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5 17:01최종 업데이트 24.04.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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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기자말]
자신의 손톱을 자르는 사람 (자료사진)위키미디어 공용
 
특수교육에서 실생활 중심의 생활밀착형 '일상생활활동'이 수업 시수로 들어옵니다(2022 개정 특수교육 기본교육과정). '발달장애인의 엄마'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령기 아들의 교육활동이 성인기 아들의 직접적 삶과 연결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일상 생활에서도 할 수 있을까

성인기 당사자의 부모들한테 종종 듣는 말이 있습니다. 학령기와 성인기의 삶이 단절돼 있대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성인기의 실제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렇긴 합니다. 학창 시절 수학 시간엔 함수와 로그를 열심히 배웠지만 실제의 삶을 살아갈 땐 구구단만 한 게 없죠. 화학 시간엔 물질의 성질에 대해 배웠지만 현실의 삶에선 국물 간만 잘 맞춰도 장땡이고요.

그렇다고 학창 시절 배웠던 교육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때 배운 것들이 (비록 의식하진 못할지라도) 세상을 보는 이해를 넓히고,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고, 다양한 교양과 상식을 갖춰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했을 거예요.

발달장애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육받는 이유도 같을 겁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몸에 쌓여 성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데 있어 '기본값'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겠죠.

그런데 '특수교육대상자의 엄마'로 살아온 지도 어언 11년 차에 접어들다 보니(아들은 올해 중학교 3학년입니다) 아쉬운 점도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발달장애 학생에 대한 학교 교육이 교과 중심의 '인지 발달'에 많이 치우쳐 있거든요. 그 부분이 늘 아쉽습니다.

인지 발달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도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야 상황에 대한 이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치우침의 정도가 강하다 보니 학교 교육에서 '발달장애'라는 장애 특성에 대한 고려(단순히 인지 수준에 맞춘 학습 개별화가 아닌)가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제 아들을 포함한 발달장애인의 많은 수가 '일반화'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일반화'란 이런 겁니다. 치료실에서 열심히 배워 드디어 끈으로 리본 묶기에 성공했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예~" 아마 당사자보다 부모가 더 좋아할 거예요. 리본 묶기에 성공해서 기뻐하고 있는데 막상 치료실을 떠나면 운동화 끈을 묶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특수교육대상자의 부모라면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알 텐데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많은 발달장애인이 배운 것을 일상생활로 연결해 적용하는 일반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6학년 담임선생님이 준 용기... 아들은 홀로 잠바 지퍼를 채웠다
 
지퍼 채우는 법을 지속적으로 가르쳤던 6학년 담임 선생님 덕분에 아들은 혼자 힘으로 지퍼를 채우게 됐다.pxhere
 
안 그래도 일반화에 어려움을 겪는 아들, 그런데 배움의 속도마저 늦은 중증 발달장애인이기에 무엇이든 하나를 배우려면 수십, 수백 번의 반복을 통해 몸으로 체득해야만 하는 아들, 이런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저는 아들이 아닌 '저'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상황에 노출되는 현장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면서 아들이 적응하고 체득할 수 있도록 제 양육 방향성을 바꾼 것이죠.

7~8년 정도 되었을까요. '코로나19'에 걸려 7일 동안 격리당했을 때를 제외하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모든 주말마다 아들을 데리고 어디로든 나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식당에서 옆자리 사람의 밥그릇에 손 뻗지 않고 얌전히 밥 먹는 법, 교통카드 찍는 법,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날 때까지 기다리는 법, 마트에서 장 보는 법, 미용실에서 움직이지 않고 머리 깎는 법 등을 배우기 위해 수백, 수천 번의 경험을 쌓아왔고 지금도 쌓아가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에서는 이런 현장 위주의 일상생활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런 부분은 가정의 몫일 거예요. 하지만 교실 안에서도 실생활 밀착형 교육이 가능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아들이 6학년 때 일입니다. 그해 담임 선생님은 아들에게 매일 짧은 시간을 할애해 지퍼 채우는 법을 지속적으로 가르치셨어요.

솔직히 기대를 안 했습니다. '젓가락질은커녕 포크질도 잘하지 못하는 녀석이 어떻게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한 지퍼 채우기를 하겠나' 싶었던 거죠. 학년이 끝나가는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영상을 하나 받게 됩니다. 아들이 잠바를 입더니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잠바 지퍼를 채우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아들은 미세근육 발달이 느려 손 사용이 정교하지 못합니다. 16살인 지금도 동그라미를 그리지 못해요. 직선으로 선 긋기가 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런 아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온갖 치료실에선 '기본'을 익히는 데 주력해 왔어요.

