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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철도 999 같은 아무르 호의 밤 정차 모습
ⓒ 강병구
탑승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저 상상만 하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평생 살며 탈 일이 있을까 생각만 하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누우면 몸을 쭉 펴기도 힘든 불편한 침대 차였지만, 그런 건 별 걱정꺼리가 아닐 정도의 느낌이었다.

어릴적 많이 보았던 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된 느낌이랄까? 철이는 메텔과 함께 우주를 여행했지만, 난 지상을 달리고 있는 차이는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특히 새벽녘 어느 이름 모를 간이역에 잠시 정차하여 본 기차의 모습은, 정말 만화에서 본 은하철도 999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봐도 위에 찍은 사진이 여행 중 내가 찍은 사진 중 가장 맘에 드는 것이다.

끝이 안 보이는 지평선을 달리다가도, 어느 순간 마을을 지나가고, 그러다 다시 한참동안 자작나무 숲을 통과하는 기차여행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 열차여행이 60시간동안 계속되는 상황이란, 힘듦보다 감격의 연속이었다.

횡단 열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

▲ 한참을 달린 끝에 본 초원의 마을
ⓒ 강병구
하바로프스크에서 탄 열차는 043번 아무르 호라는 기차였다. 러시아의 열차들은 출발지와 종점에 따라 번호와 이름이 각기 다른데, 빠른 번호, 유명한 이름일수록 속도도 빠르고, 시설도 좋을 가능성이 높으며 비싸다.

아무튼 하바로프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동안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은 총 8명이었다. 7명의 러시아인과 1명의 아제르바이잔인을 만났고, 거의 영어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맨 처음 만난 사람은 안드레이라는 러시아인 청년으로, 하바로프스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 그래도 5, 6시간은 가는-벨라고르스크로 일을 하러 간다고 했다. 컴퓨터 관련 기술직을 갖고, 인도와 동양의 명상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나름 러시아식 깨인 사람이라 그런지 약간의 영어는 가능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단 한마디의 영어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차장까지도….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아제르바이잔인 데마 씨로 카스피 해의 아름다운 도시인 바쿠(아제르바이잔의 수도) 출신이라고 했다. 카스피 해에서 수영은 하며 자랐다는 데마 씨와는 그림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지도를 짚어가며, 그림을 그리고 그러다 의사소통이 된 듯하면 서로 고개를 끄덕거리다 웃고.

데마 씨를 확실하게 기억하게 하는 또 하나는 특유의 체취 때문이었다. 서양 사람에게서 나는 암내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코를 찔러 비좁은 열차 칸을 벗어나고도 싶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도 나한테서 나는 내가 모르는 체취에 힘들어 할 것 같아 미안해졌다. 이런 생각을 하며 여행을 하고 있는 내가 못나보였다.

세 번째로 만난 사람들은 이름 모를 러시아 신사(?)들이었다. 둘째 날 저녁에 탄 이 사람들은, 이전의 사람들과 달리 나에게 아무런 질문도 안하고, 관심도 안보이고 그저 시트를 깔고 잠을 청하려고만 했다. 나에게 한 표현은 조용히 해달라는 손짓. 양복을 입은 3명의 러시아 신사들은 그날 밤 그렇게 일찍 잠을 청하더니, 새벽 소리 없이 모두 내렸다.

말은 언어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 왼쪽부터 바샤 씨, 사샤 씨.
ⓒ 강병구
그리고 문제의 이 사람들, 사샤, 바샤씨 형제를 만났다. 이들을 만났을 때는 60시간의 5/6이 지나 한 10시간만 가면 이르쿠츠크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시베리아 열차안의 보드카를 권하는 러시아인을 결국 못 만나보는구나 하는 실망을 할 무렵이었다.

치타쯤에서 탄 이들은 전형적인 러시아인의 얼굴이었다. 말은 물론 통하지도 않았고. 뭔가 의사소통을 하려는데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물어보는 말이라곤 "끼따이?(중국인?)"하는 질문뿐이었다.

