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6 10:18최종 업데이트 23.11.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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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기자말]

심승현 선생님을 지난 11월 8일 인터뷰했다. ⓒ 류승연

 
한국경진학교(국립 특수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재직 중인 심승현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본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특별한 특수교사, 어떤 의미론 별난(?) 선생님입니다.

이제부터 선생님이 교실 안에서 어떤 재미난 수업을 하는지 살펴보기 시작할 건데요. 분명 남다르게 접근하는 그의 교육방식에 눈이 번쩍 뜨이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 사례는 특별해요. 재미있고 신나 보인다고 모든 교사에게 같은 방식의 수업을 요구할 순 없으며 모든 학교에 교과 구성 개정을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선생님이 늘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교육은 고유명사 교사가 하는 게 아니라 보통명사 교사가 하는 것이다". 특별한 사례(고유명사)는 특별한 사례일 뿐이라는 뜻으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럼에도 보통명사 교사가 아닌 고유명사 교사를 이 자리에 모신 이유는 선생님 사례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가 즐거운 학교는 모두가 바라는 공동의 목표잖아요.

그 목표를 향해 조금은 남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고유명사 사례가 알려지기라도 해야,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때인가는 더 이상 선생님 사례도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흥~" 호랑이 분장을 한 발달장애 학생
 

2020년 <공중부양의 인문학> 북콘서트에서 만난 심승현 선생님. ⓒ 류승연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 <공중부양의 인문학> 책의 북콘서트장이었어요. 특수교사로서의 철학이 잔뜩 담긴 책 내용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저자를 꼭 만나고 싶었어요.

실제로 만난 선생님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인간적인 향기'를 물씬 풍기는 분이었어요. 저는 선생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개인 면담을 요청했죠. 첫 만남 때 선생님은 학생들이 제작한 영화를 보여주셨답니다.

호랑이 분장을 한 학생과 한복을 입은 학생들이 나와서 대사를 하는데 보는 내내 웃음이 나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발음은 말할 것도 없고 대사 처리도 엉망인 데다 연기는 어쩜 그렇게 어색할까요. 심지어 어떤 배우는 카메라도 안 보고 혼자서 막 딴짓을 합니다. 자기들끼리 연기하다 말고 웃기도 해요.  

그런데 그 모습 자체로 그렇게 감동이 일더라고요. 바로 저 학생들의 모습이 제 아들(자폐성 장애인)의 모습이기 때문이었어요.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대사 연습을 하고, 동선을 짜고, 의상을 입고. 촬영 장소로 이동하며, 다 같이 힘을 모아 완성된 결과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어요.

영화 속에선 모든 학생이 저마다의 장애 정도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그 임무를 소화하고 있었어요. 말을 잘하는 학생은 긴 대사를 멋지게 해냈고, 무발화인 학생은 대사 대신 행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공동작업을 수행하는 것, 소속감을 느끼며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학교에 다니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심승현 선생님과 학생들이 만든 영화 <용감해서 대머리> 포스터. ⓒ 심승현

  
"내가 살려고 재밌게 수업해요"

심 선생님은 보통 일 년에 한 편씩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제작합니다. 영화 제작이라는 게 말이 쉽지 꽤 많은 시간과 노동을 요하는 일입니다. 일단 시간 확보부터 문제에요. 어떤 과목 시간에 영화작업을 할까요? 선생님은 담임 수업 시간을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국어, 수학, 사회 교과서로 진도 나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특별 활동을 하는 시간 속에서 국어도, 수학도, 사회도 전부 다 배울 수 있다는 것이죠. 

오고 가며 간식을 사 먹을 때 학생들이 직접 물건을 고르고 계산하며 수학 공부를 하고, 유적지나 한옥마을을 방문한 시간에 역사와 집·사람에 대해 배우고, 대중교통 수단을 타면서 사회 안에서 갖추어야 할 올바른 태도와 언어에 대해 배웁니다.

사실 힘든 일이에요. 교실에서 진도에 맞게 수업하는 게 훨씬 쉽습니다. 학생들과 특별 활동을 하는 건 그만큼 많은 수고가 들어가고 외부에서 돌발상황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위험 요소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이 이런 형태의 학생 참여형 교육활동을 많이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은 내가 살려고요. 특수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잖아요. 내가 재미있으려고 재미있는 수업을 합니다. 학생들하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니 뭔가 신나네. 그래.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자".

