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1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학교폭력 및 사이버폭력 예방을 위한 '대한민국 비폭력 캠페인' 행사장에서 한 시민이 학폭 관련 설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죠. 현재의 학교폭력(학폭) 시스템은 일이 발생한 후 개입하는 사후 조치에 방점이 찍혀 있는 모습입니다. 사후 조치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일 텐데요.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더라고요. 의지만 있다면 말입니다.
학폭 0건이 된 학교
한 해 20여 건에 이르는 학폭 접수가 이뤄지던 학교가 있습니다. 학폭으로만 보면 관내 최고 수준이었죠. 학교장이 새로 부임하고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집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해당 학교는 학폭 0건을 기록합니다. 현재 딸이 재학 중인 학교, 서울 선일여자중학교(교장 정경영) 이야기입니다.
"비결이 뭔가요?"
이 얘길 듣자마자 저는 비결부터 물어봤어요. '학폭 없는 학교'는 모두의 바람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나 이룰 수 없는 목표 같은 것이죠.
선일여중 관계자들의 얘길 들으며 감이 잡히더라고요. 학폭 없는 학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교장의 의지였습니다. 교장 의지에 따라 학교 운영 방식이 바뀌니까요.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은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었대요. 그 옛날 국민학교 시절 조회 시간에 듣던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차원이 아니라 정말로 그러한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학교 운영을 해나가기 시작한 거죠.
적극적인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일단 학폭 처분(1호~9호)이 내려진 후에는 아무리 빵빵한 사후 조치가 취해져도 관련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새 학기를 앞둔 2월에 교사 연수부터 들어갑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선일여중은 한 발 더 들어갑니다. 단순 일회성 연수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교사들이 경험한 사례를 서로 나누며 학생들 간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 나가면 좋을지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잡아 나갑니다.
그래도 선명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교사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학교는 따로 전문가를 초빙해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합니다. 교사 혼자서 고민하지 않도록 학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빛의 속도로 예산 확보
학기가 시작되면 이제 각 담임과 학생인성부장은 서로 협력해 갈등 관계에 있는 학생들을 살핍니다. 교사들의 노력도 잇따르지만 교사의 노력만을 쥐어짜지도 않습니다. 전문성을 지닌 외부 인력을 적극 활용해요.
만약 갈등 관계에 있는 학생이 1:1이면 두 명의 외부 전문가를 따로 투입해 해당 학생에 대한 개별 심리지원과 상담 작업에 들어갑니다. 단기간에 흉내만 내고 끝내는 방식이 아닌 평균 3~4개월, 길게는 한 학기 내내 작업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처음엔 개별 지원 형식이지만 학생들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당사자들이 응할 경우 서로를 만나 갈등을 해결하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연결시키는 작업까지 들어갑니다.
한 반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도 있어요. 이럴 땐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반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관계 가꿈 프로그램을 실시합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학폭 관련한 짧은 쇼츠 영상(3분 내외)을 전교생이 관람해요. 일상에서의 지속적인 교육, 매주 수요일의 루틴인 셈입니다.
선일여중의 사례를 보면 특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외부 전문가를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인데요. 어느 학교인들 전문가 활용을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예산인 거죠.
2월이면 교육경비 보조금을 신청하라는 공문이 오는데 이때 빛의 속도로 신청해 관련 예산으로만 1000만 원 이상을 확보해 둔다고 합니다. 그 외 자체 예산 등을 더하면 한 해 1500만 원 이상의 예산을 학생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투자합니다.
전교생이 3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임을 감안하면 해당 사안에 대한 예산 규모는 큰 편입니다. 학교가 무엇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특수교육대상자에게 절실한 사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