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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년 이른바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바 있는 홍성담 화백.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우리나라에서 예술과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가. 지난 80∼90년대를 살아온 소위 '민중·민족 미술' 운동가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특히 서슬퍼렇게 날을 세웠던 국가보안법은 예술가의 창작의 자유를 저해하는 가장 강력한 독버섯이었다.

그 대표적 피해자가 바로 홍성담씨다. 자신을 '민중미술가'라고 말하는 홍씨는 소위 '민중미술운동'이 태동을 하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 89년 이른바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홍씨는 안기부에서 수사를 받는 20여일 동안 변호인 접견을 금지당한 채 고문을 당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홍씨는 자신의 진술을 모두 부인했고 결국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변호인 접견권이 금지 당한 상태에서 받은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며 홍씨에 대한 7개의 혐의 중 2개의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아직도 국보법 얘기 지겹다... 그러나 말한다. 폐지되어야 하니까"

지난 달 31일 경기도 파주시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만난 홍씨는 대뜸 "지겹구만"이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국보법 얘기를 다시 하는 것도, 고문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그야말로 "지겹다"는 것이다. 그럴만도 했다.

지난 99년에도 20년만에 하는 개인전에 앞서 가진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도 자신의 작품세계 보다는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 끌려갔던 얘기에 더 관심을 보여 지겹고 짜증났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야겠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국보법은 폐지되어야 하니까."

특히 홍씨는 국보법이 지난 80년대 '민중·민족 미술'에 대해 날을 세운 데 대해 "사회적 비극"이라고 침통해했다.

그는 "예술은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스스로 자기 정화를 해 나가가 권력 혹은 경제력이 예술을 좌지우지하는 사회는 정말 천박하고 미천한 사회"라며 "예술가의 창작내용을 국보법이라는 사상적 잣대로 재단해 스스로 자기 검열하게 만드는 일은 엄청난 사회적 비극"이라고 일갈했다.

"국보법은 한국사회를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만드는 바이러스"

홍씨는 국보법을 가리켜 "일종의 '거대한 정신병적 증후군'"이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자면 길거리에 걸어가는 사람을 잡아다가 '너 마음 속에 이러이러한 생각을 품었지? 아니면 그 전에 한번이라도 이런 생각 한 적이 있지 않느냐'라며 '그러니까 국보법 위반이다'라고 하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당한 사람도 '내가 정말 죄를 범했구나'라고 생각하고,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감히 저놈이 김일성 꿈을 꾸다니 어떻게 그렇게 빨간 꿈을 꾸나,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인정하게 되는 것과 같다. 국보법은 이같은 거대한 정신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홍씨는 20여일간 안기부에 구금돼 있을 때 받은 고문을 선명히 기억하며 아직도 치를 떨고 있었다. 그는 "고문이라는 것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현재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자행한 것과 똑같다"며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마저도 짓밟아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고문"이라고 말했다.

▲ 홍성담 화백이 직접 그린 고문수사관의 얼굴. 홍 화백은 투옥 중 변호인에게 연필과 지우개를 부탁해 속옷 속에 숨겼다가 밤 사이 수사관의 얼굴을 그렸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변호사에게 연필과 지우개 부탁, 책 간지 뜯어 고문수사관 그려

그는 당시 자신이 직접 그렸던 고문 수사관에 대한 몽타주도 갖고 있었다. 그가 어딘가에서 꺼내온 '고문수사관 얼굴 커리커처'라고 적힌 노란색 봉투에서는 40대 후반∼50대 초반과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남성의 얼굴이 나왔다.

당시 홍씨는 자신의 변론을 맡았던 김선수 변호사에게 몽당연필과 지우개를 부탁해 속옷에 이를 숨겼다가 밤이 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수사관의 얼굴을 그렸다고 말했다.

홍씨는 이 수사관들의 몽타주를 그려서 독직폭행혐의로 이들을 고소했으나 이 사건은 아직도 미제로 남아있다. 89년 당시 이 몽타주는 <한겨레신문>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서 만든 포스터에도 실려 관심을 모았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홍씨는 17대 국회의원들에게는 "국보법의 폐지"를, 동시대를 사는 예술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당부를 전했다.

