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푸른 눈, 갈색 눈> 겉표지
한겨레출판
1968년 4월 5일, 마틴 루서 킹이 살해된 다음 날입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제인 엘리엇은 이날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학교에 출근해요.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3학년 학생 28명에게 고통스러운 실험을 할 생각이었어요.
갑자기 불거진 인종차별의 잔혹함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킨 뒤 그것을 삶의 일부분이 될 기억으로 각인시키겠다고 각오를 다진 것이죠.
학교가 있는 시골의 마을 주민은 모두 백인으로 구성돼 있었어요. 그동안 학생들은 흑인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엘리엇이 학생들에게 (평생 본 적도 없는) 흑인에 대해 무엇을 아는지 물었어요.
학생들이 대답합니다. "똑똑하지 않다" "깨끗하지 않다" "자주 싸운다". 동정과 혐오가 혼재한 고정관념. 엘리엇은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우리 반을 푸른 눈과 갈색 눈 두 그룹으로 나누면 어떨까?" 엘리엇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오늘은 갈색 눈을 가진 그룹이 푸른 눈을 가진 그룹보다 우월한 날이라고 합니다.
갈색 눈은 푸른 눈보다 똑똑하고 멋있기 때문에 운동장에 먼저 나가 놀고, 급식도 먼저 먹으며, 교실에서도 좋은 자리에 앉아 수업을 받아요. 반대로 푸른 눈은 열등하기 때문에 자세도 지적을 받고, 줄반장도 할 수 없으며, 초대받지 않는 한 갈색 눈 친구와 놀 수도 없어요.
아이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엘리엇이 말합니다. "정말이야. 진짜로 그렇거든(진짜로 갈색 눈이 푸른 눈보다 우월하거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함께 어울려 놀던 아이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갈색 눈 아이들은 푸른 눈 아이들을 깔보는 '잔인한 우월감'에 사로잡힙니다. 게다가 즐겁고 행복해지며 학업 성취도까지 높아져요. 우월한 존재가 됐으니까요.
반대로 푸른 눈 아이들은 분노하고 슬퍼합니다. 평소에 잘하던 일까지도 버벅거리며 실수해요. 그렇게 푸른 아이들에게 잔혹한 하루가 지납니다.
다음날이 됐어요. 엘리엇이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갈색 눈이 푸른 눈보다 낫다고 말했잖아. 그건 사실이 아니었어. 사실은 푸른 눈이 갈색 눈보다 훨씬 똑똑해". 엘리엇의 말에 따라 두 그룹의 처지는 곧바로 뒤바뀝니다.
푸른 눈을 가진 몇몇 아이는 복수를 다지며 이를 갈기도 하죠. 불과 몇 분 사이에 갈색 눈 아이들은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며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전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푸른 눈 아이들이 갈색 눈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전날 갈색 눈 아이들이 푸른 눈 아이들을 대했을 때보다 더 잔인하고 악랄해졌다는 것이었죠.
이틀간의 실험이 끝납니다. 결론을 낼 시간이죠. 엘리엇이 말합니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사실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이틀 동안의 실험으로 교실 안에 팽팽하게 감돌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어떤 아이들은 울음까지 터트려요. 그리고 단지 눈동자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상황에 처했을 때 느낀 점을 아이들이 저마다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차별이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기분이 더러워졌다. 차별은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 "차별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평생 화난 채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작은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경계, 편견, 차별, 실천
제인 엘리엇의 차별수업 이야기는 인종차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행해졌지만 푸른 눈과 갈색 눈을 장애와 비장애에 대입해 바라봐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이 실험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에요. 어제까지 함께 놀던 친구에게 다르다는 '경계'가 지어진 순간, 그로 인해 한쪽은 우월하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는 '편견'이 머릿속에 입력되자, 아이들이 기꺼이 '차별'을 '실천'에 옮겼다는 점이에요.
장애 이해, 장애 공감 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교육에 '장애인은 다르다'가 강조돼선 안 되는 이유이며 장애인을 도와줘야 할 안타까운 존재로 레이블링 해서도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장애이해교육을 하면서 이런 구체적이고 세세한 부분(관점에 대한)까지 신경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압니다. 하지만 특수교육대상자를 교육하는 특수교사나 양육하는 학부모라면 우리들의 장애인식은 그 출발점이 '같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어요. 발달장애인을 만나본 적조차 없는 이들도 많거든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알잖아요. 우리 학생들(특수교육대상자)이 똑같은 감정과 마음과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다만 표현 방법이 서툴거나 낯설(다를) 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우리 학생들에 대해 모르고 사는 이들에게 온전히 전하는 게 장애이해교육의 참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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