을 닫아 자폐'라는 오해까지 받고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건 잘못된 정보입니다. 사회성이 느리게 발달할 뿐 사회성이 없는 게 아닙니다. 장애인이기에 앞서 인간이기에,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모든 학폭 사안은 관계의 문제로부터 비롯되는데 정작 친구와의 관계 맺기 경험이 절실한 특수교육대상자에겐 친구와 관계 맺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통합학급에선 '외로운 섬'이 되고, 특수학교에선 '모두의 안전'을 이유로 사회성 측면은 사실상 도외시된 채 개개인의 인지적 학습 발달에 더욱 집중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개별 행동수정이 사회성 교육


물론 특수교육에서도 사회성 측면을 위한 교육 활동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별교육 형태입니다. 흔히 도전적 행동이라 불리는 문제행동이 있는 학생에게 '긍정적 행동지원'이란 이름으로 개별 행동수정에 들어가는 게 특수교육에서 말하는 사회성 교육의 현실인 것만 같아요.

각 특수학교의 경우 긍정적 행동지원 관련 예산은 확보해도 선일여중 사례처럼 학생들 간 갈등 회복을 위한 상시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는 곳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 프로그램 자체도 없는 것 같고요(학폭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관계 회복 프로그램이 돌아갈 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때는 사전 예방이 아닌 사후 조치 차원에서 이뤄집니다).

"등교한 상태 그대로 하교시킨다"가 지상과제처럼 되어버린 교육 현실 속에서 학생들의 사회성 발달을 위한 교육이나 활동은 갈수록 지양되고 있는 듯한 추세로 보이거든요.

통합교육으로 가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그나마 특수학교는 긍정적 행동지원 예산이라도 확보하는데 통합교육 현실에서는 그 예산마저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작 6명을 위한 수백만 원의 쓰임을 관리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같은 관내에 있더라도 학폭 건수는 학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지역의 문제이거나 문화의 차이가 아니라는 뜻일 겁니다.

학폭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살피고 초동 대처에 공들이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공정성'을 내세우며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학폭에 넘겨버리는 학교도 있습니다. 학교 분위기 차이인 것입니다. 학교장의 의지와 교사들의 사고가 반영된.

특수교육대상자가 학폭 사안에 연루되면 비장애 학생에 비해 상황은 더 힘들고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사후 조치가 아무리 잘 돼 있다 한들 사전 예방만 하지도 못할 테고요.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학교란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자료사진) ⓒ 권우성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 목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열심히 학습해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대학에 입학하는 게 목적이 아닌 특수교육대상자는 무엇을 위해 학교를 다니고 어떤 것을 배워야 할까요.

결국 사람들과 어울려 살 줄 아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다양한 배움을 얻는 게 특수교육대상자가 학교에 다니는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요.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과 마주하며 익숙해지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에 능히 직면하며, 그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올바른 관계 맺기 방식을 익혀나가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 학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성 발달이 더디게 이뤄지는 발달장애인이기에 더 많은 관계의 경험을 쌓아가면서 말입니다.

특수교육대상자도 얼마든지 학폭에 연루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배워본 적 없고 경험해 본 적 없어 서툰 사회성 때문이라면 지금이라도 특수학급이 있는 교실이나 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의 학폭 관련 대처는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사후 조치보단 사전 예방. 그리고 개별 행동수정이 아닌 일상에서의 관계 가꿈 프로그램. 특수교육대상자의 학폭 사안에 있어 이런 것들이 학교 내 당연한 시스템으로 정착되길 바라는 건 엄마인 제 욕심인 걸까요. 설령 욕심이라 할지라도 자꾸만 욕심을 부려보고 싶은 이 마음은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일 겁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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