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8 19:54최종 업데이트 23.12.2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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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기자말]

발달장애인 아들은 '몸'으로 말을 했다. ⓒ Unsplash

 
학교 현장에서 만나는 특수교육대상자 중 소통에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장애 유형이 있다면 발달장애일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의 많은 수가 언어(말)로 유창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다만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얘기는 특수교육법이나 의학서적에 나오는 얘기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사실 '발달장애인과 대화하는 법' 같은 건 없거든요. 남자와 여자가 대화하는 법, 노인과 청년이 대화하는 법이 따로 없듯 말입니다.

아직 할 줄 아는 말이 10개 단어도 되지 않는 15살 아들과 함께 살면서 알게 되고 깨달은 바가 있어 경험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 또한 아들(자폐성 장애)의 언어를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들을 나와 똑같은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됐기 때문입니다.
 
몸으로 하는 말
 
자녀가 있는 분이면 알 거예요. 신생아 때 아기들은 말을 못 하잖아요. 그렇다고 자기표현을 못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요. 처음엔 맨날 울기만 하다가 어느 날부턴 웃기도 했다가 그다음엔 화난 표정도 지어 보이고 밥상 앞에선 안달난 표정도 드러냅니다.

분명 아기는 말을 못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모는 아기의 말을 알아듣습니다. 몸으로 하는 모든 행동이 곧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 딸과 발달장애인 아들을 쌍둥이로 키우면서 소통이 되지 않는 아들 때문에 많이 답답했어요. 딸은 조잘조잘 말도 잘하는데 아들은 맨날 울고 떼만 쓰는 것 같았죠. 만 3세부터 언어치료실에 다녔지만 치료실 전기세 내려고 다니나 싶은 순간도 많았어요. 말을 해야 할 텐데 왜 말을 안 할까.

알고 보니 말 못 하는 아들은 매 순간 수많은 말을 하고 있었어요. 말을 못 하는 아기가 그랬듯 말입니다. 표정으로, 눈빛으로, 의성어로, 의성어의 높낮이로, 손가락과 다리 움직임으로, 아들은 온몸을 활용해 매 순간 시끄러울 정도로 말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발달장애인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고 싶나요? 그러면 가만히 눈으로 보아주세요. 눈으로 들어주세요. 발달장애인이 하는 모든 행동이 곧 말이거든요. 말(언어)로 하는 소통이 가능한 이도, 가능하지 않은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문제행동'으로 바라볼 때
 

자신의 말에 귀기울이는 이가 있으면 목청 높일 필요가 없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 pxhere

 
아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저는 아들이 보내는 발신 정보를 제대로 수신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부모라고는 하지만 저 역시도 발달장애가 낯선 비장애인이었기에, 아들을 한 명의 '사람'이기에 앞서 '발달장애인'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딸이 같은 행동을 했으면 무슨 일일까 생각부터 했을 텐데 아들이 같은 행동을 하면 발달장애인의 문제행동이 발생했다며 머릿속에 삐뽀삐뽀 경보를 울렸던 거예요.

아들이 몸으로 하는 '말'을 발달장애인의 '문제행동'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 둘 사이에 소통이 될 리 있나요. 자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엄마가 답답한 아들은 크게, 더 크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온 표정과 행동으로 "내가 하는 말 좀 알아들으라고!"라며 소리치고 울부짖었던 거죠.

그랬던 아들과의 관계가 바뀌고 나아가 아들의 행동이 바뀐 건, 제가 더 이상 아들의 행동을 발달장애인의 문제행동으로 바라보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예요. 모든 행동을 '말하는 중'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예요.

사람은 말입니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풀리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비싼 돈을 내고 상담 치료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죠.

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집에서 엄마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자기 말을 알아듣고 자기 마음을 이해해 주는 순간 아들은 더 이상 크게 (행동으로)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더라고요.

작게 말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누군가가 있으면 목청을 높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같은 원리였던 겁니다.
 
말(언어)에 속지 말 것
 
세월이 흘러 아들은 이제 몇 마디 말을 할 줄 압니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맘마(밥)" "가가(과자)" "믈(물)" "자자(자자)"예요. 비록 몇 마디에 불과하지만 말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말을 하는 발달장애인의 말(언어)에 속으면 안 됩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모든 행동이 말"이라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해요. 말은 속일 수 있지만 (비언어적인) 행동은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아들은 한 번씩 심통을 부리고 나면 꼭 "믈!"이라고 외쳤어요. 목이 말라 짜증이 난 것처럼 굴었던 거죠. 처음엔 진짜 목이 말라 그런 줄 알고 물을 줬는데요.

가만히 관찰해보니 이 녀석, 한바탕 심통 부린 게 혼날까 봐 어른들이 용인하는 정당한 이유이자 자신이 할 줄 아는 몇 개 단어 중 하나인 물을 '혼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더라고요.

