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4 07:09최종 업데이트 24.04.0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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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기자말]
윤희숙 국민의힘 후보(서울 중구성동구갑) 페이스북에 올라간 사진. 성수공고 부지에 특목고를 유치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윤희숙 후보 페이스북
 
[기사 대체 : 4일 오후 5시 25분] 

2016년 '무릎 꿇은 엄마들'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들어서기로 한 강서구 공진초 부지에 당시 지역구 의원이었던 김성태 의원이 한방 병원을 짓겠다고 주장해서 전국이 들썩였던 사건이었죠.


2024년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수학교가 들어서기로 한 성동구 성수공고 부지에 국민의힘 윤희숙 후보가 특목고를 신설하겠다고 총선 공약을 내건 것인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이미 서울시교육청 사업으로 진행 중인 일을 국회의원이(당선된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국회의원 개인의 힘이 국책 사업보다 더 크다는 게 증명되면 그때야말로 "이게 나라냐"를 외쳐야 할 상황이 돼 버립니다.

2016년 김성태, 2024년 윤희숙

2023년 11월 27일 서울시교육청은 '학생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 계획'을 발표하면서 폐교 예정인 성동구 성수공업고등학교 부지에 지체장애인 특수학교인 (가칭) 성진학교를 설립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2021년 8월 발표한 '장애 학생 교육권 보장 및 특수학교 여건 개선을 위한 공립 특수학교 설립 중장기 기본 계획'에 따른 것으로서, 서울시교육청은 2040년까지 서울에 공립 특수학교 9곳을 설립한다는 계획입니다.

성수공고는 올 2월 폐교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작년 하반기 성진학교 신설 관련 수정 계획안을 통해 당초 '개축'에서 (특수교육대상자의 편의를 고려해) '전면 신축'하는 것으로 설립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사업이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난데없이 장애물이 튀어나옵니다. 국민의 힘 윤희숙 후보(서울 중구성동구갑)가 총선 10대 공약 중 하나로 '성수공고 부지에 특목고 유치'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2016년 서진학교가 들어서기로 한 강서구 공진초교 부지에 한방 병원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성태 전 의원이 떠오릅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허준 선생 운운하며 한방 병원 설립을 주장했고, '무릎 꿇은 엄마들'에 전국 여론이 반응하자 뒤로 물러났었죠.
 
2017년 9월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지역 주민들에게 장애인 학교 설립을 호소하고 있다.신지수
 
윤 후보는 김 전 의원 사례로부터 배운 게 있었던 걸까요. 성수공고 부지가 학교 부지임을 감안해 한방 병원 같은 뜬금없는 공약이 아닌 특수학교를 특목고로 바꿔치기하는 묘수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학교 부지에 대한 학교이용계획은 교육청에 전권(권한)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이(설령 당선된다 하더라도) 지역구 주민들에게 한 약속이라며 마음대로 바꾸라 말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알기에 서울시교육청도 "후보자 공약일 뿐"이라며 별도의 대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의구심도 듭니다. 이미 21대 국회의원을 지내본 윤 후보가 이런 간단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을까요? 2016년의 김 전 의원은 몰랐던 게 확실해 보입니다. 만약 알았다면, 학교 부지에 병원을 짓겠다는 해괴한 발상 자체를 하진 않았겠죠.

그렇다면, 윤 후보는 적어도 '알고 있었기에' 부지 용도 변경을 하지 않아도 되는 특목고 설치를 공약으로 들고 나온 것이라면, 왜 그랬을지가 궁금해집니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국책 사업에도 얼마든지 힘을 쓸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정말 그런 겁니까?

직업학교 옆 특수학교

서울시교육청은 성수공고 부지에 특수학교와 직업학교를 1+1으로 설립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지역 내에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만 짓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직업학교까지 같이 들어서게 해 장애 비장애가 함께 어우러진 환경을 갖추겠다는 의도에서죠.  

특수학교에는 '전공과'라는 게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애인 학생이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엔 다소 무리가 있기에 직업학교 같은 개념으로 취업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보통 2년 과정으로 운영되는데 제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는 전공과가 1년으로 운영됩니다. 교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수학교가 부족하다 보니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는 인근 3개구(은평구, 마포구, 서대문구)에서 학생들이 모입니다. 학생들이 공부할 교실 공간도 부족해 초등학생들은 원래 교실 규격의 40%밖에 안 되는 '부엌 옆 골방' 같은 크기의 작은 교실에서 6년을 보냅니다.