그런데 그 기본이요. 생후 13개월부터 재활치료를 시작했으니 벌써 15년째 기본만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무래도 전문가 입장에서는 기본이 충실히 쌓여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만약 단계별 교육을 고려했다면 지퍼 채우기는 아마 10년이나 20년쯤 후에 시도해 봤을 영역이었을 겁니다.

지퍼를 채우기 위해 손 전체가 아닌 개별 손가락에 따로 힘주기, 손가락에 힘주는 법을 기르기 위해 스티커 붙이기, 스티커를 정교하게 붙이기 위해 칸 안에 붙이기 등 '기본'을 익히기 위한 시간으로만 반평생 정도가 소요됐을 거예요.

그런데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그 과정을 건너뛴 겁니다. 배움이 느리고 체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아이라는 점(장애 특성)을 고려해, 기본 영역이 아닌 실생활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작업 활동에 곧바로 들어가 지속적으로 반복 교육을 하신 거예요.

그 경험은 대단했습니다. 아들도 무엇이든 꾸준히 가르치면 할 수 있다는 양육자로서의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고요. 물질의 성질에 대해 몰라도 국 간만 잘 맞추면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 없는 것처럼 아들도 굳이 '기능적 발달 단계'에 매여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실생활 밀착형 일상생활 교육을 받으니 '일반화'에 대한 우려 없이 아들 삶에서 곧바로 적용이 가능해 더 좋았고요.

특수교육 과정에 들어온 '일상생활활동', 두 팔 벌려 환영한다
 
2022년 11월 9일 당시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기존에도 아들은 학교 안에서 인지 교육만이 아닌 일상생활 영역과 관련한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등교하면 옷걸이에 옷 정리하기, 차례대로 줄 서기, 개수대로 가 식판 정리하기, 화장실에서 기다리기 등 모든 게 일상생활과 관련한 교육들입니다.

특수교육에서 일상생활 활동은 교육의 당연한 영역 중 하나이긴 하지만 '학습'이 강조되는 중학 이후부터는 아무래도 인지 중심 교육으로 무게중심이 확 쏠리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아예 교육 과정에서 일상생활활동을 담보하게 됩니다. 2022교육과정에 따라 '일상생활활동'이 수업 시수로 들어오거든요. 교과서는 없습니다. 창의적체험활동처럼 학교와 교사가 연구한 활동들로 수업 시간을 채우게 됩니다.

수업 시수도 많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을 합해 300시간인데 3~4학년, 5~6학년,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수업시수는 더 늘어납니다. 일상생활활동으로만 수업을 꾸려도 되고 타 교과와의 연계도 가능합니다.

일상생활활동은 5개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의사소통, 자립생활, 여가활용, 신체활동, 생활적응의 5개 영역을 고루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학교별, 교사별 특성에 따라 영역 안에서도 더 강점을 갖는 부분이 나오게 될 듯합니다.

현재는 초등학교 1~2학년에 일상생활활동이 적용된 상태고요. 내년부터 단계별로 학년이 확대된다고 합니다. 

무엇을 배우는 걸까. 너무 궁금해 서울 한 특수학교의 초등 부장을 맡고 있는 선생님에게 문의를 했습니다. 초등 1~2학년을 직접 가르치지 않기에 구체적인 수업 내용을 알 순 없지만 손톱 깎기, 옷 개기처럼 생활밀착형 교육을 하지 않겠나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따로 얼마간의 시간을 할애해 아들에게 지퍼 채우기를 가르쳤던 것처럼 이젠 학생들은 수업 중 교실에서 당당하게 일상생활 영역을 배울 수 있게 됐다는 뜻이겠네요.

아들과 쌍둥이인 비장애인 딸이 그런 말을 한 적 있어요. 인터넷 뱅킹과 자동화기기 입출금 방법 등을 저한테 배우면서 "이런 건 학교에서 사회 시간에 배워야 하는 거 아니야? 부모가 안 가르쳐주는 애들은 어쩌라고?". 비장애인 학생에게도 생활밀착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일화였습니다.

딸도 그러한데 하물며 아들은 발달장애인입니다. 아들의 스무살 이후부터의 삶은 죽는 그 순간까지 매 순간이 평범한 일상생활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남들에겐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생활이 아들에겐 '장애 특성'으로 인해 반복해서 배우고 익히고 적응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일상생활활동이 특수교육 과정 안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아들과 평생의 '삶'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엄마 입장에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마음입니다. 과연 어떤 모습과 어떤 형태로 관련 교육이 이뤄지게 될까요. 설레는 마음으로 아들도 일상생활활동의 적용을 받게 될 내년의 특수교육을 기다려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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