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는 이해할 수 없는 팀이다. EPL이라는 세계 최고의 리그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월드컵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데이비드 베컴과 폴 스콜스, 웨인 루니, 해리 케인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끊임없이 배출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강팀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하는 굴욕까지 맛봤다.

U-20 월드컵 성적은 더 암울하다. 이전까지 10번이나 이 대회에 도전했지만, 우승은 물론 결승에 진출한 적도 없다. 이번 대회 전까지는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했다. 잉글랜드가 16강에 진출한 것은 무려 24년 전이었다. 심지어 1997년 말레이시아 대회에서 마이클 오언의 결승골로 멕시코를 눌렀던 것이 마지막 승리였다. 이후 17경기 동안 단 한 차례도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해리 케인과 에릭 다이어, 존 스톤스 등을 앞세워 명예회복에 나섰던 2013 터키 대회 역시 승점 2점에 그치며,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도 큰 기대가 없었다. 폴 심프슨 감독마저 경험을 쌓기 위한 무대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잉글랜드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는, 이른바 '뻥축구'로 무려 3골을 뽑아냈다. 경기력은 아쉬웠지만, 20년 만에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이번 대표팀은 저력이 있었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2차전 기니전에도 승점을 따냈다. 상대의 전방 압박에 밀려 자책골과 골대 행운이 따르는 등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지만,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개최국인 대한민국과 3차전에는 승리는 물론 경기력까지 올라왔다.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워 오랜 시간 볼을 소유했고, 측면 스피드가 빛을 발하며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2승 1무, 무려 24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삼사자 군단' 잉글랜드, 이대로 우승까지?

국제대회에서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팀들의 공통점은 경기를 치를수록 더 강해지고, 전술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는 잉글랜드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와 베네수엘라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공격력이 뛰어나고, 중원 역시 탄탄하다. 약점인 수비만 개선된다면, 사상 첫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모양새다.  

잉글랜드가 5월 31일 오후 8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16강전 코스타리카와 경기에서 2-1로 승리했다. 잉글랜드는 경기 초반과 막판 코스타리카의 공세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안정적인 경기력에 화끈한 결정력을 뽐내며 8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승리의 중심에는 왼쪽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아데몰라 루크먼이 있었다. 코스타리카 수비가 밀집한 지역은 간결한 이대일 패스로 뚫고 나왔고, 수비가 막기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을 뽐내며 상대 진영을 마음껏 휘저었다.

잉글랜드의 공격을 이끈 루크먼은 득점까지 터뜨렸다. 전반 35분 우측 풀백 존조 케니가 올려준 크로스를 상대 수비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이를 루크먼이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슈팅할 각도를 만든 뒤 득점으로 연결하는 '침착성'이 빛났다.

전반 41분에는 크로스가 막히자 드리블 돌파에 이은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추가골까지 노렸다. 후반 13분에는 날카로운 프리킥 능력을 자랑하며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루크먼의 '원맨쇼'는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추가골까지 뽑아냈다. 후반 17분 왼쪽 측면에서 칼버드-르윈이 짧게 내준 패스를 잡아냈고, 간결한 드리블로 수비수 2명을 따돌린 뒤 슈팅까지 연결해 득점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급'이 다른 모습이었다.

루크먼의 맹활약에 가려졌지만, 신태용호를 괴롭혔던 측면 풀백의 활약도 대단했다. 특히, 왼쪽 풀백 카일 워커-피터스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는 상대 수비가 몇 명이 가로막든 스피드와 드리블로 뚫어냈다. 측면은 물론이고,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는 그를 막아서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누구보다 빨랐고, 드리블은 예리했으며, 측면의 지배자로 부족함이 없었다. 

승부를 갈랐던 '기본기'

코스타리카는 C조 3위 와일드카드로 16강에 진출했지만, 만만한 팀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들은 잘 싸웠다. 그러나 기본기에서 잉글랜드와 큰 차이를 보였다. 잉글랜드 선수들이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것은 이날 경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좁은 지역에서 주고받는 패스든, 반대편을 향해 길게 넘겨주는 볼이든, 실수가 없었다. 패스의 강도와 상관없이 볼은 정확히 선수의 발밑에 배달됐다. 패스와 함께 곧바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반면, 코스타리카는 달랐다. 패스가 발밑으로 배달되는 것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를 받아내는 모습은 매우 달랐다. 패스와 함께 곧바로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볼이 튕겨 나가면서 상대와 경합하는 모습이 잦았다. 불안한 볼 컨트롤은 공격의 속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고, 상대 수비에 여유를 가져다줬다.

시야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잉글랜드는 경기장 전체를 활용했다. 빠른 판단에 이은 패스로 좌우를 넘나들었고, 상대 수비가 적은 공간 혹은 비어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패스 타이밍에 맞춘 양 측면 풀백의 오버래핑과 중원에 위치한 이들의 드넓은 시야가 빛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볼을 소유하고 있는 지역만을 활용했다. 볼이 없는 반대편에는 풀백은 물론 공격수도 위치하지 않았다. 상대로서는 볼을 소유한 지역만 막아내면 됐기에 수비하기가 편했다. 여기에 부정확한 패스까지 더해지면서 공격의 세밀함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스 안쪽에서의 '침착성'도 차이가 컸다. 루크먼은 몇 명의 수비가 있든, 예상치 못한 패스를 받든, 당황하지 않았다. 슈팅할 수 있는 각도를 만들어냈고, 침착한 마무리로 멀티골을 뽑아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의 최전방을 책임진 발론 세퀘이라는 상대 골문 앞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슈팅을 시도했고, 득점으로 연결될 확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뛰어난 개인 기량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나온다. 기본적인 패스와 볼 트래핑이 가능해야 화려한 드리블이 나올 수 있다. 상대의 압박에 볼을 빼앗기지 않고, 전진 패스가 가능해야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잡아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드리블과 볼 소유 능력이 필수다. 기본기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상대 골문 앞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 득점과 골잡이 역시 탄탄한 기본기가 만들어낸다.

볼을 소유하고, 전진하고, 득점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본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없이는 팀의 발전은 물론 뛰어난 선수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다. 설령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존재한다 해도 기본기가 없는 팀은 그 선수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결국, 기본기가 차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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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기 U-20 월드컵 잉글랜드 VS 코스타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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