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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여행 중 항상 긴장하게 했던 경찰
ⓒ 강병구
지금까지의 여행기에서 난 러시아 경찰들을 조심하란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그 이유가 된 결정적 경험을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자마자 하게 됐다.

사샤, 바샤씨와 마신 보드카가 깨지 않아 알딸딸하던 27일 새벽 1시,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객실에 타게 된 새 손님이 아니었다면 내리지 못할 정도의 상태였다. 그런 어수선한 정신에 기차에서 내려 지하통로를 통해 이르쿠츠크 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4명의 러시아 경찰이 서 있었다. 움찔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처럼 여권과 초청장을 보여주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여권과 초청장을 집어든 경찰은 나에게 무어라 계속 소리치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됐는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나는, 보드카가 확 깰 만큼 긴장하게 되었다.

한참을 소리 지르던 러시아 경찰은 이젠 내 여권과 초청장을 들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객지에서, 그것도 러시아 어느 기차역에서, 여권과 초청장을 빼앗기는 아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추운 새벽 식은땀을 흘리며 말도 못 알아듣는 경찰을 쫓아 다녀야 했다, 장장 30분간이나 말이다.

바이칼 호수의 중심도시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다

일이 해결된 건 미리 연락을 해둔 민박집 우진 형님과 재은씨가 기다리다 못해 나를 찾으러 플랫폼으로 들어오고나서였다. 기차가 도착한 지 30~40분이 지나도 내가 나오지 않자 수상하게 여긴 두 사람이 나를 찾다 경찰과 실랑이하는 나를 본 것이다. 마치 종종 있는 일인 듯, 두 사람은 나와 인사를 하고는 경찰에게 다가가 러시아 말로 몇 마디를 하더니, 여권과 초청장을 빼앗듯이 돌려받았다.

우진 형님은 "도착하자마자 당황하셨죠? 여기가 원래 이렇습니다, 이해하세요"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한참을 고생한 나는,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가 궁금했다.

"초청장이 영어로 되어 있어 무슨 말인지 몰랐다네요. 러시아 초청장을 달라고 했는데, 병구씨가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는데요. 황당하죠."

여권에 비자도 있고, 비록 영어이지만, 초청장에 또렷이 여행가능지역이 표시되었는데 그랬다는 게 그야말로 황당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한 건 하려다가 우리가 오니까 그냥 놔준 거예요. 저 중국인들은 돈 좀 집어주어야 할 겁니다."

우진 형님 말처럼, 같은 열차에서 내린 중국 상인들은 무거운 짐을 낑낑 메고, 떠듬거리는 러시아 말로 경찰과 흥정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러시아 땅의 새벽 1시, 이런 시답지 않은 일로 식은땀을 흘리지 않으려면 러시아어 초청장을 꼭 만들어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배낭을 메고 민박집으로 향했다.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잿빛의 이르쿠츠크

▲ 시베리아 교통의 중심지 이르쿠츠크 역
ⓒ 강병구
이르쿠츠크에선 6일 정도 체류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우선 거주등록부터 해야 했다(자세한 건 아래 여행팁 참조). 민박집에서 만난 문희, 재은씨와 함께 시내의 앙가라호텔에 가서 거주등록을 하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시베리아 지역의 러시아 도시를 여행한 사람은 알겠지만, 이 지역 러시아 도시들은 사실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오래된 유서 깊은 건물들도 있지만, 대부분 구 소련시절에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의 잿빛이 도시의 대표색상이다. 몇몇 교회나, 구 제정러시아 시절에 세워진 건물들이 이채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직사각형의 철저하게 실용적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널따란 혁명 기념 광장과 거기에 있는,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과 탑 등의 조형물들이 모양만 달리하여 대표적인 도시 볼거리로 있다. 관람할 박물관들도 영어 설명 없이,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듯한 전시형태를 띠고 있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이러한 모양새를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에서도 이미 보아온 터라,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열심히 설명해주려고 노력하던 재은, 문희씨에게는 미안했지만 말이다. 그나마 PC방에서 오랜만에 한국 소식을 알 수 있었던 것이 이르쿠츠크 도시 관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 앙가라 강변 공원의, 이르쿠츠크의 꺼지지 않는 불
ⓒ 강병구
비록 아직까진 도시 자체가 매력을 주지는 못했지만,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의 유럽지역과 시베리아를 연결하는 시베리아의 중심도시로 한창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니 향후에는 달라질 것이다. 또 베이징에서 출발하여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통해 러시아에 도착하는 도시이자, 현재는 독립한 여러 중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을 직접 연결하는 도시가 이르쿠츠크이기도 하다.

