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여름을 지나 선선한 가을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일까? 수많은 블록버스터가 격전을 벌인 극장가도 한 숨 쉬어가는 모습이다. 수백만 관객을 우습게 동원한 대작들이 잠시 자리를 비킨 사이, 무명 감독의 신작과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늘어섰다.

지난 9월은 김지운 감독의 <밀정> 외엔 이렇다 할 작품이 보이지 않았다. 기대를 모은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100만 문턱을 넘기도 힘겨워보였고 그보다 작은 영화들은 더욱 고전했다. 티무르 베크맘베토브의 <벤허>와 이병헌이 출연한 <매그니피센트 7>도 기대만 못한 성적을 거뒀다.

다가오는 하늘연달(10월)은 더욱 조용한 달이 될 전망이다. <밀정>만한 대작이 보이지 않고 명성 있는 감독 역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신예급 작가들과 흥행면에서 주목받지 못할 작은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모두가 누군가에겐 명운을 건 작품일 것이다. 감춰진 보석을 찾는 기분으로 다음 영화들을 만나보자.

[하나] <디시에르토>

디시에르토 포스터

▲ 디시에르토 포스터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호랑이는 개를 낳지 않는 법이라고들 한다. 뛰어난 아버지에 형편 없는 자식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을 영화계에 적용시켜 본다면 어떨까? 사실 냉정한 창작의 세계에서 아버지만 못한 아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든든한 자산인 동시에 쉽게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그늘이기도 하니까.

5일 개봉하는 <디시에르토>는 1981년생 조나스 쿠아론 감독의 작품이다. 성이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기예르모 델 토로와 함께 멕시코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유명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아들이 바로 조나스 쿠아론이다.

감독으로 활약하는 아버지와 삼촌을 어린 나이부터 보고 자랐고 20대 중반의 나이에 상업영화를 연출했다니 나름의 재능은 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인 알폰소 쿠아론이 직접 제작을 맡아 대규모로 개봉하게 된 <디시에르토>는 그의 영화인생에 커다란 시험대가 될 게 분명하다.

[둘] <맨 인 더 다크>

맨 인 더 다크 포스터

▲ 맨 인 더 다크 포스터 ⓒ UPI 코리아


공포는 무지에서 출발하는 감정이다. 실체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차츰 몸집을 키워 그 실재보다 거대한 공포를 빚어내는 것이다. 이 같은 공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서스펜스(긴장)와 맞물려 상당한 효과를 자아낸다. 알지 못하는 것과 익히 아는 것의 절묘한 교차, 모든 공포스릴러가 고민하는 지점이다.

5일 개봉하는 <맨 인 더 다크>의 감독 페데 알바레즈 역시 이 부분에서 많은 고심을 한 듯 보인다. 그는 불이 꺼진 순간 강자와 약자가 뒤바뀌는 특별한 설정을 통해 영화 가득 공포와 긴장을 불어넣었다. 주인공은 10대 빈집털이범들이며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건 눈 먼 집주인 노인이다. 불꺼진 집 안에서 강자는 약자가 되고 약자는 강자가 된다. 시각에 크게 의지해온 관객들은 낯선 집,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익히 알지 못했던 공포와 마주할 게 분명하다.

영리한 설정의 공포물과 만나고픈 사람에게 이 영화, <맨 인 더 다크>를 추천한다.

[셋] <럭키>

럭키 포스터

▲ 럭키 포스터 ⓒ (주)쇼박스


오달수에게 <대배우>가 있다면 유해진에겐 <럭키>가 있다. 조연으론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성공한 배우지만 주연으로 내세울 작품은 전무한 상황에서 배우 유해진 인생에 기록적인 작품으로 남을 영화다.

박찬욱 감독 연출부 출신으로 경력을 쌓은 이계벽 감독은 2005년 <야수와 미녀> 이후 두번째 장편 상업영화 연출을 맡았다. 기억상실로 냉혹한 킬러와 무명배우의 삶이 뒤바뀐다는 설정이 고전적이지만 동시에 흥미를 유발한다. 하물며 유해진표 코미디임에야.

조윤희, 전혜빈, 임지연 등 미녀배우들의 캐스팅도 눈길을 잡아끈다. 13일 개봉.

[넷] <자백>

자백 포스터

▲ 자백 포스터 ⓒ (주)시네마달


상당수 언론이 사회비판이란 제 역할을 제쳐두고 단편적 정보의 자극적 취급에만 골몰한다. 기성 언론에서 심도 깊은 보도는 실종된지 오래, 대안 언론의 탄생은 필연적 수순인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역시 그렇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영상예술의 갈래답게 다큐멘터리는 태생부터 저널리즘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고발뉴스' 이상호나 '뉴스타파' 최승호 같은 이들이 다큐멘터리로 눈을 돌리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널리즘의 힘이 살아있는 몇 안 되는 장르이므로.