"국보법은 표현의 자유와 상상력을 제약한다. 이제는 국보법이 규제하는 현실을 뛰어 넘어야 한다. 삶의 현장 속에서 국보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지, 어떻게 우리의 자유스런 상상력을 침해하고 있는지 퍼 올려야 한다."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사건' 이란?

'민족해방운동사'는 세로 2.5m에 가로 7m의 그림 11폭이 이어진 대형 걸개그림이다. 동학농민혁명에서 일제 침탈기, 해방 뒤 한국전쟁, 5·18 광주민중항쟁 등 우리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11개의 테마로 나누어 80여명의 작가들이 그린 대작이다.

1989년 6월 홍씨는 이 그림을 슬라이드 필름에 담아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민족학교'를 통해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보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이적표현물 제작·배포)로 구속됐다. 작품은 이미 서울의 모 대학에서 열렸던 집회에 내걸렸다가 경찰에 의해 불태워없어진 뒤였다.

그러나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와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민해운사 중 홍씨가 그린 광주민중항쟁 부분에 대해 "5월 광주민중항쟁이 반미, 반파쇼, 반봉건 투쟁의 시각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내용으로 형상화하여 제작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의 주장과 활동에 동조하여 이를 이롭게할 목적으로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김선수·윤종현 변호사 등 홍씨의 변호인단은 화가의 미술작품이 과연 사법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변론요지서를 통해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 절대적 기본권"이라며 "국가형벌권이 화가의 작품활동에까지 행사된다면 표현과 예술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침해"라고 반박했다.

이밖에도 안기부와 검찰은 홍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간첩죄), 회합통신, 금품수수 혐의 등 총 7개의 혐의를 적용, 기소했고 홍씨는 1심에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홍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간첩죄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변호인 접견권이 박탈된 상태에서 이뤄진 자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홍씨는 안기부 조사 및 검찰 1차 피의자 신문에서는 변호인 접견이 허용되지 않은 채 자백했다가 이후 이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변호인 접견권 보장을 명시한 이 판결은 당시 공공연한 관행으로 자리잡았던 수사기관의 위법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한계도 있었다. 대법원은 영장 발부 이전의 불법 구금과 수사기관에서의 고문과 가혹 행위 등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행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간첩죄 등 5개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혐의에 대해서는 그 죄를 인정했다.

당시 홍씨에 대한 상고심의 주심대법관은 '대쪽판사'로 명성을 날렸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였다.

다음은 지난 달 3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에 자리한 홍성담씨의 작업실에서 나눈 인터뷰를 간추린 내용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민족해방운동사' 걸개 그림은 어떤 그림인가.
"당시 민중민족미술인연합(민미련) 건준위와 학생미술운동인연합이 공동으로 작업했다. 전국적으로 약 8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88년 10월부터 작업에 들어가 89년 4월에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첫 전시회를 하고 전국 순회전을 했다. 그리고 이후 그림을 슬라이드로 제작해 재미 대표단을 통해 당시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리게 될 북한에 보내지게 됐다.

당시 참여한 작가들은 슬라이드를 보내면서 '남한의 진보적 청년 작가들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이렇게 해석해서 형상화 했다, 북의 작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후에 만나서 토론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동봉했었다.

그런데 이후 북한에서 청년 작가들이 그 슬라이드를 보고 그 크기로 그대로 복원을 했다. 복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복원 사실은 한참이 지나 감옥에서 당시 방북했던 문규현 신부에게서 전해 들었다. 문 신부에 따르면 당시 북의 작가들은 11컷에 3컷을 덧붙여 14장 짜리로 복원했다고 하더라.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당시 남한에서 보낸 '민해운사'를 본 북한의 청년 작가들과 만수대 창작단의 노장 주요 멤버들이 복원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고 하더라.

내 짐작이지만, 80년대 자생적으로 발생한 우리의 민중미술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조선시대 풍속화와 민화까지 소위 민중적 사실주의 혹은 비판적 리얼리즘에 입각한 그림인데, 북한의 미술은 주체미학이론에 입각해 북 체제에 대한 선전해온 차이가 있다. 그러니 북한에서는 이 그림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 결국 대법원에서 간첩죄 등 주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해 파기환송심까지 갔지만 그림은 이적표현물로 인정이 됐는데,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이 이적표현물인가?
"우스운 짓이다. 일종의 미신이다. 우리나라에서 국보법이란 것은 이를 휘두르는 권력에도 국보법으로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에게도 미신을 심어주는 일종의 정신병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길거리에 걸어가는 사람을 잡아서 '니가 마음 속에 이러이러한 생각을 품었지? 아니면 그전에 한번이라도 그런 적 있지 않느냐'라면서 국보법 위반이라고 하는 격이다.