그렇게 학생들과 함께 행복한 교사 생활을 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찾다 보니 성취감도 생기고 그에 맞는 소질과 적성도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반에선 반장 선거를 합니다"

비장애 학생들은 1년에 두 번 반장 선거를 합니다. 하지만 특수학교에서 반장 선거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어요. 발달장애 학생들이 무슨 반장이냐 싶었던 걸까요. 저조차도 왜 아들 반에선 선거를 하지 않는지 의문조차 품어본 적 없었답니다.

그런데 심 선생님 학급에선 반장 선거를 합니다. 영상을 봤는데요. 출마하고 싶은 학생들이 직접 무대 앞(칠판 앞)으로 나가 정견 발표도 하고 표를 달라고 설득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이동칠판 뒤에 마련된 선거 구역으로 가서 투표지에 도장을 찍습니다.

투표지엔 출마 후보 얼굴이 크게 인쇄돼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발화나 중증 장애 학생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도 해요. 모든 과정이 실제 선거와 같은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심 선생님은 매년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면 학부모들에게 1년의 계획을 쭉 써서 전달하신다고 해요. 반장 선거부터 시작해 올해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어떤 현장학습을 어떻게 가고, 어떤 활동을 하겠다는 내용으로 학교 일정만이 아닌 담임만의 일정을 모두에게 공유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죠.

어느 해인가는 한 학기 동안 공동작업으로 첨성대를 만들었어요. 학교 운동장에서 흙을 퍼 나르는 것부터 시작해 물을 섞어 직접 반죽해 벽돌을 만들고 기반부터 다지며 하나씩 하나씩 벽돌을 올리기 시작한 거죠.

완성된 첨성대 크기는 어마어마했고 아마 학생들도 첨성대 크기만큼이나 해냈다는 성취감과 공동체 의식을 크게 느꼈을 것 같았어요.
 

심승현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첨성대를 만드는 모습. ⓒ 심승현

 

완성된 첨성대. ⓒ 심승현

 
기차 타고 춘천을 간 이유

심 선생님은 담임 재량 현장학습도 자주 나갑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교과서나 영상으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나가서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하나는 세상에 알리는 거죠. 우리(발달장애인)도 여기에 있다고. 우리를 보라고. 우리도 여기 존재한다고"

여러 현장학습 중 가장 신났던 여행은 지하철과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갔다 온 것이었습니다. 교사 2명(담임, 부담임)과 특수교육지원인력이 6명의 발달장애인 학생과 함께 일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용산역으로 가서 ITX를 탔습니다. 목적지는 춘천 김유정 문학관이었어요.

학교 차원의 현장학습이 아닌 담임 재량 현장학습으로 춘천에 간다고요? 그것도 스쿨버스가 아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요? 저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들뜨고 신난 학생들은 직접 표를 끊었고, 지하철과 기차를 번갈아 타며 두 교통수단 간의 차이도 몸으로 체득했어요. 춘천에 가선 닭갈비도 맛있게 먹고 문학관도 견학한 뒤 돌아왔습니다.

이외에도 심 선생님만의 특별한 수업은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상추를 심고 캐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외워 낭송하고 물건을 제작하고 못질도 합니다.

"보통 학교에서 못질 같은 건 잘 안 시키려고 해요. 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무엇이든 해보면 다릅니다. 망치질하다가 손가락 찧을까 봐 두려워하는데요. 한 번 해보세요. 지켜보는 우리보다 학생들이 위험한 걸 더 잘 알아서 안 다치려고 알아서 잘 조절하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해야 할 결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발달장애인 학생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보다 흥미있는 방향으로 특수교육이 나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어떻게 하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심 선생님은 일단 교사 개개인이 용기를 내보자고 합니다. "본인(특수교사)의 '해야 할 결심'이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아무리 교사 재량에 따라 교과를 다양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특수학교라지만, 학교 분위기(튀면 정 맞는)라는 것도 있고 반드시 교실에서 진도를 나가야만 하는 교육과정도 있고 학부모 협력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강조합니다. 특수교사의 해야 할 결심에 대해서요. 용기에 대해서요. 선생님도 '깡'과 '고집'으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저항과 난관에 부딪혔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심 선생님이 재밌는 활동을 좋아해서 학생들에게도 재밌는 수업을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알고 보면 선생님이 현재의 '참여형 활동'에 힘을 싣게 된 데는 데이터에 기반한 '이론적 이유'가 있습니다. 궁금하시죠? 

오늘은 선생님의 활동에 대해 알아봤다면 다음 시간엔 특수교육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와 관점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그럼 한 주 뒤, 심승현 선생님 인터뷰 2탄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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