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는 대형 마트나 슈퍼가 없다. 마을 곳곳의 작은 가게들에서 생필품을 조달한다. 닭은 닭집에서 치즈는 치즈집에서 고기는 고기집에서 사는 식이다. 다만 매주 토요일에는 마을에 장이 열린다. 마을 각 가게 주인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한 군데 모아 놓고 파는 식이다. 지난 토요일 나는 마을 장터에서 토마토 열 개, 오렌지 네 개, 양파 아홉 개, 당근 여섯 개, 사과 여섯 개, 호박 두 개, 바나나 다섯 개, 파파야 반 통, 포도 1kg을 샀다. 내가 계산한 돈은 289페소다. 그 중 절반(140페소)가 포도 값이었다. 멕시코에서 포도는 매우 비싼 과일이다.
림수진
중간에 간식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이른 저녁이 되어 식구들이 모일 때까지 부부 합계 소득의 40%가 오직 식비로 이미 지출되었다. 저녁은 그래도 아침이나 점심보다는 나아야 할 텐데, 부부에겐 이제 300페소(한화 2만2800원)의 돈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날이 제법 쌀쌀해진 요즘 닭수프라도 끓여 먹으면 좋으련만, 2㎏ 기준 닭 한 마리 값이 150페소(한화 1만1400원)를 넘어섰다. 고기 중 가장 만만한 게 닭인데, 이젠 닭도 맘대로 사 먹기 쉽지 않다. 닭수프를 끓이자면 쌀, 마늘, 양파, 토마토 등을 사야하기에 적어도 200페소는 써야 한다. 물론, 여기에 전기료와 가스값은 포함되지 않는다.
맘 크게 먹고 저녁은 닭수프를 끓인다. 저녁을 먹고 나면 부부가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일을 하며 벌어온 돈 중 100페소가 남는다. 일요일엔 일을 하지 않기에 하루에 100페소 정도는 일요일을 위해 모아둬야 한다. 하루 번 돈 80%를 일용할 양식으로 지출하고 20%를 남기는 셈이다.
후안과 마리아 부부가 한 달에 25일을 일하고 버는 돈은 1만2500페소(한화 95만원), 2023년 멕시코 중산층의 가계소득 기준이 1만4500페소(한화 110만원)에서 시작되니, 약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현재 멕시코 도시에서 절대빈곤선 기준이 1인 한 달 소득 2225페소(17만원), 그리고 빈곤선 기준이 4415페소(34만원)이니 마리아와 후안의 경우 결코 빈곤층이라 할 수 없다. 둘의 소득을 합하면 교사, 은행 창구 직원, 대졸 신입사원, 택배 기사들보다 훨씬 높다. 그럼에도 가계 소득의 80%를 식료품 지출로 사용한다. 주거비나 의복비 혹은 교육과 여가는 이들의 지출 항목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

▲멕시코는 최저임금이 두 지역에 차등으로 적용된다.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지역의 최저임금은 나머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23년 최저임금의 경우 국경지역 최저임금은 312페소, 나머지 지역은 207페소였다. 2023년 최저임금 상승률은 20%였다.
멕시코 정부
지난 5년 간 멕시코 최저임금은 매년 20% 이상 상승하여 총 235% 증가했다. 2018년 현 대통령 취임 당시 88페소이던 1일 최저임금은 2023년에는 207페소까지 올랐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부분 멕시코 사람들의 삶이 후안과 마리아 부부처럼 한 치 여유도 없이 팍팍한 것은 물가도 같이 따라 오르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멕시코의 물가상승률은 평균 8%를 상회했다. 물론 공식 통계치다. 실제 삶에서 느끼는 상승폭은 더 거세다. 2013년 토르티야 1㎏ 가격이 10페소를 상회했을 때 멕시코의 모든 언론은 금방이라도 세상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이었다. 작년에 20페소를 넘어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23페소. 물론, 세상은 망하지 않았고 토르티야 가격만 유유히 올라가는 중이다.
그 와중에 많은 것들이 '사치재'가 되어버렸다. 그 중 단연 으뜸은 빵이다. 지난 3년 사이 가격 상승률이 50%에 육박한다. 아무리 옥수수로 만든 토르티야가 주식이라고 하지만, 빵 역시 소비가 큰 편이다. 1인당 연간 34㎏을 소비한다(우리나라는 약 7.5㎏이다). 그러니 빵 소비에 대한 지출 부담이 만만치 않다. 단품 빵 하나에 6페소 혹은 7페소 하던 가격이 10페소를 넘어섰다. 몇 해 전 6페소 하던 빵 값을 7페소로 올린 뒤 밤이 늦도록 도무지 빵이 팔리지 않아 다시 가격을 내렸던 마을 빵집의 2023년 빵 한 개당 가격은 11페소였다.
하루 24시간 31분을 일해야 하는 밑지는 삶

