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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 강을 따라 내려가면

▲ 아무르 강변에 꾸며진 공원
ⓒ 강병구
하바롭스크의 최고 매력이라면 당연 아무르 강일 것이다. 생각보다 넓은 강폭과, 강변에 조성된 모래사장. 그리고 아직 겨울이 다 끝나지 않은 4월말 하바롭스크에서는 아무르 강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얼음덩어리도 볼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도 그랬지만, 따뜻한 계절에 왔다면 하는 아쉬움이드는 강변이었다.

하지만 아무르 강에는 한민족만이 느낄만한 특별함도 숨어있다. 아무르 강이란 이름은 중국과의 국경 쪽으로 내려가면 헤이룽 강(黑龍江)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그리고 좀 더 내려가다 보면 송화강이라는 익숙한 이름과 하나가 된다. 요즘 사극 드라마를 장악하고 있는 고구려, 그 시조인 주몽신화에 나오는 그 이름이다. 유화부인의 아버지인 하백이 다스렸다는 그 강이다.

실제 블라디보스토크의 인근인 우수리스크나, 하바롭스크 주는 옛날 고구려와 발해의 영향권이었다. 특히나 발해의 중심지에 가까웠던 우수리스크 인근의 경우, 동북공정으로 더 이상 한국 위주의 발굴이 불가능해진, 현 중국 영토내의 발해 유적지를 대체하여 우리연구자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던 양승희 선생님의 경우도, 발해사 연구자로서 유적 발굴 및 역사 연구를 위해 그곳을 오셨다고 했다.

그럼 러시아는 자국 영토 내, 한국의 발해사 연구 및 유적 발굴을 어떻게 생각할까? 기본적으로 환영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 역시 중국처럼 러시아의 현재 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지배 논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란다.

러시아의 슬라브족은 시베리아 지역을 최근에 지배하게 된 민족이다. 이런 이들이 지배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갖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러시아 내에선 이 땅이 원래 여러 민족들이 차지하여 그때그때 주인이 바뀌던 땅이라는 논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더욱이 예전부터 다민족이 함께 살던 곳이므로, 현재의 러시아연방에 속하는 것도 무리가 없는 것이라는 논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때 이곳이 한민족의 영토였다는 것은 자신들의 다민족연방에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된다는 결론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러시아나 중국이나 자국의 철저한 이해 속에 우리를, 우리의 역사를 이용한다는 씁쓸함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하바롭스크의 한국인과 고려인

▲ 아무르 강변의 모래사장
ⓒ 강병구
그렇다고 하바롭스크가 그렇게 오래전에만 우리와 연결되어있던 곳은 아니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 운동가들이 활동하던 곳이고, 홍범도 장군, 이동휘 장군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곳이 이 곳이다. 또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개척을 위해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현재도 하바롭스크에는 많은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하바롭스크에서 고려인의 힘은 상당하다고 한다. 구소련의 개방 이후 하바롭스크의 고려인들은 한국에서 들어온 기업가들의 파트너가 되어 동업자가 되기도 했고, 한국에서 들어오는 여러 정치, 사회적 지원의 실행자가 되기도 했다. 한국인들 역시 러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우수리스크와 하바롭스크를 적극 이용하여 언어나, 러시아의 생경한 사회적 분위기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 하바롭스크에서 유명한 한국식당 그린플라자
ⓒ 강병구
한때는 상당히 많은 한국의 사업가들이 하바롭스크의 고려인과 손잡고 사업을 벌였다고 하는데, 그럼 지금은 어떨까? 아가씨 송출하는 업자들이나, 몇몇 여행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철수했다고 한다. 러시아에 적응하지 못해서, 한국의 IMF로 인해 등등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많이 듣게 된 이유는 고려인들에게 사기를 당해서라는 것이었다.

현지 사정에 어두운 한국인 사장이 고려인 동업자에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업전부를 빼앗기게 되는 패턴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한때는 수많은 한국인 기업가들로 북적대던 한국 식당들도 이젠 대부분 고려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얼마간의 선교사와 유학생들이 남은 한국인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고려인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 같지만, 돈 몇 푼 들고 와서 러시아 말도, 사회도 이해하지 못하는 안하무인인 한국인 사장을 대했을 그들도 이해해야하지 않을까? 여름철만 되면 몰려오는 한국의 '러시아 기생관광' 목적의 여행객들도 한국인을 오해할 만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씁쓸한 현실이었다.

태어나 처음 본 북조선 사람

▲ 그린플라자의 비빔밥
ⓒ 강병구
길거리를 가다 그렇게 깜짝 놀랄 수가 없었다. 대로에 버젓이 TV에서나 보던, 쥐색양복에 김일성인지, 김정일인지 모를 배지를 달고 가는 두 사람들 때문이었다. TV가 아니고,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그들을 만나게 되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시 잡혀가는 것 아니야?

가이드를 해주던 현신화씨의 말을 빌리자면, 하바롭스크에서 북한사람을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북한 영사관이 하바롭스크에 있기도 하고, 북에서 오는 열차가 하바롭스크로 오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북한 벌목공을 관리하는 곳이 하바롭스크라는 것도 TV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신화씨가 공부하는 학교에 유학생 신분의 북한인이 50여명가량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특히 그들이 같이 공부하며 매일같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말에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온 학생들과 달리 국비유학 형식으로 온 북한의 그네들은, 하바롭스크의 대학에서도 특출난 학생들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다른 유학생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것은 기본이고, 러시아인들과도 무리 없이 대화와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인상과, 함께하는 생활이 궁금해서 신화씨에게 물어봤다.

"별 차이 없어요. 좀 수줍어하고 말수가 적은 편들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뭘 가리거나 하진 않아요. 다만 개인적으로 만나기는 좀 힘들고, 수업시간이나 공식행사를 통해 주로 만나지요. 러시아말 너무 유창하게 하는 게 제일 부럽죠. 성적의 앞 순위도 대부분 북한학생들이에요."

북쪽의 그들에게 뿔이 안 달렸다는 것, 얼굴이 빨갛지 않다는 것은 여러 소식을 통해 이젠 익숙해 진 일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북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너무 낯선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도 나와 동시대인들이 있고, 이렇게 그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바롭스크에 유학생들을 보내 북한 학생들과 같이 공부할 수 있게 한다면, 그래서 수많은 남북한 친구들이 생긴다면 우리의 문제는 좀 더 쉽게 풀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북한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한다는 북한이란 명칭도 북조선이라 바꿔야겠지? 하바롭스크에는 한국인도, 고려인도, 조선인도 있었다.

이제 진정한 시베리아 열차가 출발한다

▲ 어느 간이역에서 043번 아무르호 열차
ⓒ 강병구
하바롭스크에 도착한지 만 33시간 만에 다시 열차에 올랐다. 하바롭스크의 만점짜리 가이드 현신화씨와 장은주씨의 배웅을 받으며 말이다. 한 도시에 33시간을 머물며 그곳에 여행기를 쓰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33시간만으로도 참 많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준 곳이 하바롭스크였다.

33시간의 체류를 마치고 이제 60시간의 열차여행이 시작이다. 다음 목적지 이르쿠츠크에는 60시간 뒤에 도착하는 것이다. 바이칼 호수가 있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출발한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면 또 다른 새로움이 있을 거라 확신하며 간다.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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