게다가 학교 전체로 보면 총 37개 학급의 절반에 이르는 17개 학급이 학생수 과밀입니다. 특수학교가 부족해 그나마 '있는 특수학교'에 학생을 꾸역꾸역 밀어 넣기 때문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도 전공과 건물이 따로 있으면 좋겠습니다. 넓은 공간에서, 특별실을 충분히 갖춘 상태로, 전공과 과정도 2년으로 늘어나, '취업 준비'라는 전공과 본래 목적이 잘 실현되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특수학교 전공과가 이런 현실이라면. 특수학교 바로 옆에 직업학교가 있어서 특수교육대상자 학생들도 직업학교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로 인해 특수교육대상자의 학령기와 성인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 그거야말로 베스트입니다.

윤희숙 "특수학교 필요성 찬성한다"

윤희숙 후보는 4일 오후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입장문에서 윤 후보자는 "특수학교가 신속히 건립될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이며, 성동구 내에 유치되는 것 또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성수공고 부지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해당 지역은 이동이 어려운 지역이라 장애 학생들에게 더 안정적이고 편리한 학습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더 나은 대안 부지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서울시교육청 계획은 초기 단계라 학부모 및 지역구민과의 소통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겁니다. 

서진학교 사례도 언급했습니다. 윤 후보는 "서진학교 건립 과정처럼 학부모님들과 아이들, 지역주민들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입는 힘든 과정을 겪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특수학교가 지역과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학부모님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이해하고 협력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함에도 이를 무시한 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일방적인 통보로 소통의 기회를 차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윤 후보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런 듯 합니다. 특수학교 설립 필요성에 적극 찬성한다. 다만 다른 대안 부지를 찾아보자. 서울시교육청 계획은 초기 단계라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서진학교의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장애인의 부모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이해하고 협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지요? 

특수학교 조리돌림하기?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성진학교 설립 계획도서울시교육청
 
공식 입장문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행정공고가 나간, 진행중에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특수학교 설립 사업을 왜 다시 원점에서부터 논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장애 학생을 위한 더 나은 대안 부지를 찾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 또한 와닿지 않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김남연 대표는 "전형적인 특수학교 몰아내기 수법"이라고 말합니다. 

김 대표는 "대체 부지를 찾는 데만 몇 년, 부지를 찾고 나면 용역 정하고 서류 절차 들어가는 등 행정예고 하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린다"며 "게다가 '이미 확정된 부지에서 쫓겨온 특수학교'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대체 부지 인근의 주민들은 더 크게 반발하고 들고 일어난다. 대체 부지를 찾자는 자체가 특수학교 조리돌림하기"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중랑구에 들어서기로 했던 특수학교는 원안이었던 부지를 지키지 못했고, 대체 부지를 찾기 위해 전전하다 지금 10년째 특수학교가 설립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전국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전국장애인부모연대를 비롯한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4일 11시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특수학교 설립 무산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어머니들은 또 다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대한민국 학부모 중에 자식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지어달라고 무릎 꿇는 이들이 있었나, 왜 맨날 장애인의 부모들만 무릎까지 꿇어가며 학교 하나 지어달라고 호소해야 하는가. 

윤 후보는 지역주민과의 논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밝혔는데요. 학교가 들어서는 일이 지역주민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특수학교 설립은 '논의의 대상'이 아닌 '지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보통 마을 안에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교가 들어설 때는 지역주민들의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데 말입니다.  

혐오시설도 아니고, 위험시설도 아닌, 단지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입니다. 다만 학생들이 장애가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는 곱슬머리가 있고, 누군가는 땅콩 알레르기가 있고, 누군가는 참외 배꼽을 갖고 있듯이 누군가는 단지 장애가 있을 뿐입니다.  

비장애인으로 태어난 모두는, 누구도 '장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출생률은 줄어가는데 특수교육대상자 수는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가는 현실 속에서 내 아이, 내 손주, 형제자매의 아이와 친구의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가 될 가능성은 늘 상주하고 있습니다.

누가 언제 특수교육대상자의 부모가 되더라도 눈물 흘리지 않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그냥 학생이 학교를 다니는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할 수 있도록, 특수학교를 짓는 일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보험'이 되어야 합니다. 복지사회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는 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성수공고 부지에 원안대로 특수학교가 들어서길 바랍니다. 110cm, 18kg에 불과한 작은 아이가 먼 거리에 있는 특수학교에 다니기 위해 매일 3시간씩 왕복 통학을 하며 지치는 모습을 이제는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이가 집 앞에 있는 학교에 걸어 다니듯, 전국에 있는 모든 특수교육대상자도 집 앞에 있는 학교(그것이 특수학교든 특수학급이든)로 등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동구에서부터, 그 안전망이 원안대로 시행되길 바라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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