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0km에 달하는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국경은 서쪽 끝에서 태평양과 만난다. 이곳에 티후아나가 있다. 두 나라를 가르는 철책은 티후아나의 끝 해안으로부터 100여 미터 더 국경이 이어진다.
림수진
몬세라트 시장과 마약 카르텔의 대립은 최근 '자릿세'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격돌했다. 그간 마약 카르텔 말단 조직원들이 상인들에게서 자릿세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상황에서 몬세라트 시장이 '돈은 당신들에게 빚 진 자들에게나 찾아가 받으라'는 공개 메시지를 냈다. 곧 카르텔로부터 답이 왔다. 역시나 공개 메시지였다. '당신에게 그 빚을 받도록 하겠다'라는 현수막이 시내 곳곳에 걸렸다. 누가 내걸었는지 특정할 수 없지만, 명백한 '나르코 메시지'였다.
몬세라트 시장은 즉각 연방정부에 경호 강화를 요청했고 군 병력이 증강되었다. 몬세라트 시장의 모든 행보에 대형 경호 차량 열 대가 따라붙었다. 그 와중에 지난 5월 17일, 몬세라트 시장의 미용실 방문을 위해 동행한 경호원 한 명이 총격을 받았다. 사실 이 정도의 위협은 여느 멕시코 정치인들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린 탓에 세간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넘어갔지만 군부대 안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몬세라트 시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재소환되었다.
시신 일곱 구가 픽업트럭 짐칸에 구겨진 채 발견된 지난 6월 12일, 신변 안전을 위해 군부대로 거처를 옮기겠다는 몬세라트 발표 뒤 시민들의 실망과 불만이 불거졌다. 언론은 몬세라트 시장을 인터뷰하면서 정치적∙사회적 불만을 재생산했다. 시장 당선 전 지역 의원을 지낸 바 있어 정치 신인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언론의 공세를 감당하기엔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몬세라트 시장의 답은 어떤 질문에도 한가지로 경직되었다. 그간 자신이 해온 일의 결과만 언급할 뿐, 시민들의 실망과 불만에 대한 공식적 입장은 단 한 번도 밝히지 못했다. 계속되는 언론들의 인터뷰에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몬세라트 시장의 말은 힘을 잃었다.
몬세라트 시장의 결정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략적'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옹호했다. 국방부와 국토방위군의 제안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몬세라트 시장 역시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재임 기간 티후아나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에서 5위로 하향했다고 언급했지만 시민들의 실망과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신의 안전이 곧 시민들의 안전이라며 인터뷰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낳은 채 시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구하지 못하였다.
어디를 가든 열 대 이상의 경호 차량을 동원하고 수십 명의 근접 경호를 받는 시장과 그 어떤 제도적 보호 장치도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가는 시민들 사이에 놓인 간극을 좁히는 일은 차라리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 시장의 어린 아들이 신변 안전을 위해 군부대로 들어간다는 내용과 관련해 시민들은 정작 자신들의 자녀가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여전히 따져 묻는 중이다.
마약 카르텔에 정부가 밀리는 현실

▲상징적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철책이다. 서쪽 끝 국경이 끝나는 곳 철책 하나하나에 이름들이 쓰여 있다. 천당이라 불리는 미국에 닿기 위해 목숨을 저당 잡히고 끝내 그 저당 잡힌 목숨을 다시 찾지 못한 채 죽은 이들의 이름이 각 철책마다 새겨져 있다.
림수진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주춤하던 몬세라트 시장은 지난 23일 거처를 군부대 안으로 옮겼다. 몬세라트 시장은 일반 사병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라 협소하고 부대 내 보안상의 이유로 전화와 인터넷 사용에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반복해 강조했다. 몬세라트 시장을 향한 시민들의 불편한 시선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임이 역력하다.
70제곱미터 정도의 협소한 공간에서 거주와 집무를 함께 하기로 했다. 언제쯤 몬세라트 시장이 다시 군부대 밖으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사건을 두고 멕시코 언론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보도하지만, 사실 그간 주지사나 시장들이 해당 지역에 주둔하는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 거주하며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던 일들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간의 사례들이 드러나지 않고 은밀히 행해졌을 뿐이다. 몬세라트 시장은 그들만큼 노련하지 못했다.
인구 규모로 멕시코 수도에 이어 제2 도시에 해당하는 티후아나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실화냐'라고, 혹은 '그게 나라냐'라고. 지방 정부 수장이 마약 카르텔의 협박에 신변 위협을 느끼고 해당지역 군부대로 거주와 집무 공간을 옮기는 것은 일부 언론의 표현대로 마약 카르텔에 정부가 밀리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상의 이면에는 또 다른 복잡한 계산이 존재한다. 한꺼번에 끄집어낼 순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적어도 작금의 현실이 이 도시 티후아나 한 곳에서 배태되고 파생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히 천당이라 불리는 미국 어디쯤으로 흘러가는 마약, 그곳으로부터 티후아나로 흘러 들어오는 무기, 천당에서 잠시 지옥으로 내려오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매춘을 비롯한 온갖 향응, 미국에 닿고자 가진 목숨을 기꺼이 거는 이주자들, 이 나라의 오래된 고질적 부패와 그 부패를 가능케 했던 또 다른 외부의 어떤 힘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 내는 서사의 한 단면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