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8 16:31최종 업데이트 24.01.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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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기자말]

2012년 발도르프 교육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 학년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강원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초등학교의 모습. 1학년 신입생들이 '움직이는 책상'에 앉아 4차원 칠판으로 수업 중인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발도르프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게 어느덧 6~7년 전 일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고유한 개인성 (Individuality)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교육방법론"이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미리 확정된 교육목표로 학생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학생 개개인 안에 잠자고 있는 잠재력을 일깨우는 교육방법론이라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예술을 중요한 하나의 요소로 사용하고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특수교육의 근간이 개별화교육이잖아요. 특수교육에 발도르프 교육법을 적용하면 진정한 의미의 개별화교육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교과 중심, 진도 중심 특수교육의 현실을 알게 되면서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기대는 점점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전국 각지에서 발도르프 교육을 교실 현장에서 적용 중인 특수교사들은 계속 만날 수 있었지만요.

"모든 특수교육에 적용하면 참 좋을 텐데…" 아쉬움을 담은 채 발도르프 교육은 일부 교사들만의 특별성으로 남겨둬야겠다며 포기하려는 찰나 서울과 광주에서 발도르프 교육법을 특수교육에 적용 중인 특수교사 두 분을 만나면서 다시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을 통해 이미 '발도로프 정신'이 특수교육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슈타이너 박사의 인지학
 

오스트리아 출신의 학자이자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 ⓒ 위키미디어 공용

 
발도르프교육은 100여 년 전 루돌프 슈타이너박사가 인지학을 기반으로 발전시킨 교육방법론입니다. 모든 학생을 '되어져 가는 인간존재'로 보고 교육자는 학생 개인의 고유성에 집중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잠재력)을 깨어나게 하는 '깨우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말만 들어도 멋집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 같아요. 당장 수능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 일반 교육에서 발도르프 교육법을 시행하면 숱한 저항에 부딪힐 테니까요.

하지만 특수교육으로 눈을 돌리면 이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습니다. 자폐성 장애인인 제 아들에게 기대하는 건 국어 점수나 수학 점수가 아닙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타인과 어우러져 사는 법을 익히고, 흥미를 갖고 스스로 발전할 의지가 있는 배움의 영역을 늘리는 거예요.

이런 제 아들에게 학생 개개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활동으로부터 기술과 태도를 익혀나가는 발도르프 교육은 여러 면에서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알기 시작한 초창기에 들뜬 마음으로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의 교장선생님에게 제안을 했어요. "선생님, 저희 학교에도 발도르프 교육법을 적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당시 교장선생님은 "발도르프? 그림이나 그리는 거요? 그건 이미 10년 전에 망해서 없어진 교육이에요"라며 단칼에 거절하셨어요.

이미 망해서 없어진 교육이라고요? 이상하네. 그렇다면 전국 각지에서 많은 특수교사들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적용 중인 발도르프는 다른 발도르프인가? 대체 뭐지?

예술 중심 교육, 습식 수채화

발도르프 교육이 그림이나 그리는 거라는 오해를 받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예술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술을 통해 학생 내면의 고유성을 알 수 있고 예술적 활동을 통해 내면을 외부로 표현하는 능력을 함양시키면서 내적 세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때 예술은 하나의 방법론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실제로 발도르프 교육을 적용 중인 교사들이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론 중 하나가 습식 수채화입니다. 젖은 종이와 도구를 이용해 처음엔 한 가지 색으로만 칠해봅니다. 물의 농도, 물감의 양에 따라 종이에 번져가는 색의 다른 느낌을 느껴봅니다.

다음엔 두 가지 색으로 칠하기. 모양은 아무거나 좋습니다. 동그라미도 좋고 선도 좋고 면도 좋습니다. 개인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그리면 됩니다. 서로 색이 겹치는 부분에선 고유의 색이 변하면서 두 가지 이상의 색이 나타나는 모습도 관찰합니다. 그런 다음 색을 하나씩 더해갑니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서로의 작품을 관찰합니다. 각자가 지닌 내면에 따라 다양한 작품이 완성돼 있을 거예요. 누군가의 내면은 노란색 주황색 동그라미가 가득할 것이고, 누군가는 빨갛고 까만 직선으로 강렬한 자기표현을 할 것이고, 누군가의 마음속은 온통 파란 하늘과 흰 구름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보게 될 거예요.