13일 개봉하는 <자백>은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다. 한두번 일어난 일이 아니므로 부연하자면 2012년 탈북한 유우성씨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유씨의 동생에게 받아낸 자백을 유일한 증거로 삼아 유씨를 간첩으로 몬 국정원의 만행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전한다. <자백>은 한국이 처한 현실, 그 이상도 이하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다섯] <춘몽>

춘몽 포스터

▲ 춘몽 포스터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재중동포로 한국영화계의 지평을 넓히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장률 감독의 신작 <춘몽>이 13일 개봉한다. <망종>, <두만강>, <풍경>, <경주> 등을 통해 기존 한국 감독들과 다른 독특한 시선을 보여온 그의 신작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하는 이가 적지 않다.

<춘몽>엔 최근 <최악의 하루>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한예리 외에도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등 연출과 연기 모두에서 재능을 뽐내는 유명 감독들이 출연해 눈길을 끈다. 독특한 매력의 세 남자와 그들이 아끼는 한 여자. 이들이 빚어내는 이야기 속으로 봄날의 꿈처럼 빠져보자.

[여섯] <미스터캣>

미스터캣 포스터

▲ 미스터캣 포스터 ⓒ 리틀빅픽처스


<아담스 패밀리>, <맨 인 블랙>,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로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인 베리 소넨펠드 감독의 신작이다. 케빈 스페이시, 제니퍼 가너 주연의 가족판타지물인 <미스터캣>은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사업가가 고양이로 변해 벌어지는 한편의 소동극이다. 카프카의 <변신>이나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패밀리맨>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지만 펼쳐지는 이야기는 훨씬 명랑하고 경쾌하다.

명감독과 이름난 배우들이 뭉쳐 찍어낸 가족코미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고양이 애호가에게도 놓칠 수 없는 작품이 될 것이다. 20일 개봉한다.

[일곱] <인페르노>

인페르노 포스터

▲ 인페르노 포스터 ⓒ UPI 코리아


이 시대 최고의 소설가 가운데 한 명인 댄 브라운의 작품이 또 영화로 나왔다. <다빈치 코드> 이후 그의 작품을 영화화하는데 맛이 들린 론 하워드가 이번에도 연출을 맡았다.

댄 브라운 소설의 영원한 주인공 로버트 랭던은 이번엔 기억을 잃고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눈을 뜬다. 극적으로 병원을 탈출한 그는 자신의 옷에서 실린더 한 개를 발견하고 그 안에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낸다. 멧 데이먼 주연의 <본 아이덴티티>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으로 이 시대 최고의 캐릭터 가운데 하나로 성장해가는 로버트 랭던이 어떻게 인류를 지켜낼지 주목된다.

톰 행크스의 파트너로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 펠리시티 존스가 출연한다. 20일 개봉.

[여덟] <닥터 스트레인지>

닥터 스트레인지 포스터

▲ 닥터 스트레인지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렇다 할 대작이 눈에 띄지 않는 10월이다. 한 편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언제 나올까 많은 이들이 손꼽아 기다린 마블의 유명캐릭터 닥터 스트레인지가 자신의 이름을 단 <닥터 스트레인지>를 통해 26일 찾아 온다. 마블 히어로물의 전환점이 될 거라고 평가받았을 만큼 존재감도 중요도도 큰 캐릭터, 닥터 스트레이지 역은 '오이 형'(오빠)이라 불리며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다.

이밖에도 레이첼 맥아담스, 틸다 스윈튼, 매즈 미켈슨 등 이제껏 마블 히어로물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던 유명배우가 여럿 출연해 눈길을 끈다. 에릭 바나가 주연한 <인보카머스> 등 주로 공포물을 찍어온 스콧 데릭슨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이 변수다.

[아홉] <라스트 페이스>

라스트 페이스 포스터

▲ 라스트 페이스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였던 선수가 감독으로는 과거의 영광을 잃어가는 모습을 종종 본다. 비단 스포츠에서뿐 아니다. 영화도 그렇다. 배우로선 의심할 여지 없는 걸출한 재능, 그러나 감독으론 어떨까? 숀 펜이 이와 같은 시험대에 섰다.

샤를리즈 테론과 하비에르 바르뎀, 장 르노 등 자신과 같이 선 굵은 베테랑 배우들을 출연시킨 <라스트 페이스>가 바로 그 영화다. 10월 중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 작품을 찍으며 감독인 숀 펜과 주연배우 샤를리즈 테론은 약혼까지 했었다. 영화보다 사랑이 우선했을까, 작품에 몰두하는 상대에게 반한 것일까. 답은 영화 안에 있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아프리카에서 두 의사가 겪는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고 전한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

[열]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포스터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포스터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가장 사랑받는 전직 대통령이자 역시 가장 많은 욕을 들어먹은 대통령이기도 한 노무현의 이야기. 제목에서부터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지역주의 해소와 권위주의 타파에 온 힘을 다했던 정치인 노무현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비극적 요소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 시대 이 나라에 어떤 울림을 전할 수 있을지 기대가 상당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그를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10월 중 개봉 예정.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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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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