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 채우는 법을 지속적으로 가르쳤던 6학년 담임 선생님 덕분에 아들은 혼자 힘으로 지퍼를 채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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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일반화에 어려움을 겪는 아들, 그런데 배움의 속도마저 늦은 중증 발달장애인이기에 무엇이든 하나를 배우려면 수십, 수백 번의 반복을 통해 몸으로 체득해야만 하는 아들, 이런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저는 아들이 아닌 '저'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상황에 노출되는 현장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면서 아들이 적응하고 체득할 수 있도록 제 양육 방향성을 바꾼 것이죠.
7~8년 정도 되었을까요. '코로나19'에 걸려 7일 동안 격리당했을 때를 제외하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모든 주말마다 아들을 데리고 어디로든 나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식당에서 옆자리 사람의 밥그릇에 손 뻗지 않고 얌전히 밥 먹는 법, 교통카드 찍는 법,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날 때까지 기다리는 법, 마트에서 장 보는 법, 미용실에서 움직이지 않고 머리 깎는 법 등을 배우기 위해 수백, 수천 번의 경험을 쌓아왔고 지금도 쌓아가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에서는 이런 현장 위주의 일상생활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런 부분은 가정의 몫일 거예요. 하지만 교실 안에서도 실생활 밀착형 교육이 가능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아들이 6학년 때 일입니다. 그해 담임 선생님은 아들에게 매일 짧은 시간을 할애해 지퍼 채우는 법을 지속적으로 가르치셨어요.
솔직히 기대를 안 했습니다. '젓가락질은커녕 포크질도 잘하지 못하는 녀석이 어떻게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한 지퍼 채우기를 하겠나' 싶었던 거죠. 학년이 끝나가는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영상을 하나 받게 됩니다. 아들이 잠바를 입더니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잠바 지퍼를 채우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아들은 미세근육 발달이 느려 손 사용이 정교하지 못합니다. 16살인 지금도 동그라미를 그리지 못해요. 직선으로 선 긋기가 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런 아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온갖 치료실에선 '기본'을 익히는 데 주력해 왔어요.
그런데 그 기본이요. 생후 13개월부터 재활치료를 시작했으니 벌써 15년째 기본만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무래도 전문가 입장에서는 기본이 충실히 쌓여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만약 단계별 교육을 고려했다면 지퍼 채우기는 아마 10년이나 20년쯤 후에 시도해 봤을 영역이었을 겁니다.
지퍼를 채우기 위해 손 전체가 아닌 개별 손가락에 따로 힘주기, 손가락에 힘주는 법을 기르기 위해 스티커 붙이기, 스티커를 정교하게 붙이기 위해 칸 안에 붙이기 등 '기본'을 익히기 위한 시간으로만 반평생 정도가 소요됐을 거예요.
그런데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그 과정을 건너뛴 겁니다. 배움이 느리고 체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아이라는 점(장애 특성)을 고려해, 기본 영역이 아닌 실생활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작업 활동에 곧바로 들어가 지속적으로 반복 교육을 하신 거예요.
그 경험은 대단했습니다. 아들도 무엇이든 꾸준히 가르치면 할 수 있다는 양육자로서의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고요. 물질의 성질에 대해 몰라도 국 간만 잘 맞추면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 없는 것처럼 아들도 굳이 '기능적 발달 단계'에 매여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실생활 밀착형 일상생활 교육을 받으니 '일반화'에 대한 우려 없이 아들 삶에서 곧바로 적용이 가능해 더 좋았고요.
특수교육 과정에 들어온 '일상생활활동', 두 팔 벌려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