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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충한 날씨, 그리고 첫인상

▲ 하바롭스크 역
ⓒ 강병구
처음으로 타본 침대칸 열차에선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지 않았다. 13시간의 기차 이동. 서울-부산 간 이동이 4시간이 안 걸리는 한국에서라면 매우 긴 것이었겠지만, 장거리 여행에 대한 걱정으로 하도 긴장을 해서 그런지, 그리 오래 걸렸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한번 자고 나니 하바롭스크에 도착해있었다. 하긴 이후 두 번의 기차이동은 정말 신물이 날 정도였지만….

오전 7시 하바롭스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에서 가이드를 찾는 일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락을 하고 왔어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에서 알아온 전화번호는 불통이었다. 한국에서 출발 전 메일을 보냈지만, 그것만으로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을 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는 어째 쉽지 않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을 30분이나 헤매었지만 가이드인 듯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치듯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외국인이 수상쩍었는지, 경찰 한 명이 이상한 눈초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강병구씨시죠?"

왼쪽에서 다가오는 경찰에 당황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걱정을 하던 때,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말이었다.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두 분이 다행이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경찰은 검문을 하려들었고, 두 사람은 소개할 틈도 없이 러시아말로 경찰과 이야기하더니 가자고 했다. 아직 잠도 덜 깨어 정신이 없는데,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의 연속. 당황스러웠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두 분은 가이드를 해주시기로 한 장은주씨와 현신화씨였다. 두 분은 하바롭스크 대학에서 유학중인데, 아르바이트로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락을 주고 출발할 거라는 사전 약속과 달리, 연락이 없자 두 분도 무척 당황했다고 말했다.

혹시나 하고 나왔는데, 사람들이 다 나와도 여행자 모습이 보이지 않아 돌아갈려는 찰나에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하바롭스크도 블라디보스토크만큼이나 당황스런 첫 인상을 주었다.

바둑판 모양의 도시

▲ 하바롭스크 시내 지도 일부분
ⓒ http://intour.khv.ru
우선 두 분의 안내로 숙소인 아무르호텔에 도착해 짐부터 풀었다. 가방만 내려놓고 바로 여행을 시작했다. 원래 부탁드린 장은주씨는 사정이 있어서 현신화씨가 대신 가이드를 해주기로 했다.

어디에 가보고 싶으냐는 신화씨의 말에 대뜸 한말은 "하바롭스크 거리를 좀 걷죠"였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익히 들은 하바롭스크에 대한 소문이 '걷기에 참 좋은 도시'라는 것이었다. 여행서에 나온 지도에도 마치 바둑판 마냥, 정리가 잘 된 거리가 블라디보스토크의 정신없던 그것과는 확실히 달라보였다.

▲ 혁명광장의 꺼지지 않는 불과 추모시설
ⓒ 강병구
신화씨도 선뜻 동의해 호텔 앞부터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강변 쪽으로 쭉 걸어 내려오니 러시아 도시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혁명광장과 꺼지지 않는 불이 있었다. 하지만 하바롭스크의 그것은 좀 특별했다. 나중에 보게 된 모스크바나 상트 뻬쩨르부르그의 그것보다도 훨씬 웅장하게 만들어져있었다.

꺼지지 않는 불을 좌우로, 마치 두꺼운 책 마냥, 우람하게 서있는 석벽에는 2차 대전에 참전한 하바롭스크 출신 사람들의 이름이 전부 적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익숙한 이름들도 상당수 있었다.

연해주에 정착한 우리의 선조들 중 상당수가 소련군으로서 맹활약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겐 아직도 낯설다. 북에서는 민족영웅으로 떠받들어 지기까지 한다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다는 것이 참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여러 가지 느낌을 주던 아무르 강변을 따라 걷다가 방향을 틀어 다시 시내 중심가로 나왔다. 이렇게 편안히 걷다보니, 좀 촌스럽고 투박한 맛은 있지만, 하바롭스크는 정말 정리가 잘 된 계획도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좀 오래 된 듯 한 이 도시에 몇 해 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문한 뒤로는 도시 재건이 한창이라고 한다. 신식 백화점과 인터넷 카페, 누구나 하나씩 들고 다니는 휴대폰 등은 이곳이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선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도시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였다.

왜 이렇게 비싼 거야!

