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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1일 갑작스레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상뜨 뻬쩨르부르그를 기차로 여행하고, 에스토니아의 탈린을 거쳐서 북유럽 4개국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월드컵 시즌에 맞혀서 중·동·남부 유럽을 돌아보고, 지난 7월 28일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3개월간의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같이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기사를 올립니다. <필자 주>


난, 지금, 거길 왜 갔을까?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내가, 대한민국이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정말 조금만 걸어가면 러시아도, 유럽도, 그리고 아프리카도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국사 교과서 몇 장만 넘겨보면 우린 저 넓은 대륙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넓은 만주벌판과 그보다 더 넓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를 두 발로 밟고 다녔다는 우리 선조. 한데 그런 교과서를, 뉴스를 읽고 들으며 느끼게 되는 것은 선조에 대한 자긍심보다는 현재의 초라한 모습이다.

동서남북 어디로, 어떻게 가 봐도 700km 정도의 길이. 그리고 그 안에서 대륙에 이어져 있다는 환상 아닌 환상을 갖고 살고 있던 나.

항상 궁금했다. 내 두 발로 밟아볼 수 있는 땅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섬 아닌 섬 속에, 답답하게 살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는 내 현실 아닐까?

궁금하고, 두렵고…. 그랬다. 자기 최면 마냥 대륙의 끝이라 믿고 있지만, 사실이 아닐 것 같은 느낌. 그게 취업도 안 되고, 졸업이라는 행사를 끝으로 마지막 보호막마저 벗겨져 버린 내 현재와 너무 닮았다는 느낌이었다.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거짓 네트워킹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 말이다.

▲ 블라디보스톡 역과 모스크바 행 001번 라씨야호 열차
ⓒ 강병구
기차는 국경을 넘어갈 수 있다

대륙횡단 열차의 꿈, 호방한 성격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왕성한 내 호기심의 갈증을 조금씩 해소해주던 계몽사 <소년세계대백과> 같은 유의 책들엔 기차,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에 대한 이야기가 꼭 있었다.

내가 특별히 그 항목들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비행기로만 외국을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차로도 외국을 갈 수 있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도 내가 체험해본 기차라는 교통수단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리는 고작 500km도 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기차를 타고 10시간이 훨씬 넘고, 심지어는 며칠씩 걸려 국경을 넘고 대륙을 횡단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꼭 해보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파리행 열차,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상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2000년 남북의 대표들이 만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했을 때, 내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온 합의 내용은 '경의선 연결'이었다. 꿈으로만 생각하던, 파리행 열차가 서울에서 출발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

하지만 5년,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현실이 되기 어려워 보였다. 합의 당시 그 해 연말이면 연결공사는 마칠 수 있고, 늦어도 2001년 말에는 화물 이동부터 가능할 거라는 희망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저 희망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희망마저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의 기대는 당분간 어렵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저 올해 3월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러시아로, 그래도 기차에 올라타 대륙횡단의 꿈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라이프치히 경기장의 붉은악마들과 태극기
ⓒ 박동구
유럽! 그리고 월드컵!!

근대 이후 산업화와 근대화라는 열등감이 뼛속까지 박힌 아시아인의 대부분 유럽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남들 하는 것이라면 꼭 해봐야 하는 한국 사람에게 유럽 여행은 이제 인생의 한 번은 꼭 가보아야 할 필수 코스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90년대 이후 대학에 다닌 사람이라면, 혹은 그 시절 20대를 겪은 사람이라면, 친구 또는 주변 누군가가 한 번쯤 다녀온 유럽 여행 이야기를 들어봤을 거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나도 한 번은!' 하는 강한 부추김을 느끼게 한다.

나 역시, 대학을 7년이나 다녔던 '평범한' 대한민국 대학생이었던 시절, 주변 친구들이 한 번씩 다녀오던 유럽 여행을 꼭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못해보고 졸업을 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로 대한민국 사람에게 월드컵은 이제 평범한 체육행사가 아니다. 4년에 한 번은 정신 나가도 되는, 그리고 맘껏 기뻐하고 슬퍼해도 되는 정신적 해방 기간으로 자리 잡는 듯하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요즘 시대의 명절이랄까?

그런데 그런 2002년을 난 생각보다 잘 즐기지도, 누리지도 못했다. 경기장은 비싸다고, 광화문은 정신없다고 해서 한 번 두 번 빠지고 나니 별로 특별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정신없이 지나다니던, 경기장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그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엔 유럽도, 월드컵도 즐겨보리라. 그냥 무작정 기차를 타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당분간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진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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