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말에 귀기울이는 이가 있으면 목청 높일 필요가 없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pxhere
아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저는 아들이 보내는 발신 정보를 제대로 수신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부모라고는 하지만 저 역시도 발달장애가 낯선 비장애인이었기에, 아들을 한 명의 '사람'이기에 앞서 '발달장애인'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딸이 같은 행동을 했으면 무슨 일일까 생각부터 했을 텐데 아들이 같은 행동을 하면 발달장애인의 문제행동이 발생했다며 머릿속에 삐뽀삐뽀 경보를 울렸던 거예요.
아들이 몸으로 하는 '말'을 발달장애인의 '문제행동'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 둘 사이에 소통이 될 리 있나요. 자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엄마가 답답한 아들은 크게, 더 크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온 표정과 행동으로 "내가 하는 말 좀 알아들으라고!"라며 소리치고 울부짖었던 거죠.
그랬던 아들과의 관계가 바뀌고 나아가 아들의 행동이 바뀐 건, 제가 더 이상 아들의 행동을 발달장애인의 문제행동으로 바라보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예요. 모든 행동을 '말하는 중'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예요.
사람은 말입니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풀리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비싼 돈을 내고 상담 치료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죠.
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집에서 엄마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자기 말을 알아듣고 자기 마음을 이해해 주는 순간 아들은 더 이상 크게 (행동으로)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더라고요.
작게 말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누군가가 있으면 목청을 높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같은 원리였던 겁니다.
말(언어)에 속지 말 것
세월이 흘러 아들은 이제 몇 마디 말을 할 줄 압니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맘마(밥)" "가가(과자)" "믈(물)" "자자(자자)"예요. 비록 몇 마디에 불과하지만 말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말을 하는 발달장애인의 말(언어)에 속으면 안 됩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모든 행동이 말"이라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해요. 말은 속일 수 있지만 (비언어적인) 행동은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아들은 한 번씩 심통을 부리고 나면 꼭 "믈!"이라고 외쳤어요. 목이 말라 짜증이 난 것처럼 굴었던 거죠. 처음엔 진짜 목이 말라 그런 줄 알고 물을 줬는데요.
가만히 관찰해보니 이 녀석, 한바탕 심통 부린 게 혼날까 봐 어른들이 용인하는 정당한 이유이자 자신이 할 줄 아는 몇 개 단어 중 하나인 물을 '혼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더라고요.
아하. 나랑 똑같구나 느꼈습니다. 남편한테 서운한 게 있을 때 저는 애먼 병뚜껑에 화풀이를 하곤 했어요. "에이씨~ 왜 이렇게 안 열려!"하면서 막 성질을 부린 거죠. 그러면 남편이 물어요. "왜? 뭐 때문에 그래?"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는 게 싫었던 전 말하죠. "병뚜껑 때문에". 정말 병뚜껑이 안 열려 화가 났나요? 아닙니다. 저는 말(언어)로 남편을 속인 겁니다. 상황을 회피한 겁니다. 아들처럼요.
그런데 아들만이 아니더라고요. 말을 잘하면 잘하는 발달장애 당사자일수록 더 많은 말(언어)로 진짜 마음을 가리는 경우를 수시로 봅니다.
아들처럼 혼날까 봐 그러기도 하고, 어제 TV에서 본 내용이 문득 기억나 반향어를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상황에 생각나는 말이 그 말밖에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면 말(언어)과 다른 마음을 어찌 알아채냐고요? 가만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마음 읽기'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 사회성입니다. 사회성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사회적 가면'을 능숙하게 쓰지 못하는 것도 발달장애인이 가진 큰 특성 중 하나에요.
비장애인과 달리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조합해 구조를 능숙하게 바꾸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발달장애인은 겉마음과 속마음을 다르게 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비유나 은유, 농담은 참 어려운 과제예요. 거짓말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거짓말도 합니다. 사람이니까요. 아들도 실제로는 학교 가는 게 싫어 심통을 부려놓고는 엄마한테 혼날까 봐 물 때문에 짜증 난 것처럼 거짓말을 하잖아요.
하지만 사회적 가면을 쓰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발달장애인은 거짓말을 할 때조차 "나 거짓말하고 있어요"라는 포스트잇을 얼굴에 붙여놓은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마음을 읽어주면 돼요. 일단 그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요즘 과도한 '마음 읽기'가 교육을 망쳤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봅니다. 그럴 때면 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왜냐면 비장애인에게는 그토록 난무했던 '마음 읽기'가 발달장애인에게는 시도조차 되지 않곤 했거든요.
과거의 저처럼, 발달장애인의 행동은 '말'이 아닌 '문제행동'으로 보고 행동으로 말하고 있는 그 속마음은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아직도 많거든요.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선생님도... 아무도 내 말을 듣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요.
마음읽기만 하고 교육이나 훈육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독 발달장애인에게는 교육과 훈육만이 넘쳐나고 있기에 비장애인의 반만이라도, 아니 반의반만이라도 마음읽기를 한 번 해보자는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달라지는 게 분명 있거든요.
사람이니까요. 장애인이기에 앞서 사람이니까요. 사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하나라도 있을 때 바짝 날이 선 채 쌓아올린 마음의 벽을 스르르 허물 수 있습니다.
AAC보다 중요한 건 관심과 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