▲오렌지 9개, 토마토 10개, 양파 7개, 사우어크림 작은 컵 하나, 치즈 500g, 계란 500g (8개), 작은 빵 4개, 바나나 9개를 사고 치른 가격이 360페소였다. 사과, 포도, 파파야 등과 같은 과일이 있지만, 사람들은 예전처럼 쉽게 과일을 사지 않는다. 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같이 간 이웃이 그랬다. 요즘 같으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라고.
림수진
지난 주말, 마을에 장이 섰을 때 같이 장을 보러 나선 이웃은 돈이 훨훨 날아간다며 연신 툴툴거렸다. 오렌지 9개, 토마토 10개, 양파 7개, 크림 작은 컵 1개, 치즈 500g, 빵 4개, 계란 500g, 바나나 9개를 사면서 그녀가 치른 값은 360페소였다. 혼자서도 거뜬히 들 수 있는 양인데 360페소라니. 불과 2-3년 전만 해도 장에서 200페소만 지출해도 장바구니는 혼자 들고 오지 못할 만큼 무거웠다. 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비싸!'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일단 채소는 사되, 과일 사는 것을 포기한다고 했다. 고기는 일주일에 한 번만 먹는다고 했다.
결국 자급의 정도를 서서히 올리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다행히 내가 사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는 채소와 야생 과일들이 흔한 편이다. 닭과 계란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
문제는 토르티야와 코카콜라. 아무리 옥수수가 풍년이라도 결국 토르티야의 가격 결정에서 소비자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하루에 10억 장 이상 팔리는 토르티야에 대한 영향력은 이미 소비자의 손을 떠난 지 오래다. 25페소든, 30페소든, 정해진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멕시코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의 기조는 ‘적절한digno’ 수준의 임금 회복이다. 현 정부가 집권을 시작한 2018년 88페소였던 최저임금은 임기 마지막이 될 2024년에 멕시코 국경 지역의 경우 374페소, 나머지 지역은 248페소로 상승하였다. 6년 간 280% 이상 상승하였지만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물가 상승이 원인이다.
멕시코 정부
예전에 비해 세상은 더 발전했다고 하는데, 삶은 더 팍팍하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에서 행한 연구에 따르면 1987년에는 하루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물자들을 구하기 위해 4시간 53분 만 일하면 되었다. 이후 그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2006년에는 13시간 17분, 2015년에는 20시간 38분, 그리고 2016년에는 23시간 53분을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하루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고 나면 겨우 7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더 슬픈 사실은, 급기야 2017년에는 24시간을 넘겨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하루 24시간을 살기 위해 24시간 31분을 일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다. 아이러니다. 하루하루 살수록 밑지는 삶이다. 슬픈 현실이다.

▲아!! 맥주. 코로나 맥주. 멕시코 사람들이 가장 만만하게 마시는 코로나 맥주. 355ml 여섯 캔을 한 다발로 묶어 파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절 자가 대피하는 와중에 전국적으로 맥주 소비가 급증하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자 정부가 맥주 생산을 중단하고 금주령을 내렸었다. 그 와중에 맥주 가격이 폭등하여 한 캔 당 10페소 미만이던 값이 14페소를 넘겨버렸다.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 시절도 막을 내리고 금주령도 해제되었는데, 맥주 값은 여전히 그 시절 값이라는 것이다. 한 번 오른 물건 값은 절대로 다시 내려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오르는 시절, 더 오르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림수진
코로나바이러스야 그렇다 쳐도, 대관절 지구 반대편 나라들 사이의 전쟁이 왜 당장 내 밥상을 한없이 초라하게 하는지, 내가 사는 이곳 멕시코의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1990년대 이미 30%를 육박하는 물가상승률을 경험해 본 바, 최근의 8% 정도는 견딜 만하다. 물론, 기꺼운 일은 아니다. 그냥 바짝 엎드려 견디는 거다. 그나마 술이 위로일 텐데, 코로나 시절 금주령과 함께 생산이 중단되면서 가격이 올랐던 맥주는 코로나와 금주령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가격이 오르고 있다. 참 희한하다.
맥주야 안 먹고 견딘다 치지만, 토르티야와 토마토와 양파와 계란과 붉은 콩을 안 먹고 어찌 견딜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멕시코의 흔하디흔한 후안과 마리아들은 어쩌면 이미 그들 하루 소득의 100% 이상을 오직 먹고 사는데 쏟아 부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고도 어쩌면 2%가 부족할 것이다. 하루 24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24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현실이라니, 아직 살지 않은 미래를 담보 잡지 않는 한 도무지 살 수 없는 삶이라니, 아무리 봐도 이 나라 숱한 후안과 마리아들이 공상과학 소설 속 주인공 같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