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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치히 경기전 우리 돼지껍데기파와 프랑스 응원단들
ⓒ 김현기
프라하로 가는 길에서 헤어지고 만나고

새벽까지의 음주 가무는 확실히 힘들었다. 비록 기적 같은 프랑스 전의 감동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라이프치히 역에 도착하였을 때는 그냥 어디서 눈을 붙이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라이프치히 다음 일정은 체코의 프라하였다. 무작정 떠난 내 여행에는 계획이란 게 없지만, 한국에서 일정표를 짜온 현기에게는 이미 프라하 여행을 가야만 하는 일이었다. 미리 프라하 민박집에 선불을 지불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너무 즐겁게 함께한 동구 형과 정도 그리고 원희와는 그만 해어져야 했다. 원희와 정도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동구 형은 일정문제로 파리로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남은 인터라켄 돼지껍데기파들도 마지막 경기가 있을 하노버에서 만나기로 하고 라이프치히 경기장에서 짧은 이별을 했다.

라이프치히에서 탄 열차는 프라하행 열차를 타기 위해 드레스덴까지 가는 것이었다. 너무 졸려 기차 밖 풍경도 전혀 기억하지 못할 만큼 잠에 빠져든 터라, 드레스덴이 종점이 아니었다면 내리지도 못할 뻔했다.

▲ 프라하에서 만난 붉은악마들
ⓒ 김현기
드레스덴에서 갈아탄 프라하행 열차에는, 이틀 전 라이프치히의 한국 사람들을 모두 실었다고 할 만큼 많은 한국인들이 타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전이 끝나고 스위스로 향할 때도 그랬는데, 모두 누군가로부터 이번 라이프치히 경기 끝나고는 프라하로 가라는 지시를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었다.

익숙한 말소리에 낯설지는 않았지만, 단잠을 자기에는 너무 또렷이 들리는 말들이 시계 알람 같았다. 어제의 경기 평부터, 앞으로의 여행일정과 이러저러한 하소연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귀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참 특별한 경험이다. 한국이 아닌 이국의 기차 안에서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말이다.

차 안에서 열차표 확인과 검문을 받은 뒤 우리는 프라하 북역이라 불리는 홀레쇼비체 역에 내렸다. 여행서에는 이곳이 아니라 중앙역에서 내리라는 주의 문구가 뚜렷했지만, 무슨 일인지 베를린에서 출발했다는 이 열차의 종착역은 이곳이었다.

아무튼 역 안에서 약간의 혼란과 적응을 거친 후 지하철을 타고 현기가 예약해 두었다는 영은이네라는 민박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는데 주의사항은 상시적인 표검사가 특히 동양인에게는 집중된다는 것이었고, 인상적인 것은 프라하의 지하철역들 거의 다가 에어컨은 보이지도 않는데 너무 시원했던 점이었다.

처음 오는 도시라면 당연히 거쳐야할 숙박지 찾아 30분 헤매기를 경험한 후, 도착한 숙박지에는 오늘 아침 헤어졌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엔 프라하 여행을 함께하게 된 붉은 악마분들도 있었다.

형수님과 함께 오신 귀현 형님과, 울산 현대의 열렬한 서포터즈이신 명호 형님, 그리고 축구를 사랑하는 혜진 누나와 부산 아이파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월드컵 후엔 구단에 취직해 버린 보람이까지, 만나서 반갑고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프라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비셰흐라드

▲ 비셰흐라드 유적에서 내려다 본, 빨간지붕이 인상적인 프라하의 건물들과 몰다우 강 모습
ⓒ 김현기
현기와 우리는 마음씨 좋고 화끈한 성격의 붉은 악마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첫 여행지는 자상하신 민박집 아저씨께서 꼭 가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신 비셰흐라드라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여행서에는 안내 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지만, 프라하의 역사, 유적을 알 수 있고, 프라하와 몰다우 강의 멋진 풍경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체코 역사만 따로 공부한 것이 아니었기에, 비셰흐라드라는 곳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 후 찾아본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해 비셰흐라드를 이해할 수 있었다.

▲ 1100년에 만들어져,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성 마틴 성당
ⓒ 김현기
비셰흐라드는 프라하라는 이름을 만든, 7세기 전설의 왕비 리부셰가 살던 궁전터라고 한다. 이전 모계부족사회였던 체코 족들은 7세기 리부셰 공주가 왕위를 물려받은 후 보헤미아 왕국으로 선언되었고, 이때가 우리의 단군시대처럼 체코인 이야기가 신화에서 역사로 넘어오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리부셰 왕비는 꿈속의 예언을 통해 프라하라는 이름을 짓게 되고, 이후 보헤미아 왕국은 찬란한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현재는 당시의 성 윤곽을 알 수 있는 유적들이 남아있다.

리부셰 왕비와 관련된 것 외에도, 비셰흐라드는 다른 체코의 역사적 유적들로도 잘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체코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묘가 있는 국립묘지도 이곳에 있고, 1100년에 만들어졌다는 독특한 모양의 성 마틴 성당이나, 화려한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 레오폴드의 문 등의 문화유산들이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이기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한다.

