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현지시간) 멕시코 지저스 마리아에서 마약 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의 수장인 오비디오 구스만을 의미하는 처단자와 생쥐 이미지가 마약 조직 장갑차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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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쟁을 방불케 하며 군 특수부대에 의해 체포된 '생쥐' 오비디오는 2019년에도 체포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카르텔 조직원들의 폭력 수위가 워낙 거세 체포했던 그를 만 하루가 되기도 전에 풀어줘야 했다. 그로 인해 군 당국과 대통령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외 언론들은 '국가가 마약 카르텔에 항복했다'는 내용의 기사들을 실었다. 일면 맞는 말이다. 체포했던 마약 카르텔 새끼보스를 하루가 채 되기도 전에 다시 풀어줘야 했으니 굴욕을 떠나 '실패한 국가', '실패한 정부'에 이어 '국가 붕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체포했던 오비디오를 풀어준 것과 관련하여 군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과 비난이 쏟아지자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오비디오를 풀어주던 시점 모든 상황에 대해 군과 충분한 협의가 있었고 그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겠다고 발표했다. 그 어떤 범죄자의 체포도 시민들의 생명 위협에 앞설 수 없음을 강조했다.
새끼보스 오비디오가 체포되던 2019년 10월 17일 마약 카르텔의 공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던 군의 치욕적인 작전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체포 때와 마찬가지로 카르텔 조직원들이 모든 화력을 동원하여 총공세를 펼치는 와중에 도심 시가전이 극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군인들이 밀리면서 시민들이 그대로 위험에 노출되었다. 시민들 중 사망자가 속출했다.
무장 카르텔이 도시를 점거했고, 교도소를 습격하여 당시 복역 중이던 조직원들 50여 명을 탈옥시켰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군인 아파트에 대한 습격이 발생하면서 군인 가족들의 신변이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작전에 참여했던 군인도 스무 명 이상 인질로 잡혔다. 이런 상황에서 군인들이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카르텔 조직원들은 시민들에 대한 총격을 예고하면서 군대를 압박했다. 은행이 불탔고 대형슈퍼마켓들도 화염에 휩싸였다. 당일 저녁 19시 49분을 기해 작전이 취소되었고 군 병력이 철수했다. 체포했던 새끼보스 '생쥐'를 풀어주면서 인질로 잡혔던 군인 20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다음 날 대통령은 정례 아침기자회견 자리에서 전날 시날로아 쿨리아칸에서 벌어진 일련의 폭력 양상들에 대해 '이건 전쟁이다. 강경 공세로 맞서면 대규모 시민 학살을 피할 수 없다. 최선의 선택이었다, 불을 불로 끌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그의 국정 운영 초기 설정한 '총알 대신 포옹(Abrazo No Balazo)' 정책 방향과 같은 선상에 놓이는 발언이다.
이 말들에서 2006년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이 결국 더 많은 살상과 더 막강한 무장력을 야기할 뿐이라는 의미가 다시 확인된다. 또한 말들의 행간에서 멕시코 군 병력이 마약 카르텔의 무장력을 제압할 수 없다는, 슬픈 상황인식이 포착된다.

▲루이스 크레센시오 산도발 멕시코 국방장관이 6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전날 있었던 오비디오 구스만 체포 작전 중 발생한 사상자 규모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망자 중 10명은 멕시코군 소속이며 19명은 폭력사태를 촉발시킨 중무장한 범죄조직 소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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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보스 '생쥐'의 아버지
그나저나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새끼보스 '생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이기에 매번 전쟁을 방불케 하는 피를 감수하며 체포하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이 충돌하는 것일까? 사실 멕시코 정부의 오비디오 체포 목적은 미국에 인도하기 위함이다. 이미 미국에서 그의 체포와 관련하여 아주 사소하더라도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 대해 5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어 둔 상태다. 죄목은 불법 무기소지부터 자신의 결혼식에서 노래하기를 거부한 유명 가수 살해 혐의까지 방대하지만, 가장 중점적인 부분은 역시나 마약 공급이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생쥐' 오비디오에 대해 5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2017년 오비디오의 아버지이자 신알로아 카르텔 두목이었던 엘 차포가 미국으로 인도되었고 2023년 1월 체포된 아들 오비디오 역시 미국으로 인도될 전망이다.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USA
오비디오의 아버지 엘 차포가 이끌던 시날로아 카르텔은 멕시코 내에서도 가장 막강한 조직이다. 엘 차포는 현재 미국 최고 보안 연방교도소에서 종신형에 30년이 더해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2015년 탈옥 이후 2016년 멕시코 군 당국에 '마지막'으로 체포되고 이듬 해 미국으로 넘겨지기까지 마약을 둘러 싼 그의 악행과 기행은 멕시코뿐 아니라 전 세계 마약 카르텔 역사에 희대의 족적을 남겼다.
1991년 이후 체포와 수감과 탈옥을 반복하면서 멕시코뿐 아니라 남쪽으로 콜롬비아로부터 북쪽 미국까지,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까지 카르텔 장악력을 넓혀 나갔고 마약 운송을 위해서라면 잠수함과 대형 항공기까지 띄워 그를 쫓는 각 국 군 당국을 조롱하고 우롱하며 신속 정확하게 물건을 배달했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가 그의 사업 신조였다. 그러니 사업이 번창할 수밖에.