그래서 당한 사람도 '내가 정말 죄를 범했구나'라고 자인하고,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저놈이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나쁜 놈이구나, 빨갱이구나, 감히 저놈이 김일성 꿈을 꾸다니, 어떻게 그런 빨간 꿈을 꾸나, 평소에 그런 생각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일종의 거대한 정신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국보법 존재하는 한 우리는 오른쪽 두뇌와 손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몸의 절반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꼴이 계속될 것이다."

- 수사 당시의 고문수사관의 몽타주를 작성해 관심을 모았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은 하기 싫다. 언제쯤 그런 말 안하고 살지…. 하지만 국보법 폐지를 얘기해야 하니 말하겠다. 없는 사실을 조작을 하려니까 고문이 필요하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기소하면 고문이 필요 없다. 그런데 없는 사실을 조작을 하려니 고문을 한다. 그런데 그 고문에 끝까지 대항하면 박종철씨 처럼 죽는다. 아주 무서운 일이다.

인간에게 마지막 남은 존엄성마저도 없애버리는 그리고 자기의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그래서 자기들이 조작한 것에 사인하게 만드는 것이 고문의 고전적인 방법이다. 어린시절 선생님에게 죄없이 맞았던 것도 평생의 상처로 남는 법인데 하물며 지하실에서 온몸이 벗겨져 20여일씩 감금돼서 맞고, 그래도 배고프니 밥은 먹어야 하는 자신을 생각해보라. (잠시 침묵)

안기부 조사 뒤 검찰로 송치된 뒤 변호사가 고문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느냐고 해 연필과 지우개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을 속옷 속에 숨기고 감옥에 들어가 밤마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책 표지 뒤의 간지를 뜯어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다음 면회 때 이를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이후 고소고발까지 이어졌으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당시 도저히 이 그림으로는 수사관이 누군지 찾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아직도 국보법은 유명 저서나 그림 등에도 이적표현물이란 딱지를 붙이고 있다. 예술인으로서 이러한 일을 어떻게 보나. 특히 신학철씨의 '모내기' 그림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림을 법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제인가?
"웃기는 일이다. (한참 뒤) 예술가도 하나의 권력이다. 자기가 자신의 뜻대로 창작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지는 것이다. 책임이란 대중의 평가를 감수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법이 '여기까지만 그려라, 여기서부터는 못 그린다'는 식으로 선을 긋는 것은 인간의 뇌수 일부분을 덜어버리는 행위이다.

더 비극적인 일은 국보법에 저촉될까봐 예술인들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술은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스스로 자기 정화를 해 나간다. 권력이 예술을 좌지우지하는 사회는 타락하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

- 왜 유독 '민중미술' 혹은 '민족미술'이 국보법에 의해 많은 탄압을 받은 것인가.
"민중미술은 본디 당대의 사회적 모순이나 부패한 권력을 비판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대안으로서의 미술을 지향한다. 그렇다보니 (지난 80년대에는) 당시 군부독재 권력과는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던 것이다.".

- 지난 해에는 송두율 교수와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이 홍 화백과 비슷한 혐의(간첩, 통신 연락)로 구속, 실형을 선고 받았다. 두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 똑같은 사건이다. 이런 사건을 보면 열이 난다. 그래도 옛날에는 전체 운동권이 나서서 석방운동도 하고 관심을 보였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이런 관심이 축소된 것 같아 안타깝다."

- 현재 정치계와 시민사회에서 국보법 폐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다수당이 된 여당과 민주노동당이 국보법을 확실히 폐지해야 한다.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우리사회는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남게 될 것이다. 예술인들도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보법은 표현의 자유와 절대 상상력을 제약한다. 이제는 국보법이 규제하는 현실을 뛰어 넘어 삶의 현장 속에서 국보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지, 우리의 자유스런 상상력을 침해하고 있는지 퍼 올려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소개해달라.
"오는 9월1일에 인사동 학고재 화랑에서 4번째 개인전을 연다. 그런 뒤 올 가을부터는 경기도 안산으로 가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장르를 막론해 문화활동을 같이 벌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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