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6 17:27최종 업데이트 23.02.1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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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5일은 친구의 남편인 인권변호사 리카르도와 마을 공동체 대표 안토니오가 사라진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유럽연합 의회가 멕시코 정부에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어떤 제보와 단서도 없다. 2월 15일 이들의 생환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전국 각지에서 마음을 모아 촛불을 켜는 행사가 열렸다. 해당 이미지는 2월 15일 멕시코 베라크루즈 주 오리사바 시에서 기획된 행사 알림 포스터이다. 이 곳은 인권변호사인 리카르도의 고향이다.페이스북 캡처
 
"남편이 사라졌어요."

늦은 밤 친구 마가로부터 걸려온 전화 내용이었다. 그 시간 걸려오는 전화 내용이 유쾌하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쾌하지 못함을 넘어 놀랍고 두렵고 슬픈 소식이었다.


전화를 끊고 컴퓨터를 켜고 친구 남편의 이름을 검색했다. 전화를 받던 날 그 밤으로부터 이틀 전인 1월 15일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마을 공동체 대표와 함께 사라졌고 그들이 탔던 차량이 이튿날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차량에 여러 발 총격이 가해졌지만, 혈흔은 보이지 않는다는 뉴스도 있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알려야 할 곳에 소식을 전했다. 납치로 인한 실종이 분명하니 시간의 흐름이 결코 유리할 수 없다. 48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게다가 한꺼번에 둘이 같이 납치되었으니 그들을 잡고 있는 쪽에서도 시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미 흘러버린 이틀이 더욱 불안하게 느껴졌다.

이틀 간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했다. 차라리 돈을 요구하는 전화라도 걸려왔더라면 일이 조금이라도 선명할 텐데 그 마저도 없었다고 했다. 마을 공동체 대표와 같이 납치되었으니 분명 그간 해오던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친구 남편은 최근 몇 년간 이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한 마을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납치 당일도 마을 공동체 대표와 함께 관련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이후로도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그리고 어떤 제보도 없었다. 증발하듯, 두 명이 사라져 버렸다. 여러 발 총격을 받은 차량을 남겨둔 채.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흘러간다.
 
인권변호사 리카르도와 마을 공동체 대표 안토니오가 총격을 받고 사라진 지 3주째 되던 날 발행된 포스터. 포스터 정면에 "그들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말하라"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페이스북 캡처
 
'뜨거운 땅'에서 벌어진 비극

그들이 사라진 곳은 멕시코 서부 태평양을 가까이 두고 있는 미쵸아칸 주, 공식 지명 대신 '뜨거운 땅'이라 불리는 곳이다. 온전한 국가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온전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상상키 어려운 일련의 사건들이 '뜨거운 땅'이라는 이름 속에 '있을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린다. 친구의 남편 역시 '뜨거운 땅' 속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곳은 내 친구 마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그 곳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그녀 나이 다섯 살 적의 일이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1980년대 초반, 마을 사람들과 정부군의 충돌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을 대변했던 아버지를 정부군에 잃었다. 나무에 묶인 채 총살되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곳은 또한 2015년 그녀의 오빠가 정부군에 끌려가 오랜 시간 감옥생활을 하기도 한 곳이다. 그리고 2023년 그 곳에서 남편이 사라져 버렸다.

남편을 잃은 그녀의 어머니가 쫓기듯 피해 온 곳이 뜨거운 땅과 주 경계를 사이에 두고 살짝 비껴선 곳이다. 그 곳으로부터 거리가 멀지 않았지만, 주가 달랐다. 남편을 죽인 주 정부군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그녀는 목에 빵틀을 메고 길에서 빵을 팔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온 식구가 길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하루를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 팔아야 할 빵 하나를 먹어 버리면 그걸로 일당이 사라져 버리는 고약한 시절이었다.
 
친구 마가와 사라진 그녀의 남편에게는 아직 어린 딸이 있다. 아빠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딸이 그림을 그렸다. '엄마와 아빠와 나'라는 그림의 제목처럼, 아빠 리카르도의 생환을 간절히 바란다. 페이스북 캡처
 
그러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초등학교 시절부터 상이란 상을 휩쓸었다는데, 교복이 없어 상을 받으려면 전날 밤 그녀의 어머니가 마을을 돌며 교복을 빌리느라 늘 맘을 졸였다고 했다. 오직 상을 받는 날에만 남의 것이지만 그래도 교복을 입을 수 있었다. 같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수 백 명 동기들 중 딱 두 명이 대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그 중 한 명이 그녀였다.