아하. 나랑 똑같구나 느꼈습니다. 남편한테 서운한 게 있을 때 저는 애먼 병뚜껑에 화풀이를 하곤 했어요. "에이씨~ 왜 이렇게 안 열려!"하면서 막 성질을 부린 거죠. 그러면 남편이 물어요. "왜? 뭐 때문에 그래?"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는 게 싫었던 전 말하죠. "병뚜껑 때문에". 정말 병뚜껑이 안 열려 화가 났나요? 아닙니다. 저는 말(언어)로 남편을 속인 겁니다. 상황을 회피한 겁니다. 아들처럼요.

그런데 아들만이 아니더라고요. 말을 잘하면 잘하는 발달장애 당사자일수록 더 많은 말(언어)로 진짜 마음을 가리는 경우를 수시로 봅니다.

아들처럼 혼날까 봐 그러기도 하고, 어제 TV에서 본 내용이 문득 기억나 반향어를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상황에 생각나는 말이 그 말밖에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면 말(언어)과 다른 마음을 어찌 알아채냐고요? 가만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마음 읽기'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 사회성입니다. 사회성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사회적 가면'을 능숙하게 쓰지 못하는 것도 발달장애인이 가진 큰 특성 중 하나에요.

비장애인과 달리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조합해 구조를 능숙하게 바꾸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발달장애인은 겉마음과 속마음을 다르게 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비유나 은유, 농담은 참 어려운 과제예요. 거짓말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거짓말도 합니다. 사람이니까요. 아들도 실제로는 학교 가는 게 싫어 심통을 부려놓고는 엄마한테 혼날까 봐 물 때문에 짜증 난 것처럼 거짓말을 하잖아요.

하지만 사회적 가면을 쓰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발달장애인은 거짓말을 할 때조차 "나 거짓말하고 있어요"라는 포스트잇을 얼굴에 붙여놓은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마음을 읽어주면 돼요. 일단 그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요즘 과도한 '마음 읽기'가 교육을 망쳤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봅니다. 그럴 때면 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왜냐면 비장애인에게는 그토록 난무했던 '마음 읽기'가 발달장애인에게는 시도조차 되지 않곤 했거든요.

과거의 저처럼, 발달장애인의 행동은 '말'이 아닌 '문제행동'으로 보고 행동으로 말하고 있는 그 속마음은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아직도 많거든요.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선생님도... 아무도 내 말을 듣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요.

마음읽기만 하고 교육이나 훈육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독 발달장애인에게는 교육과 훈육만이 넘쳐나고 있기에 비장애인의 반만이라도, 아니 반의반만이라도 마음읽기를 한 번 해보자는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달라지는 게 분명 있거든요. 

사람이니까요. 장애인이기에 앞서 사람이니까요. 사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하나라도 있을 때 바짝 날이 선 채 쌓아올린 마음의 벽을 스르르 허물 수 있습니다.  
 
AAC보다 중요한 건 관심과 애정
 

국립특수교육원 유튜브 채널의 <함께 사용하는 보완대체 의사소통체계> 영상 캡처.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이 카페에서 주문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림판. ⓒ 국립특수교육원 유튜브 캡처

 
발달장애 학생과의 소통을 위해선 가만히 관찰하고 눈으로 보면 들린다는 것을 아마 많은 학교 구성원은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몰라서가 아닐 겁니다. 알지만, 알면서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압니다. 학교엔 한 학생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게다가 학교 현장에서 발달장애 학생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교사들이 언어치료사가 된 듯 사회에서 통용되는 의사소통 방식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그림 카드나 사진 같은 AAC(의사소통대체기구)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노력에 감사합니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저는 한 가지 부탁을 하고자 합니다. 이 모든 노력에 앞서 애정 어린 관심 한 번을 부탁하고자 해요.

아무리 그림카드(AAC)를 내밀어도 그림카드를 내미는 손길과 눈빛에 피로감이 있으면 단번에 알아채거든요. 말로 유창하게 소통하는 게 어려워서일까요, 그래서 진화된 어떤 특성일까요?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감각이 기막히게 발달하는 게 발달장애의 또 다른 특성 중 하나라면 하나입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특수교육대상자가 학교 안에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그건 당사자 한 명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 친구들과 교사 모두가 힘든 상황에 놓여요.

애정 어린 관심과 손길 한 번, 문제행동이 아닌 말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말(언어)에 속지 않는 마음 읽기... 그런 것들을 통해 발달장애 학생과의 의사소통 범위가 확대되면 그때 비로소 보게 될 거예요. 당사자의 행동 변화, 교실 내 분위기 변화, 교사의 마음 변화, 그 모든 즐거운 변화를요. 그로 인해 발달장애 학생만이 아닌 학교 구성원 모두가 더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분명 그리 될 겁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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