북한으로 가는 기차도 있다고 하니, 자원 등의 문제로 중앙아시아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되고, 한반도에서 출발하는 대륙횡단열차가 출발할 미래에는 매우 번화할 도시가 될 것이란 생각도 든다.

바이칼의 단 하나뿐인 딸 앙가라 강

▲ 앙가라 강변 공원의 모습
ⓒ 강병구
인공적인 도시 매력은 떨어지는 이르쿠츠크였지만, 대자연이 훨씬 매력적인 시베리아의 도시여서 그런지, 도시를 관통하는 앙가라 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단 하나의 강인 앙가라 강. 바이칼 호수의 깨끗한 물이 도시로 흘러드는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다. 아직 4월말의 차가운 날씨라 녹지 않은 얼음 덩어리가 강물에 떠내려 오는 모습은,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에서도 봤지만 신기했다.

이런 앙가라 강에 전설 하나 없을 리 없었다. 옛날 옛날 바이칼 신에게는 336명의 아들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앙가라였다. 그런데 앙가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이 사랑하는 북쪽의 예나세이를 찾아가려 했고, 그것에 분노한 아버지 바이칼은 거대한 바위를 던져 앙가라를 죽였다고 한다. 앙가라는 죽어서도 예나세이를 그렸고 그의 눈물이 흘러 흘러 북쪽의 예나세이 강까지 흐르게 됐다고.

그냥 이야기로 듣자면 수많은 지역 전설 중에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문희, 재은씨로부터, 앙가라 강가와 바이칼 호수를 근처에 두고 들으니 왠지 가슴에 와 닿았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에 바이칼 신이 던졌다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고 하니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에 확인 해봐야겠다.

앙가라 강가에 조성된 강변공원에는 오랜만에 보는 좋은 날씨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우리도 맥주 한 병과 간단한 안주로 강변의 벤치에 앉아 오후를 보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국적인 체험도 여행의 묘미지만 여유 있는 휴식도 배낭여행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팁 6] 러시아의 거주등록(레기스뜨라찌야)과 숙박에 대해

앞에서 짧게 이야기했지만, 러시아에선 외국인이 한 도시를 3일 이상 여행할 경우 지역관청에서 거주등록을 해야 한다. 원칙적으론 직접 해당지역의 관청으로 가야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일을 복잡하게 만들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상용비자로 장기체류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숙박업소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제약이 있다. 외국인의 투숙이 허가된 숙박시설은 대부분 별 3개 이상의 호텔급으로, 원칙적으론 러시아에서 유스호스텔 등의 저렴한 숙박시설은 외국인이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니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지역의 괜찮은 호텔에 투숙하는 것인데, 필자의 블라디보스톡 여행이나, 하바롭스크여행에서도 밝혔듯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 호텔에 투숙할 경우, 대부분 외국인임을 확인하고 호텔 측에서 거주등록을 해준다. 아니면 직접 요청하면 된다. 수수료는 1주일에 200~500루블 안팎이었다.

하지만 예산의 제약이 많은 배낭여행자가 호텔에서 계속 숙박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하루를 숙박하고 거주등록을 1주일치를 받은 다음 싼 호텔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대부분의 외국여행자들이 이런 방식을 사용하여 거주등록을 하므로 가장 일반적인 숙박법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를 비롯한 한국인 여행객이 자주 가는 지역에는 한두 곳의 한국인 민박집이 있다. 이곳에 숙박을 하면 대부분 주인과 연결되어 있는 고급숙박업소, 지역 관청 등을 통해 거주등록을 대행해준다. 거주등록비는 호텔 등에서 직접 하는 것보다 더 받을 수도 있지만, 한국말이 통하는 숙박지에서 한국음식을 먹는 점을 생각하면 숙박비가 비싸지만은 않다(단 모스크바는 예외).

이르쿠츠크에서 묵은 민박집은 ‘예지네 집’이란 곳으로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단독주택이다. 여름철에는 바이칼을 찾는 한국인이 상당히 많은 곳으로, 시간이 맞으면 현지에서 공부하는 어학연수생들을 가이드로 소개받을 수도 있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이르쿠츠크 국립대학 근처에 있는 점이 단점이긴 하지만, 민박자체로는 만족스럽다.

이르쿠츠크 민박집 '예지네' 연락처 : baikalgo@hanmail.net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지난 여행기에 소개한 러시아 열차 4인실은 꾸쎗이 아니라 꾸뻬입니다. 지적해주신 다음(daum)의 schnappi 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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