습식 수채화의 또 다른 장점은 학생들이 물을 접하면서 마음의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습식 수채화만이 아닌 물기 있는 진흙을 주무르며 모양을 만드는 놀이도 같은 이유에서 많이 시행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이 배움 도구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감각을 중요시합니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해 필기로 익히는 교육법이 아니라 손으로 다양한 감각을 익히면서 학생이 좋아하는 감각을 찾아내 그런 활동으로부터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술이나 수공예 관련 교육을 많이 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 속의 모든 것을 도구로 활용합니다.

칠판에 있는 필기를 통해 숫자와 더하기를 익히는 게 아니라 말캉말캉한 콩주머니를 손에 쥐고 감각을 느끼면서 숫자도 익혔다가 징검다리도 만들었다가 다시 허물어 벽도 쌓으면서 더하기와 빼기를 배웁니다.

학교 텃밭을 직접 일구며 공동체성을 느끼기도 하고 외부에서의 체험학습을 통해 학습을 몸으로 체득하게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체험학습이라도 발도르프 교육은 다르게 진행합니다.

교과서로 사자에 대해 먼저 배우고 난 뒤 동물원으로 현장학습을 가면 학생의 상상력은 발현될 기회가 없이 차단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발도르프 교육은 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교사가 먼저 들려주고, 이야기를 통해 상상한 사자의 모습을 그림에서 시, 글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상상의 힘이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음을 먼저 익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자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학생들에게 개념화되어 있을 때 동물원에 사자를 보러 갑니다.

어떤 접근 방법이 학생의 내적 발전을 꾀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
 

2019년 9월 4일 브라질 상파울루에 있는 미카엘 학교에서 열리는 미술수업에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학교는 발도르프 교육을 채택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발도르프 교육은 '사람에 대한 진지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교육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지학(인간에 대한 앎을 배워가는 학문)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법을 특수교육에 적용 중인 한 교사는 "우리의 교육이 어디에서 출발하는 게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에 따르면 대학에서 배운 장애인은 장애명에 따른 지적장애 몇 급, 자폐성 장애 몇 급이었는데 막상 학교 현장에 가니 장애명에 따른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교실에 있더랍니다.

"우리가 학생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 있어서 장애명에 따른 분류는 정작 그 사람을 선명하게 그리지 못하게 했어요."

장애명에 따른 분류로서의 학생, 자연과학적인 측면에서 장애인을 설명할 땐 현상과 결과가 중요했답니다. 그럴 땐 장애가 결점이 되어 장애에 따른 결점을 고치고 수정하고 교정하는 데 교육의 목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인지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말해 어떤 결과가 있기 위해선 '개인의 감정과 참자아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더 중요한 요소'라는 관점에서 학생을 바라보니 다른 게 보이더라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학생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학생을 믿으면 자신(교사)이 아닌 학생이 방법을 찾아내더라는 발견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발도르프 교육에선 교사가 학생을 만나는(인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교사 관점에 따라 학생은 고쳐야 할 것 많은 결점 있는 장애인일수도, 성장하고 싶어 하는 잠재력이 가득한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수교육 안에 스며든 '발도르프 정신'

'아들의 엄마'인 저는 발도르프 교육이 특수교육의 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통합교육을 받든 특수학교에 다니든, 특수교육대상자를 만나는 모든 학교 구성원이 장애인이 아닌 사람의 관점에서 학생들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아들의 장애로 인한 결점을 고치고 수정하는데 학교생활 대부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아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그것에서부터 아들의 잠재력이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성공 경험을 통해 아들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행동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뒤따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발도르프 교육은 이미 10년 전에 망한 교육이라는 오해마저 받는 현실. 이에 대해 발도르프 교육을 현장에서 적용 중인 특수교사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발도로프 교육이라고 콕 짚어서 무언가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방법론은 개인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고, 다만 학생을 이해하는 관점 변화와 학습 방법 다양화에 대한 고민은 이미 널리 퍼져있다고, 발도르프 교육이 망했는지 안 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발도르프 정신'은 살아서 특수교육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장이 늘고 있다고 말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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