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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상부터 겁을 주는 블라디보스토크

▲ 드디어 3개월 간의 여행 출발!
ⓒ 강병구
우여곡절 끝에 4월 21일, 출발할 날짜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라는 여행지가 주는 압박감은 나에게 여행의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결국 출발 전 여행사에 부탁하여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는 한인 가이드를 섭외했다. 돈을 조금 더 쓰는 편이, 두려움에 여행의 발목을 잡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은 것일까. 마침 블라디보스토크 가이드를 해주실 현지 여행사 이종성 사장님이 같은 날, 같은 비행기로 가게 되어 공항부터 가이드를 받게 되었다.

국제선이라고 하기엔 좀 모자란 듯한 블라디보스토크 항공 비행기를 타고, 그곳에 도착한 때는 인천에서 출발하여 2시간 뒤였다.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러시아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깨달으며 내린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 말하기 힘든 곳이었다. 부실한 활주로 때문에 비행기는 덜컹대며 착륙했고, 창밖으로 보이는 활주로 주변은 빽빽한 자작나무 숲과, 공항 인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비포장 길이었다.

하지만 진짜 나를 겁먹게 했던 건 내린 이후의 입국심사였다. 고압적인 태도의 러시아 공항직원들의 표정. 무표정한 얼굴마저 화를 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입국심사 과정도 복잡해서, 여권과 비자를 한참 검사하더니 다시 입국 목적을 질문하고, 내가 당황하여 잘 알아듣지 못하자, 한국어를 하는 러시아 여자공항경찰(허리춤에 찬 총을 확실히 확인시켜주는 포즈로 서 있던)이 범인을 심문하듯 "여긴 왜 왔어요!!"를 외쳤다.

먼저 통과하신 이 사장님의 도움으로 별 탈 없이 빠져나왔지만, 정말 당황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첫인상으로 겁을 주길 원한 거였다면, 난 확실하게 겁을 먹었다.

계속되는 여행의 장애물들

▲ 비행기가 착륙할 때 창밖으로 본 공항주변 모습.
ⓒ 강병구
공항부터 충분히 당황했지만, 공항을 빠져나와서도 날 놀라게 할 일은 여전히 많이 있었다. 이 사장님의 차로 공항에서 30여 분을 달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들어오기까지 2번의 불심검문을 당했다. 다음날 본격적인 관광을 할 때는 4번의 검문을 당했다. 단 이틀 동안 6번의 검문을 당하다니, 나로선 무척이나 놀랄 일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내 반응에, 이 사장님은 "외국인, 동양인 여행객은 러시아 경찰에게 가장 환영받는 용돈 지갑이에요"라며 "러시아 어딜 가도 이런 불편은 감수해야 할 테니 마음 단단히 먹고 여행해요"라는 말로 설명해주었다.

차선이 없는 도로와 워낙 많은 웅덩이로 비포장 길이나 다름없는 도로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도로 곳곳의 웅덩이는 워낙 깊어서 바퀴가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어 보였다. 실제 이틀간의 여행 동안 웅덩이에 빠져 '전복'된 것으로 보이는 차들을 3번이나 보았다. 그런 웅덩이를 지날 때면 차선이 없는 차로에서 어떤 위험에도 핸들을 급히 꺾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들 레이싱이라도 하듯, 운전자 누구도 감속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반소매를 입을까 하던 4월 말, 블라디보스토크는 발목이 넘는 눈이 쌓여 있었다. 그런 날씨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두 나라의 여행 환경, 눈 때문에 추운 것보다 그런 차이가 여행을 시작하는 나에겐 훨씬 서늘하게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불편함은 특별하다

▲ 이런 웅덩이가 도로 곳곳에 패여 있다.
ⓒ 강병구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러시아 여행을 통틀어 이만한 불편함은 다시 없었다. 말하자면 블라디보스토크의 불편함은 특별한 경우였다.

1860년대 도시 창설기부터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언뜻 보기에도 사람의 편안함보다는 전쟁의 수월함이 우선이었다.

▲ 혁명광장 뒤 쪽의 C-56잠수함
ⓒ 강병구
러시아 제국이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극동의 부동항이 바로 이곳이다. 러시아 제국시절부터 군사목적으로 도시를 개발하였고, 제국 말기 이곳을 급격히 개발한 이유는 바로 러일 전쟁의 패배로, 일본을 방어할 기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후 냉전시대에는 러시아 태평양함대사령부가 설치되어, 커다란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통제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란 말뜻이 러시아어로 '동방을 점령하라'라는 것은 이런 역사와 무관치 않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니, 얼마 전까지도 군사도시로서 외국인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던 이런 곳에서 여행 편의를 찾는다는 것이 꽤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도시 곳곳에는 여러 시기에 걸친 군사시설물들이, 상당수는 아직 미개발 상태였지만, 관광자원화되고 있었다. 항구 옆 혁명광장 근처에는 C-56이라는 잠수함이 통째로 지상에 전시되어있다. 핵잠수함이 나오기 전까지 최고급 잠수함으로 대양을 누렸다는 이것은 현재 잠수함 박물관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포대들이나 허름해 보이는 군함 등은 러시아에서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함이다.