오사마 빈 라덴이 죽은 후 미국 FBI 수배 순위 1위에 올랐고 미국 잡지사 <타임>(TIME)은 그를 세계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이미 십 수 년 전 <포브스>가 밝힌 그의 재산은 1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2001년 수감 중이던 최고 보안 연방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세력을 넓히며 신출귀몰하였다. 자신이 근거지를 둔 시날로아 주에서는 매년 크리스마스와 연말 그리고 어린이날마다 그의 조직원들이 각 곳 동네를 돌며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지급하면서 민심을 확보했다. 연말이 되면 경찰들에게도 돈을 지급한다는 영화 같은 사실이 공공연히 회자되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언제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2014년 2월 22일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의 수장인 호아킨 "엘 차포" 구스만이 탈옥 뒤 멕시코의 휴양도시 마자틀란에서 체포되어 멕시코시티로 이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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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다시 체포되었다. 최고 보안 연방 교도소에 재수감 되었지만 503일 만에 다시 탈옥했다. 보안을 위해 벽과 바닥 모두 두께 1미터 이상 시멘트 옹벽으로 만들고 24시간 세 대의 감시 카메라가 동시에 작동하던 독방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독방 샤워기 아래 가로 세로 50센티미터 잘려나간 곳으로 터널이 이어져 있었다.
터널은 높이 1.7m, 폭 0.8m를 유지하면서 1.5㎞ 떨어진 농가 마당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터널 안에는 조명과 송풍 장치가 완비되어 있었고, 전 구간 레일을 깔고 그 위에 레일바이크가 운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쫓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했던지 구간마다 의도적으로 속임수용 갈림길까지도 만들어 놓았다. 대단한 수준의 토목공사였다.

▲2015년 연방 최고 보안 교도소에 수감 되어있던 엘 차포가 도무지 믿지 못할 수준의 터널을 통해 탈출하자 세계 각 곳 언론들이 기자들을 보내 터널 곳곳을 보여주며 뉴스로 쏟아냈다. 터널 안에는 선로가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송풍과 산소공급 장치 등과 같은, 쾌적한 탈출을 위한 여러가지 부대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Univision 뉴스 캡처
세계 각 곳의 언론이 파견한 리포터들은 마치 성지순례라도 하듯, 열이면 열 모두 터널 안으로 들어가 멕시코 내 최고 수준의 철통 보안을 자부하던 연방교도소 독방으로부터 시작되는 터널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곧 전문가들의 분석이 이어졌다. 이 정도 규모의 터널을 파기 위해서는 총 3250톤의 흙이 나왔을 것이고, 여덟 명의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하루 쉬고 엿새 동안 하루 여덟 시간씩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정확히 503일의 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딱 그가 수감되어 있던 시간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계산이지만 국내외 언론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간결했다. '부패'였다.
우울한 전망
이번에 체포된 오비디오 역시 아버지에 이어 미국으로 인도될 전망이다. 아버지에 이어 실권을 쥐고 있던 아들이 체포되었으니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의 축소 혹은 붕괴가 점쳐질 법도 한데, 사실 그럴 확률은 지극히 미미하다. 그간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확인된 바 두목 체포로 하나의 조직이 기울어진 바도 없으려니와 혹 축소되거나 소멸된다 해도 그들이 제조하거나 유통하는 마약이 이 세상 어디선가 팔리는 이상 조직 간 파워의 구조개편이 있을 뿐 소멸되기는 쉽지 않다.
이번 오비디오 체포와 관련하여 미국이 즉각 인도를 요청하고 있지만 멕시코 일각에서는 사법 주권을 논하며 송환을 반대하기도 한다. 미국이 엘 차포 부자의 범죄인 인도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데는 자국 내 마약소비에 따른 폐해가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지난해 미국에서 마약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같은 해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숫자다. 실제로 미국 내 마약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코카인이나 헤로인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펜타닐로 인한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다.
작년 한 해 미국에서 적발되어 마약 수사당국에 압수된 펜타닐 양은 4.9톤에 달한다. 2㎎으로도 상황에 따라 치사 수위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찔한 양이다. 압수되지 않고 미국에서 소비된 펜타닐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이 한 달에 2.5톤의 펜타닐을 생산할 수 있는 제조 기반을 갖추고 있으니 미국이 왜 엘 차포와 오비디오의 신병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지 이해가 간다.
▲멕시코 검찰 소속 마약 단속원이 압수된 화학 합성 마약을 감식하기 위해 수거하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최종 소비지에서 그램(g) 단위로 판매되는 합성 마약들이 한꺼번에 수 톤(ton)씩 적발되어 압수되기도 한다. 다만 멕시코를 거쳐 미국 등지에 이르는 마약 전체 양에 비하면 매우 미미하여 1% 정도에 해당할 뿐이다.
FGR 멕시코 검찰
미국에서 1㎏의 펜타닐은 약 3만 달러에 거래된다. 마약을 건네고 받는 돈 상당부분은 무기거래에 사용된다.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마약이 올라가고 무기가 내려온다. 마약은 피를 묻혀가며 올라가지만 무기는 깔끔하게 내려와서 피를 묻힌다.
엘 차포와 오비디오가 제거되었지만 지금 같은 마약 소비가 지속되는 한 마약 제조와 유통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마약 값이 똥값이 되기 전까지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폭력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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