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0 12:07최종 업데이트 23.11.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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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편집자말]

아들의 시각으로 교과서를 보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 unsplash


특수학교에 다니는 발달장애인 학생들이 어떤 교과서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무엇을 배우는지 궁금증을 가져본 적 있나요?

사실 저는 10년 전 아들이 장애 판정을 받기 전까진 특수교사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만큼 '장애'에 대해 무지하고 무식했답니다. 그러니 장애 학생들이 어떤 공부를 하는지는 더더욱 알지도 못했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죠.


'발달장애인의 엄마'가 되고 난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어요. 쌍둥이인 비장애인 딸이 어떤 공부를 하는진 아주 잘 알았죠. 매년 새 교과서를 집으로 가져오는 데다 딸의 숙제를 봐주면서 "이런 것을 공부하는구나. 이런 것을 어려워하는구나" 가늠할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아들은 교과서를 집으로 가져온 적도 없었고 엄마인 저는 특수교육에 대해 무지하니 뭘 물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저 학교에서 뭔가를 배우고 있겠거니, 학교에서 전화 안 오면 잘 지내고 있는 것이겠거니 했던 거죠.

그러다 일 년 전(아들이 중학교 1학년일 때), 마음먹었어요. 아들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 제대로 알아보겠다고.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해 겨울방학 시작과 동시에 중학교 전 과목 교과서를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제 기준이 아닌 아들 기준에서 바라보며 교과서를 한 장 한 장 넘겼어요. 넘기면서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이런 것들을 배우고 있었어? 힘들었겠구나. 러시아어를 모르는 내가 러시아 문학반에 들어가 원어로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공부하는 심정이었겠구나. 너는 학교에서의 시간을 버텨야 했겠구나. 아들아. 그래서 그렇게 잠만 잤구나.

비장애 교육과 발맞춘 특수교육

통합교육을 받는 특수교육대상자는 일반 비장애인 학생들이 사용하는 통합교과서로 공부합니다. 하지만 인지 기능에 장애가 있는 발달장애 학생에겐 통합교과서가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특수학급에 있는 특수교사는 학생 개인 수준에 맞는 학습자료를 학생별로 따로 준비해 개별화교육을 실시합니다.

특수학교에선 특수 교과서로 공부해요. 장애 학생들을 위한 학년별 교과서가 따로 있다는 뜻이에요. 특수 교과서의 교육과정은 비장애 일반 교육과정을 따릅니다.

처음 특수학교로 전학했을 때(6년 전) 이 부분이 의아했어요. 왜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의 교육과정이 비장애 학생의 교육과정과 같아야 하는 거지?

당시 교육부에 전화해 문의했더니 이런 답변을 하더라고요. 한때는 장애 학생 특성에 맞게 교과 구성을 한 적 있었는데 그랬더니 오히려 장애인 차별에 대한 문제가 터져 나왔대요.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모든 학생이 배우는 기본 교육에서 배제되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던 거죠. 그런 취지라면 오케이. 인정했습니다. 교과 과정은 같되 그 안의 내용을 풀어가는 데 있어선 다를 테니 그 점에 기대를 건 것이죠.

그렇게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아들은 중학생이 됐어요. 특수학교라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릅니다. 학교생활에서 '학습'이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아져요.

문제는 제 아들이 특수학교 안에서도 최중증에 속하는, 중도 장애가 있는 학생이라는 점이에요. 15살이지만 아직 말을 못 하고 한글도 모르고 숫자는 3까지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습니다. 그때그때 달라요.

지구가 뭔지도 모르는데 공전을 배워요
 

특수교육 교과서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 미래엔 홈페이지

 

수학 교과서를 펼쳤더니 첫 장이 세 자릿수부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 엄마인 나도 수포자였으니 너도 인정. 수학 못 해도 괜찮아. 

그런데 아들아, 아무리 엄마가 수포자였어도 집합과 도형까진 할 줄 알았는데 넌 어떨까? 도형을 보니 삼각형을 설명하면서 두 변의 길이가 어쩌고 하는데 마음을 가볍게 내려놨습니다. 삼각형과 네모의 개념도 이해 못 하는 아들에게 변까지 나오면, 그건 선을 넘어도 세게 넘은 겁니다.

국어 교과서를 봅니다. 시골 쥐와 도시 쥐 이야기가 나와요. 도시 쥐 일기가 있는데 9줄로 구성돼 있더라고요. 두 쥐가 서로 만날 약속을 정하는데요. 이야기를 읽고 채워야 하는 빈칸이 사고력을 요합니다. 시간의 선후 관계도 알아야 하고 문장의 맥락도 이해해야 해요.

아들과 같은 학년인 몇몇 학생의 엄마들에게 사진 찍어둔 교과서 내용을 보내 봤어요. 이 정도 수준이면 따라갈 만하다는 엄마도 있었고, 한글 따라읽기는 가능하지만 문제 풀이는 힘들다는 엄마도 있었고, 제 아들처럼 자녀가 까막눈이거나 무발화인 경우엔 그냥 허허 웃기만 했습니다.

과학 시간엔 공전에 대해서도 배워요. 아들은 지구가 뭔지 우주가 뭔지도 모르고 그 개념을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추상적인 개념을 머릿속에서 구체화시키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 과학도 가뿐히 패스하자.

이런 식으로 한 과목, 한 과목,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이 심란해지더라고요.

어떤 수업에도 참여할 수가 없어요

특수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아들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들처럼 인지 기능이 낮은 학생은 특수학교 안에서도 소수이기도 해요. 소수이지만 또 완전 소수는 아니기도 합니다.