▲ 하바롭스크 중심가 거리 모습
ⓒ 강병구
▲ 1박에 10만원 짜리론 안 보이는 아무르호텔
ⓒ 강병구
아무르호텔에서 체크인 할 때부터 느꼈지만, 하바롭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보다도 훨씬 비쌌다. 1박에 2500루블(약 10만원)하는 중급호텔이라니, 납득할 수가 없었다. 한데 그나마 이것도 싼 편이라는 것이 황당할 따름이었다.

가격으로 인한 불쾌함은 지역학 박물관에서 극에 달했다. 160루블의 입장료에 사진촬영은 따로 150루블을 내야 가능하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마저 촬영횟수에 제한이 있다는 황당한 설명에 매머드 뼈에 대한 호기심이 싹 사라지려고 했다.

시베리아에서 발굴된 매머드 뼈가 전시되어 있다는 이곳은, 이외에도 이 지역의 희귀동물들의 박제와 근처의 토속인인 나나이족(여진족)의 여러 민속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가볼 만한 곳이다. 하지만 300루블이 넘는 돈을 에누리 없이 지불해야만 한다는 박물관 직원의 고압적인 태도는 정말 불쾌했다. 결국 사진을 안 찍고 입장만 하기로 했지만, 혹시라도 사진을 찍을 까봐 졸졸 쫓아다니는 모습은 참 씁쓸했다.

그러나 정말 하바롭스크의 물가가 비싸다고 느낀 것은 백화점에 가서였다. 허름하기 짝이 없고, 박음질도 엉성한 중국제 가죽 잠바가 우리 돈으로 몇 십 만원씩하고, 겨울 추위로 이곳에 살려면 누구나 하나쯤 갖춰야한다는 러시아 털모자나, 모피 의류들은 몇 천 몇 만 루블을 훌쩍 넘어있었다. 국립학교 교사의 월급이 4~5천 루블에 불과하다는데, 그렇다면 이런 물건을 어떻게 구매한다는 말인가?

신화씨의 설명에 의하면 이런 인플레이션이 최근 극심해 졌다고 한다. 현지에서 머무는 유학생들도 2005년 10월경과 올해 2월 갑작스레 집세가 올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또 생필품 가격도 빠르게 오르는 중이란다.

원래 러시아가 생필품, 공산품을 자체생산하지 못하고 수입하는데다가, 최근엔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외환이 갑작스레 늘어나 물가가 불안하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듣고 갔다.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여행서에 쓰여 있는 가격은 전혀 참고가 되지 않는 가격이 되어버렸다.

▲ 그나마 싼 물건을 구할 수 있었던 끼따이츠끼 리녹(중국 시장)
ⓒ 강병구


[여행팁 4] 하바롭스크에선 이렇게!

▲ 불린 세트
ⓒ강병구
*하바롭스크에서 물건 사기 : 기념품은 아니더라도, 장거리 기차여행을 시작해야할 하바롭스크에서는 살 것들이 많다. 중심가의 엔까 씨찌 쇼핑센터는 한국의 대형마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물건을 판다. 그동안 러시아의 불친절한 점원과 가게들에 놀랐다면 여기서 맘 편히 물건을 고르자.

지하 1층의 식품, 잡화점은 나름대로 다양한 물건들을 구비해 놓았다.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중국시장은 싼 물건을 사기에 제격이다. 하지만 소매치기가 있고, 장사꾼의 속임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꼭 돈은 물건 받은 뒤에 지불해야한다.

*도보로 시내 돌아다니기 : 위의 지도를 봐도 알겠지만, 하바롭스크는 상당히 정리가 잘 되어있는 도시다. 도보로 돌아다녀도 충분히 시내 대부분을 구경할 수 있다. 오히려 복잡한 버스를 타는 것이 더 헷갈릴 수도 있다.

시내에서 검문도 심하지 않으므로 특별한 위험을 느낄 일은 없다. 다만 도보로 돌아다니며, 유기견은 조심하자. 유기견이 한국처럼 소형애완견 아니라 커다란 사냥개들이다. 종종 사람을 습격하기도 한다는데, 술에 취해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큰일은 없다.

*추천 먹거리 : 블라디보스토크의 불편한 먹거리 사정에 비한다면, 하바롭스크에는 길거리에서도 먹을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 샤우르마로 불리는 터키식 케밥이 그것이다. 비싸지도 않고 간편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으니 추천.

또 블린(러시아식 펜케익)과 보르쉬(스프) 등의 러시아 음식을 패스트푸드 형태로 파는 것도 유행이란다. 러시아 음식에 관심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단 보르쉬는 새빨간 색깔에 비해 듬뿍 들어간 마요네즈로 느끼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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