나는 그녀를 제자로, 동료로 그리고 친구로 만났다. 한 동안 나는 마가와 한 집에 같이 살았다. 즐거운 시절이었다. 그 시절 그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가까이서 좇았고 그녀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에 기꺼이 응원했다.

대학교 다니던 시절, 차비가 없어 왕복 16킬로미터를 걸어 학교를 다녔다. 그럼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학교 교직원이 되었다. 그쯤 되면 족히 두 서너 시간을 걸어 다닐 일도 없고 몇 날 며칠 삶은 감자로만 끼니를 때워야 하는 일도 얼추 멀어졌는데 홀연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으로, 또한 학부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역사학과로.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녀의 선택을 충분히 헤아렸다. 학자가 되어 주 정부군에 사살된 아버지에 대한 논문을 쓰겠다고, 같이 살던 시절 이미 여러 번 내게 말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녀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 말이 그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그녀가 지원한 학교는 그녀가 나고 자란 곳, 그녀의 아버지가 주 정부군에 사살된 곳, 그리고 그녀의 오빠가 수감된 그 곳의 주립대학교였다. 아버지 사건을 둘러 싼 주 정부 차원의 비공개 문서를 보기 위한 선택이었다.
 
인권변호사 리카르도와 마을 공동체 대표 안토니오의 이미지가 들어간 전단지가 도심 곳곳에 붙었다. 림수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공부하던 중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원주민 공동체를 돕는 인권 변호사였다.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남편과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남편은 자연스레 그녀가 태어난 곳,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으로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23년 사라진 남편, 2015년 수감된 오빠, 그리고 1980년대 정부군에 사살된 아버지까지, 그녀를 둘러싼 세 명의 남자가 모두 하나의 실타래 속에 복잡하게 얽힌다. 멕시코에서 치안이 가장 열악한 주, 그 곳에서 또 치안이 가장 열악한 지역 '뜨거운 땅'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1980년대 마을 공동지에서 철광산이 발견되었다. 이를 둘러싸고 농민군과 정부군이 충돌하였고 그 와중에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주 정부가 주춤하는 사이, 기업이 들어왔다. 마을 공유지에서 철광석을 채굴하는 대가로 마을 주민들에게 매달 소액의 보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아주 오랜 시간 그야말로 정말 '소액'의 보상금이 마을 주민들에게 지급되었다.

2000년대 후반, 철 값이 급속하게 오르면서 채굴 규모가 커지고 기업의 규모도 커졌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에게 보상되는 금액은 수십 년째 그대로였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다른 지역 보상 수준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이 받는 금액의 열 배 이상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시작했다. 결국 기업이 손을 들었다. 다른 지역과 얼추 비슷한 수준으로 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29일, 한 가족이 보름 전 실종 된 인권변호사 리카르도와 마을 공동체 대표 안토니오의 사진을 들고 이들의 무사 귀환을 촉구하고 있다. 림수진
 
마을에 돈이 돌기 시작하자 멕시코 전역의 마피아들이 득달 같이 달려들었다. 그들 사이에 피를 뿌리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참혹한 전쟁이었다. 말 그대로 '뜨거운 땅'이었다. 정부는 고래들의 싸움 앞에 선 새우 격이었다. 간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끼리 죽일 만큼 죽이고 죽을 만큼 죽었을 때 싸움이 정리되었다. 역시나, 멕시코 최강성 마약 카르텔이 마을을 장악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매달 지급되는 적지 않은 채굴 보상금이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의 가가호호 징수에 빨려 들어갔다. 이번엔 마을 사람들이 총을 들었다. 2013년의 일이다. 정부 입장에선 차라리 반가운 일이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마을 사람들이 대신하겠다고 나선 격이었으니, 말이라도 그들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마을에 무장 자경단이 만들어졌다. '뜨거운 땅' 곳곳에 시민들이 공권력을 대신해 무장한 채 마약 카르텔과 전쟁을 치렀다.