그래서 특수 교과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 특수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수준과 방향에 맞게 잘 따라가는 학생도 있거든요.

문제는 특수 교과서가 특수학교 안에서 사용된다는 겁니다. 통합교육 안의 특수학급에선 학생 개개인에 대한 개별화교육이 가능하지만 등교부터 하교까지 늘 6명의 서로 다른 인지 기능을 지닌 6명의 장애 학생이 동시에 교육받는 특수학교 현실에선 매시간 모든 학생에 대한 개별화교육이 불가능해요.

비장애 학생도 모든 교과 과정을 다 이해하고 따라가는 건 아니라고요? 맞아요. 저도 수학 시간이나 과학 시간이면 눈으론 칠판을 보면서 속으로는 미국 아이돌 밴드 '뉴키즈온더블럭'의 리더(도니 월버그)와 결혼하는 상상을 하곤 했어요.

하지만 인지 기능에 장애가 없는 저는, 적어도 교과 시간엔 '참여'를 할 수 있었어요. 역사 시간에 조선시대를 모른다고 해서 현대사 수업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고, 물리를 포기했다고 해서 생물을 이해 못할 건 아니었으니까요.

아들은 입장이 다릅니다. 아이큐 검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중도 인지 장애가 있는 아들은 아들 수준에 맞는 학습이 제공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과목에도 '참여'를 할 수 없습니다.

교과 재구성이 온전히 담임 몫이 되면

그러니까 특수 교과서의 문제는 이겁니다. 통합교육을 하기에 어려움이 따라서 특수학교로 왔는데, 특수학교 안에서조차 중증이라는 이유로 학습에서 배제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중증 장애 학생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 문제인 겁니다.

이런 얘길 하면 관리자나 공무원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모든 학생에 대한 개별화교육은 특수교사의 의무'이고 어쩌고... 현장을 외면하는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시치미 떼는 걸까요.

국립특수교육원에선 '에듀에이블'에 특수교육 관련 자료를 제공합니다. 특수교사들이 수업 중 필요한 콘텐츠를 가져다 쓸 수 있도록 관련 정보가 엄청나게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한계가 있어요. 학생 개별 수준에 맞게 곧바로 가져가서 쓸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 교사가 재가공해서 써야 하는 형태로 자료가 있다는 겁니다. 당장 학생들 하교 후엔 해야 할 행정업무도 산더미처럼 밀려있는데 말입니다. 

특수 교과서가 읽기 쓰기 가능한 학생을 중심에 두고 구성된다면, 적어도 읽기 쓰기는커녕 개념 이해조차 안 되는 중증 학생을 위해 곧바로 가져다 쓸 수 있는 형태의 자료는 따로 구비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가공해야 하는 형태가 아닌 온전한 형태로요. 그래야 특수학교 교실 안에서 최소한의 개별화교육이 가능합니다. 어떤 학습도 따라가지 못해 단지 교실 안에 '있기만' 하다가 집에 오는 학생이 나오지 않습니다.

학습자료 재가공은 모든 교사가 하는 일이지만 말 그대로 특수학교의 특수성을 봐야 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봐야 해요. 모든 것을 특수교사 개인의 몫으로만 몰아가면 출구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특수교사들은 재가공하는 수고를 거쳐야 하는 '에듀에이블'을 외면하고 특수교사들이 모인 사이트인 '세티넷'에서 다른 특수교사가 재가공해 완성된 형태로 공유한 학습자료를 더 자주 가져다 쓴다고 합니다. 아니면 초등 교사들이 모인 사이트인 '인디스쿨'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다른 교사들이 재가공해 올려둔 양질의 초등 저학년 관련 콘텐츠를 가져다 중고등 장애 학생들의 학습자료로 활용하는 겁니다.

특수 교과서가 나아갈 방향
 

국립특수교육원이 운영하는 '에듀에이블' 홈페이지 ⓒ 에듀에이블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이제는 교육부가 결단을 내려서 방향성을 정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인 접근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특수 교과서가 전혀 쓸모없는 중증 학생을 위한 학습자료는 교육부나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준비해야 할 듯합니다. 특수교사의 재가공 수고가 들어가지 않는 온전한 형태로요. 학습 진도에 맞춰서요.

교육부나 국립특수교육원이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한 많은 사업을 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가장 기본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무언가 멋진 사업을 벌이는 것도 좋지만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요. 바로 교과서 진도가 나갈 때 특수교사 혼자 6명 학생에 대한 학습자료 전부를 재가공해서 사용하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수업 진도와 발맞춘 온전한 형태의 교수 자료부터 만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처음엔 특수교과서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중증 학생을 위한 콘텐츠부터 시작합니다. 그다음엔 경증 학생을 위한 '진도에 맞춘' 학습자료도 완전한 형태로 누적시킵니다. 특수교육대상자의 특수성과 특수교사의 업무 특수화를 고려한 교육 지원을 국가 차원에서 담당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언제고 제2의 코로나 시국이 도래하더라도 특수교육대상자가 학습에서 배제되는 일도 방지할 수 있을 거예요.

1~2년에 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입니다. 그때가 되면 '세티넷'과 '인디스쿨'로 빠졌던 특수교사들도 다시 '에듀에이블'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언제일지 모를 그때, 제 아들은 아마도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기 삶을 살고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동생들이라도 아들과는 다른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특수학교에서의 시간이 '버티기'가 아닌 '참여'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럴 수 있다면 지금의 이 문제 제기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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