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마가와 사라진 그녀의 남편에게는 아직 어린 딸이 있다. 아빠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딸이 그림을 그렸다. '엄마와 아빠와 나'라는 그림의 제목처럼, 아빠 리카르도의 생환을 간절히 바란다.
페이스북 캡처
그러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초등학교 시절부터 상이란 상을 휩쓸었다는데, 교복이 없어 상을 받으려면 전날 밤 그녀의 어머니가 마을을 돌며 교복을 빌리느라 늘 맘을 졸였다고 했다. 오직 상을 받는 날에만 남의 것이지만 그래도 교복을 입을 수 있었다. 같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수 백 명 동기들 중 딱 두 명이 대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그 중 한 명이 그녀였다.
나는 그녀를 제자로, 동료로 그리고 친구로 만났다. 한 동안 나는 마가와 한 집에 같이 살았다. 즐거운 시절이었다. 그 시절 그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가까이서 좇았고 그녀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에 기꺼이 응원했다.
대학교 다니던 시절, 차비가 없어 왕복 16킬로미터를 걸어 학교를 다녔다. 그럼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학교 교직원이 되었다. 그쯤 되면 족히 두 서너 시간을 걸어 다닐 일도 없고 몇 날 며칠 삶은 감자로만 끼니를 때워야 하는 일도 얼추 멀어졌는데 홀연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으로, 또한 학부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역사학과로.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녀의 선택을 충분히 헤아렸다. 학자가 되어 주 정부군에 사살된 아버지에 대한 논문을 쓰겠다고, 같이 살던 시절 이미 여러 번 내게 말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녀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 말이 그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그녀가 지원한 학교는 그녀가 나고 자란 곳, 그녀의 아버지가 주 정부군에 사살된 곳, 그리고 그녀의 오빠가 수감된 그 곳의 주립대학교였다. 아버지 사건을 둘러 싼 주 정부 차원의 비공개 문서를 보기 위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