마약 카르텔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리고 무기가 화려해 질수록 자경단의 규모와 무장력도 그에 맞춰 구색을 갖춰야 했다. 그러지 않고선 마을 전체가 다시 마약 카르텔 수중에 들어갈 게 뻔했다. 그런데, 자경단 조직이 커지면서 여기저기서 이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끼리 만든 자경단인 이상 온전한 통제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대원들 중 일부는 제식 훈련조차 제대로 받아 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자경단 일부 단원들은 마약 카르텔이 던져주는 미끼를 덥석 물었고, 지도부는 좀 더 막강한 무기를 사기 위해 마약 유통에 손을 댔다.

점점 커지고 세지는 자경단에 부담을 느끼던 정부 입장에선 그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보스 이하 투항하지 않는 자경단 단원들을 불법 무기 소지와 마약 유통 죄목으로 묶어 무장해제 시키고 수감해버렸다. 그 와중에 자경단원으로 총을 들었던 마가의 오빠도 수감되었다. 2015년의 일이다.
 
지난 1월 29일, 인권변호사 리카르도가 아내와 딸과 함께 살던 콜리마 주 주청 앞에서 그로부터 보름 전 사라진 두 명의 무사 귀환을 촉구하는 행사가 있었다.림수진
 
"산 채로 잡아 갔으니, 산 채로 되돌려 달라"

자경단이 해체되고 마을이 다시 마약 카르텔 수중에 들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공공연한 상납과 징수가 이루어졌지만 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장치는 전무했다. 이 때 마가의 남편을 비롯한 운동가들이 마을에 들어가 대안을 찾아 나섰다. 매달 지급되는 보상금액을 올리는 대신 기업이 마을에 병원과 학교를 짓겠다는 약속이었다. 마을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기대해보지 못한 후생 시설들이었다. 마약 카르텔이 설친다 해도 앗아 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 약속이 더러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일부 마을 사람일 수도 있겠고, 마약 카르텔일 수도 있겠고, 이 마을에서 철광석을 채굴하는 다국적 기업이거나 정부 당국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라진 친구 남편의 목소리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마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그 날 늦은 밤, 다시 그 소식을 전하는 내게 동료 한 명이 신음하듯 내뱉었다.

"멕시코는 여전히, 죽이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해."

수십 구의 시신이 한꺼번에 발견되어도 딱히 뉴스가 되지 못하는 '뜨거운 땅'에서 발생한 두 명의 실종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그래서 그런지 멕시코 당국은 조용하다. 오직 가족과 친지와 동료들이 하루하루 안간힘을 쏟아 그들의 생환을 요구할 뿐이다. 살려서 돌려주기만 한다면 어떤 죄도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걸었다.
 
사라진 인권변호사 리카르도의 아내 내 친구 마가가 지난 1월 29일 남편과 동료의 생환을 촉구하는 평화행진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녀의 뒤로 "어디에 있는가?"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림수진
 
다행히, 외국에서 이들의 실종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 주 유럽연합 의회 의원 여러 명이 멕시코 정부를 향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 때문인지, 늦은 감이 있지만 멕시코 수사당국이 지난 주 50만 페소(한화 약 330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산 채로 잡아 갔으니, 산 채로 되돌려 달라."

십만 명, 멕시코에서 사라져버린 실종자들의 가족들이 외치는 이 구호를 내가 외치게 될 줄 몰랐다. 사라진 친구 남편의 사진을 들고 그 지역을 장악한 마약 카르텔인지, 그 지역에서 철광석을 채굴하는 다국적 기업인지, 보상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마을 사람들인지, 개입 자체를 꺼려온 정부 당국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누군가에게 외친다. '뜨거운 땅'에서 사라져 버린 두 명의 운동가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외친다.
 
2023년 2월 15일, 인권변호사인 리카르도와 마을 공동체 대표 안토니오 두 명의 활동가가 사라진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지난 한 달 간 그 어떤 제보와 단서도 잡히지 않았기에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란 희망을 놓을 수가 없다. 두 명 활동가들의 무사귀환을 촉구하고 기원하는 마음으로 2월 15일 오후 7시를 기해 멕시코 각 곳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밝혔다. 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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