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09 14:03최종 업데이트 23.12.0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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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기자말]

자료사진 ⓒ pixabay

 
교실에 문제행동(도전적 행동, 어려운 행동)이 있는 학생이 있으면 교사와 학생들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그 학생이 발달장애가 있는 특수교육대상자라면 주변인들은 더 힘든 상황에 놓입니다.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잘 모르겠거든요.

비장애 학생에게 그랬듯 말(언어)로 훈육하고 지도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방법이 잘 통하지 않으니 난감합니다.

학폭 가해자였던 A군

통합교육 중인 A군은 친구들의 수업을 수시로 방해했고 특수학급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진단을 받은 A군은 특수학급에 가는걸 '분리'라 느껴 스스로 거부했고 타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오면 상담실인 위클래스 교실에 가 있곤 했대요.


이런 상황이 이어지고 급기야 학교폭력까지 일어나자, 서울시교육청 행동중재지원팀이 투입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현장(교실)을 방문해 A군을 면밀하게 관찰했어요. 그랬더니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A군이 학교에 왔을 때 마음 둘(의지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원반(1학년 1반 등 소속된 원래반) 교실에 자기 자리가 있고 특수학급에도 마찬가지였지만 A군은 그 공간이 '내 자리'라고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소속감이 없었던 겁니다.

수업 시간을 살펴봤어요. 어떤 수업에도 참여하지 않았죠. 내용이 어렵고 못 따라가니 수업 시간이 무료했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에게 물건을 던지거나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각도에서 관찰하고 고민한 전문가들은 일단 A군에게 학교에 갈 목적부터 만들어 주기로 했어요. 학교는 가야 하는 곳, 학교는 즐거운 곳, 학교는 안전한 곳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1차 과제라고 생각한 거죠.

특수학급 한 켠에 A군이 '내 자리'라고 느낄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특수학급으로의 분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A군이 학교 안에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구조적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어요. '내 자리'에서부터 시작해 학교 전체로 소속감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죠.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과정에 A군이 주체적으로 함께 했습니다. 특수교사와 함께 인터넷 검색을 하며 이런 물품을 살까 저런 물품을 살까 논의했고 A군이 선택한 것들로 공간을 꾸몄어요.

동시에 중재지원팀은 A군의 강점이 무엇일까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A군은 수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 친구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학생이었어요. 그런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부정적 언행만 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죠.

또 관찰 결과 A군은 경도의 지적장애가 있었어요. 그런데 ADHD 진단만 받았으니 학교와 가정에서 A군에게 적절한 수준의 학습을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죠. 할 수 없는 것을 해야만 하는데 본인 능력으로는 하지 못하니 어쩌면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A군의 '욕구'를 알아본 중재지원팀은 수업 중 A군이 할 수 있는 일,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나씩 해나갈 수 있도록 돕고 학교에서의 하루 일과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답니다. 학교생활에 대한 주체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 겁니다.

학교를 가야 할 이유가 만들어지고 학교에 가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생기자 A군은 학교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습니다. 이는 수업 중 행동 변화, 친구들과의 관계 변화, 교사와의 관계 변화로까지 이어졌습니다. 1년의 시간이 지난 후 A군은 완전통합(특수학급에 가지 않는)을 능히 하는 학생이 되었답니다.

PBS 안에 들어온 작업치료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 기재돼있는 PBS에 대한 설명 ⓒ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캡처

 
위 사례는 올해 서울시교육청 '학교 차원의 긍정적 행동지원(School Wide Positive Behavior Support)' 행동중재지원팀에서 컨설팅한 사례입니다.

각 시도교육청은 특수교육대상자의 문제행동을 돕기 위해 긍정적 행동지원(PBS) 사업을 운영 지원합니다. 하지만 모든 학교에 지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신청한 학교에 한해서 교육청이 지원합니다.

각 학교의 신청을 받은 교육청은 예산 등 학교 전체의 긍정적 행동지원 시스템에 대한 지원을 하기도 하고, 각 교육청과 연계된 행동중재지원팀이 (학교를 통해 신청한 사례에 대해) 직접 개별 학생 지원에 나서기도 합니다.

주목할 것은 몇 년 전부터 긍정적 행동지원 안에 작업치료사가 투입됐다는 겁니다.