비셰흐라드는 유적들이 울창한 숲 속에 숨어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문화유산 감이라 할 만한 풍경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약간 높은 위치인 이곳에서 몰다우 강과 프라하의 인상적인 빨간 지붕의 건물들을 보는 것은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이었다. 비록 그때는 저런 건물들은 없었겠지만 몰다우 강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이, 리부셰 왕비에게 이곳을 왕궁으로 삼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1866년 프러시아 군대가 오스트리아에게 승리를 거둔 뒤 비셰흐라드는 폐쇄되었다고 한다. 흥망성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적용된다는 것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폐허로 어렴풋한 형체만 남아있는 리부셰 왕비의 목욕장을 보면 더욱 그렇다. 몰다우 강가의 아름다운 절벽에 있는 목욕장을 보면, 그런 곳에 목욕장을 만들만큼 대단했던 당시 왕비의 권력도 알 수 있지만, 더불어 폐허로만 남아있는 모습이 흥망성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 사진 중앙의 리부셰 왕비의 목욕장 유적과, 현기
ⓒ 김현기
체코에선 맥주를 먹자

▲ 내가 추천하는 체코 맥주 감브리너스
ⓒ www.delcampe.net
까를 교와 프라하 성의 야경, 구시가지의 그림 같은 건물들과 인형극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나에겐 프라하, 아니 체코의 최고인 점을 꼽으라면 맥주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엔 한국에도 잘 알려진, 필스너와 미국 버드와이저의 진본이라는 체코 부드바이저 같은 유명 체코산 맥주 이야기를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또 그런 술들을 현재 우리나라 몇몇 술집에서는 수입하여 팔고 있기도 하다.

▲ 500년 되었다는 우 플레쿠의 자체 양조 맥주
ⓒ 김현기
하지만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체코 맥주는 대단하다고 한다. 체코인들은 독일인 이상으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도 유명하고, 체코 산 맥주는 종종 독일맥주 이상으로 평가받을 정도라고 한다. 유럽 어느 곳이나 물값만큼 싼 맥주를 접하게 되고, 물 대신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체코에서는 그런 모습이 훨씬 익숙하다.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것은 그런 대단한 맥주들의 가격이 너무 싸다는 점이다.

유럽의 유명 술집 대부분이 그렇지만, 체코에도 유명한 술집은 오래된 자체 양조장과 술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날 저녁 현기와 함께 간 우 플레쿠(U Fleku)라는 술집도 그런 곳이었다. 500년이 되었다는 술집이었는데, 자체 생산한 주류들을 갖고 있었다. 맥주와 함께 특이한 약술도 있었다. 특별하게 맛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독특한 맛과 즐거운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다.

이후로도 체코에서 여러 날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것에는 다양한 맥주들이 한 목을 했다. 프라하, 체코에 가면 꼭 맥주를 먹자, 체코와 프라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우 플레쿠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가족
ⓒ 김현기

[여행팁 26] 프라하에서

▲ 프라하의 대중교통 노선표
ⓒhttp://www.dp-praha.cz/
체코로 갈 때 교통편 유의점: 유레일패스로 여행하는 한국 여행자들은 체코에서 유레일패스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종종 잊어버린다. 그래서 그냥 기차에 오르는 경우, 이런 점을 노린 검표원을 만나 적지 않은 벌금을 물게 된다.

반드시 프라하나 체코로 갈 때는 출발지 역에서 목적지를 밝히고, 자리예약을 하거나 표를 구입해 두는 것이 좋다. 자리를 예약하려고 하면 국경 이후 체코 구역의 열차표는 구입해야 한다는 설명을 해줄 것이다. 아니면 동유럽패스나, 프라하패스를 미리 구입해 가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잘못 탔어도 과도한 벌금을 요구하는 경우는 적극 대처하자. 필자가 만난 여행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각자의 대응에 따라 벌금이 10유로에서 60유로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비셰흐라드 찾아가는 길: 대부분의 한국 여행서에 나와 있지 않은, 이곳을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총 3개로 되어있는 프라하 지하철 중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C선 Vy역에서 내리면 바로다.

영은이네집: 요즘엔 체코에 한인민박집이 여러 곳이 생겨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필자와 동행이 묵은 이 민박집은 약간 시 외곽에 있는 곳이지만, 친절하고 잘 챙겨주시는 사장님 부부가 여행의 어려움을 많이 덜어주신 곳이다. 인터넷주소: http://www.ipraha.com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중동부 유럽 정보는 지역의 특성상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많이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여행기는 독일월드컵 이야기와 함께, 유럽 중에서 제가 경험한 특별한 이야기와 흔히 잘 소개되지 않는 여행지를 중심으로 소개 하겠습니다. 

비셰흐라드에 관한 이야기는 echohouse에서 출간 된 장혜원님의 <프라하와 사랑에 빠진 어느 로맨티시스트의 뷰파인더 프라하>를 참고하였음을 밝혀둡니다.

지난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8월 23일(목요일)에 이어집니다. 

사진을 제공해주신 김현기님께 감사드립니다.


태그:#동유럽, #체코, #프라하, #유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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