난 그저 "니엣, 까레야.(아니, 한국.)"하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한 건 바샤 씨였다. 기차에 타자마자부터 차장에게 술을 주문하던 그는, 나에게도 보드카를 권했다. 드디어 보드카를 권하는 러시아인을 만났지만, 내릴 시간이 10시간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외국인에게 보드카를 먹이고 짐을 털어간다는 흉흉한 소문들 들은 지라 거절을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권했고, 서너 번 거절하자 더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손으로 조금만 마시겠다는 시늉을 하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사샤, 바샤 씨와 이야기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고, 안주인 도시락 라면이 하나둘씩 늘어날수록 점점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가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두 사람은 형제로 총 3형제인데, 큰 형의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어 큰형이 사는 울란우데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바샤 씨는 41살, 사샤 씨는 43살로 바샤 씨는 1남 1녀, 사샤 씨는 1남 2녀를 두고 있다고 했다. 두 분 다 술을 무척 좋아하는데, 아내들은 하나같이 술을 못 먹게 한다고 투정을 부렸고, 그래도 아내가 만들어준 이 안주가 가장 맛있는 보드카 안주라고 했다. 바샤 씨가 자랑한 그것은 돼지비계를 소금에 절인 러시아 전통 음식이었다.

까레야는 도시락 라면과 초코파이로 알고 있고, 까레야라면 평양에서 왔냐는 이야기도 했다. 난 평양이 아닌 서울에서 왔다고 했더니, '아, 까레야가 두 개였지.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들은 나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는데, 내가 몇 살이고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고, 왜 여행을 하는지를 유심히 들었다. 잘 납득이 안 되는 것 같은 부분은 질문도 해가며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돼지비계 절임과, 도시락 라면 몇 개와 함께 9병의 보드카를 마셨다.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한 일이다.

이제 바이칼이다

▲ 노을이 질 무렵, 아직 얼어있는 바이칼 호수
ⓒ 강병구
언제 내린지도 기억이 안 나게, 사샤, 바샤 씨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려있었고, 테이블엔 9병의 보드카 술병만 남아있었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잡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짐을 점검했지만 없어진 건 없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창밖은 그렇게 보고 싶던 바이칼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아직 녹지 않은 얼음 호수인 모습으로 말이다. 한참을 달려도 호수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신기한 경험은 노을이 지고 밤이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이제 난 그런 바이칼로 간다!

[여행팁 5] 시베리아 열차 여행을 위한 기본 정보 1

▲ 시베리아 횡단 열차 구간 티켓
ⓒ강병구
시베리아 횡단 열차 티켓 구입 : 창구에서 직접 사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지만, 러시아어가 안 되는 사람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창구에서 버벅거리고 있으면 창구직원이 화를 내기도 하고, 뒤에서 욕을 들을 수도 있다.

어설픈 러시아 말로 사려고 시도하는 것보다는, 가려는 목적지, 출발 시간, 좌석 종류, 열차 번호 등을 종이 정확하게 써서 창구에 넣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외국인이면 가장 비싼 좌석으로 끊어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냥 타자.

그나마 그 자리들이 안전하고 서비스가 좋다는 것을 위안 삼자. 참고로 4인용 꾸쎗을 끊은 것이 일반적이다. 2인실은 비행기보다 비싸고, 6인실은 장거리 여행자가 탈 곳이 못 된다. 글은 당연히 러시아 말로 써야한다. 최근엔 국내 여행사에서 티켓 구입 대행을 해주기도 한다.

티켓의 가격 :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기차번호가 앞번호 일수록, 유명한 이름 일수록, 좌석이 좋을 수록 비싸진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라고 보는 것이 좋은데, 싸게 여행하려는 생각보다는 확실한 좌석을 확보하고 안전하게 가려는 노력을 하자.

필자가 블라디와 하바, 하바와 이르쿠츠크를 이동하며 탄 열차들은 모두 4인실 꾸쎗으로, 각각 1405루블(6만원 정도, 06년 4월), 4146루블(15만원 정도, 06년 4월)이었다.

두번 째 탄 열차는 가격이 좀 비싸기도 했지만, 고급형이었는지, 하루에 1끼의 식사가 제공되기도 했다.(총 3번) 가격은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러시아 상황을 생각하면 참고자료 정도로만 생각하자.

기차내 차장의 문제 : 열차 내에서 차장의 권위는 상당하다.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좋다. 하지만 99.9% 영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대부분 영어를 하면 상당히 싫어한다는 점에 유의하자. 간단한 러시아어를 떠듬 거리기만 해도 태도가 바뀐다.

시트는 차장에게 직접 구입해야하는데, 대부분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으므로 잔돈을 갖고 있다 지불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 70루블을 달라고 했는데, 100루블을 주자 30루블을 돌려주지 않았다. 라면, 술 같은 것도 차장에게 구입할 수 있다.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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