기존에 긍정적 행동지원은 행동수정, 즉 ABA(응용행동분석, Applied Behavior Analysis)처럼 여겨지기도 했어요. PBS의 근간이 ABA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사례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학생의 참여 활동에 초점을 맞춰보자는 관점의 변화가 시작된 겁니다. 일상 활동의 참여를 지원하는 작업치료가 긍정적 행동지원 영역 안에 들어왔습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 경우 행동중재지원팀이 전문가 40여 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ABA전문가와 작업치료사가 반반의 비율로 구성돼 있으며 사례 컨설팅에 나설 때면 ABA전문가와 작업치료사가 짝을 이뤄 나간다고 합니다.

A군 사례는 작업치료적 관점에서 A군의 학교생활 참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례입니다. 물건을 던지고 친구를 때리고 수업 시간에 방해하는 문제행동을 어떻게 고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A군이 학교생활에 더 많은 참여를 할 수 있을까부터 먼저 고민했던 사례인 것이죠.

A군 사례를 직접 컨설팅한 작업치료사는 말합니다. 무엇이든 잘 참여하고 있는 동안에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당사자가 할 수 있는 기능 안에서 어떻게 참여적 활동을 높일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작업 활동을 찾아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문제행동의 끝판왕이었던 아들

자폐성 장애가 있는 제 아들은 초등 저학년일 때 '문제행동의 끝판왕'이라 불러도 무리 없을 정도로 심각한 행동의 문제가 있었어요. 반 친구들과 교사들, 심지어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까지 제 아들한테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죠. '아들 데리고 세상을 하직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자주 할 정도였어요.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학교 차원의 긍정적 행동지원도 여러 해 신청했고 그때마다 전문가 컨설팅도 받았어요. 그런데 학교와 가정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문제행동은 소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더라고요.

아들의 문제행동이 극에 달했던 2019년, 신기하게도 이때가 아들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어요. 처음으로 아들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인 교사를 만났거든요.

엄마인 나도 그동안 아들을 '문제행동 있는 발달장애인'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아들의 행동을 '문제'가 아닌 '언어'로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더라고요. 말을 못 하는 아이가 몸으로 하는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죠.

이때 담임 선생님에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태도'에 대해서요. 반성도 많이 했고요. 그렇게 아들의 행동이 '문제'가 아닌 '언어'가 되고 나자 아들이 어떤 어려움을 호소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그에 맞춰 학교생활과 가정에서 아들의 참여를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찾게 되고요.

신기한 건 말입니다. 아들의 참여 활동이 많아졌을 뿐인데 아들의 행동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학교생활에서 참여 활동이 많아지자 아들은 더 이상 친구들을 때리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학교 구성원과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 즐거워 매일의 학교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 구성원들에게 소속감과 친밀감이 형성된 것이죠.

그렇게 '관계'가 달라지자 심지어 의욕(내적 동기)까지 솟아나 스스로 학습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됐답니다. 다음 해 코로나가 터지고 한동안 학교가 문을 닫으며 아들은 다시 퇴행했지만요. 발달장애인에겐 '퇴행'도 큰 과제입니다.

지금 와 돌이켜보니 이때 담임 선생님의 접근방식이 작업치료적 관점이었던 것 같아요. 아들의 행동을 문제행동으로 보고 고쳐야 할 목표를 먼저 제시한 게 아니라 현 상태의 아들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 참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나갔거든요. 그러자 결과적으로 행동이 달라졌고요.

작업치료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려면

이런 경험이 있는 전 긍정적 행동지원 영역에 작업치료가 들어온 게 참으로 반갑습니다. 하지만 작업치료적 접근이 학교 안에 당연한 문화로 정착되기 위해선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작업치료를 단순히 치료실 안에서 미세근육 발달을 위한 치료 정도로 알고 있는 대다수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또 실제로 작업치료가 리본 묶는 법을 가르치는 손가락 운동이 되지 않기 위해선 작업치료사가 좁은 치료실이 아닌 학교 현장, 가정 현장, 마을 곳곳의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도 마련돼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고 참여할 때 자신의 가치를 느끼고 구성원에 대한 책임감도 생깁니다. 활동과 참여가 전무한 상태에서 "얌전히 있을 것"만 강요당하는 개인은 오히려 공동체를 파괴하고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도 같아요.

교실에 문제행동 있는 학생이 있어서 힘든가요? 그렇다면 그 학생의 행동을 고치기 위해 애쓰는 에너지를 그 학생의 참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보면 어떨까요. 어차피 같은 에너지를 쓰는 거라면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작업치료사가 한 말처럼, 무엇이든 잘 참여하고 있는 동안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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