지하요새도 러시아제는 다르다

그리고 이런 블라디보스토크의 군사적 특별함에 결정적인 인상을 준 장소가, 제7지하요새였다. 아직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이 덜 된 이곳은, 이 사장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개발자 세르게이씨가 운영하는 곳이라서 가볼 수 있었다.

▲ 요새 입구에서 세르게이씨.
ⓒ 강병구
러일전쟁의 패배 이후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극도로 높아진 시기,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꼴라이 2세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일본함대가 상륙할 것을 우려하여, 바다에 인근의 언덕마다 지하 기지를 만들 것을 명령한다. 그로 인해 블라디보스토크에는 100여 개에 달하는 지하 기지가 만들어졌는데, 소문에 의하면 이 기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총 길이가 몇 백km에 이르렀다고 한다.

러시아 혁명 이후 이 지하기지는 방치되어 상당수는 붕괴하고 잊혔으나, 최근엔 세르게이씨 같은 사람들이 군 당국에서 불하받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제7지하요새 역시 버려진 채로 방치되어 입구에서 몇백 미터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는데, 현재는 십여 km 정도까지 재건되었다. 또 요새 안에는 발굴과정에서 나온 상당수의 구 러시아군의 무기나, 소련시대 것으로 보이는 포탄들이 널려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신기할 이런 유산들이 방치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이 사장님에게 질문해 보았다. 특히 러일전쟁과 관련하여 일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 보면 상당히 인기를 끌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았다.

하지만 이 사장님의 대답은 "이미 나홋카 등지에 러일전쟁 관련 상품들이 있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데다가, 블라디보스토크의 군벌들은 여전히 외국인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는 것 자체에 불만이 있어요"라며 "그런데 더구나 군사시설을 관광 상품이라는 목적으로 개방하면 상당한 마찰이 일어날 겁니다"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지하요새에는 이런 넓은 공터도 있었다.
ⓒ 강병구
극동의 경제, 무역중심지로 발돋움하려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지난 150여 년의 역사 내내 이어진 군사요충지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여전히 서로 싸우는 중이었다.

[여행팁]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면

▲ 배를 타면 도착하는 블라디보스톡 여객터미널
ⓒ강병구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는 법 : 한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항공편을 이용하거나 배편을 이용할 수 있는데, 가격은 항공편이 평균 2배 정도 비싸다.

동춘항운에서 운영하는 배가 속초에서 출발하며, 성수기 주 2회, 비성수기 주 1회로 운행한다.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블라디보스토크 항공의 비행기가 주당 각 3일씩 거의 매일 운항하고 있다. 가격은 대한항공이 좀 더 비싸지만(한국에서 발권할 경우) 대략 일반항공권 편도가 40만 원 안팎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배편은 자루비노를 거쳐 도착까지 약 30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에 비해, 항공편은 점심에 출발하면 당일 저녁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도착할 수 있다. 다만 배편은 여객터미널이 시내 중심에 있는 점이 편리하고, 비행기를 이용하면 공항이 시내와 상당이 떨어져 있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공항으로 오는 버스는 드물다.) 돈과 시간 중 중요한 걸 선택하면 될 듯.

입국심사 자세 : 앞에서도 말했지만 러시아는 아직 외국인 관광객에 편한 곳이 아니다. 특히 배낭여행객에겐 여행의 어려움이 많다. 그런 어려움은 입국수속부터 시작된다. 시비를 걸려면 어떤 것이라도 걸릴 수 있으므로 안내자가 없다면 편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초조해 보이거나, 뭔가를 숨기는 듯한 인상을 주면 가차없이 다음 비행기로 추방당할 수도 있다. (이 사장님의 전언에 의하면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단다.) 특히 비자에 표시된 입국목적은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관광비자라면 공항직원의 질문에 '관광'이라고 짧게 대답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한국어를 하는 직원이 와서 한국말을 한다고 이해해줄 거란 생각을 하면 큰 오산이다. 종종 이 직원은 입국자의 다른 목적을 알아볼 요량으로 여러 말을 시켜본다는데, 이때 "관광하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러시아도 좀 알아보려고요"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정말 추방당한다고 한다. 반드시 비자에 표기된 목적을 잊지 말 것.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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