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력은 물론 결과에서도 완패였다. 원인은 간단하다. 조별리그가 아닌 토너먼트에서 무리한 전술 변화가 화를 불렀다. 이날 신태용 감독의 도전은 신선했고, 훌륭했지만, 너무나도 이상적이었다. 가슴은 뜨거울지언정 머리는 차가워야 했지만, 신태용 감독은 차분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이 30일 저녁 8시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16강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1-3으로 패했다. 신태용호는 포르투갈에 역대 전적 7전 3무 4패로 밀렸지만, 조별리그에서의 호성적을 앞세워 8강 진출을 노렸다. 하지만 프로 선수로 무장한 포르투갈의 벽은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포르투갈은 4년을 준비했다. 에밀리우 페이세 감독의 지휘 아래 U-17부터 U-20까지 함께 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국내에서 대회를 개최함에도 제대로 된 감독 선임에 실패했고,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지난 2015 뉴질랜드 U-20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는 '교훈'이 있었지만, '어른'들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2017 U-20 월드컵을 개최하지 못했다면, 2대회 연속 본선 무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아시아 예선을 2연속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대를 걸었던 것은 오직 어린 청년들의 잠재력 때문이었다. 여기에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한 신태용 감독의 자율 축구가 더해지면서 '기적'을 꿈꿨다. 그러나 단 6개월을 준비한 팀이 체계적으로 4년을 대비한 팀을 꺾는다는 것은 역시나 꿈같은 일이었다.

너무나도 과감했던 신태용 감독

신태용 감독은 16강전에서 너무나도 과감했다. 프랑스, 베네수엘라와 함께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맞불을 놨다. 전방에 조영욱과 하승운을 배치했고, 이승우와 백승호를 측면에 위치시켰다. 4-4-2 포메이션이었지만, 사실상 4-2-4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공격적인 전술이었다.

실패는 당연했다. 신태용호는 조별리그에서 승리했던 경기에서조차 중원이 허술했고, 이 경기에서도 그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여전히 패스 한 번에 상대 공격수와 우리 수비수가 일대일로 맞붙었다. 풀백의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앞세운 상대가 측면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감에도 우리는 수비수에게만 기댔다. 미드필드진의 협력이 절실했지만, 그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것이 3실점의 가장 큰 원인이다. 포르투갈은 중원이 비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우리 진영을 마음껏 휘저었다. 편하게 패스했고,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측면을 공략했다. 포르투갈이 이른 시간 득점을 터뜨리면서 기세까지 올랐다. 집중력이 떨어진 신태용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공격도 아쉬웠다. 신태용호는 중원이 힘을 쓰지 못하다 보니 전방으로 길게 내주는 '뻥축구'에만 의존했고, 우리의 공격은 슈팅보다 상대의 역습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많았다. 측면에서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드리블과 크로스가 아쉬웠다. 사실상 이승우의 드리블을 제외하면, 상대를 위협할만한 무기도 없었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과 같이 약체로 평가받는 팀이 국제대회 성적을 낼 방법은 하나뿐이다. 안정적인 수비력을 갖추는 것. 최대한 버티고, 빠른 역습을 통해 한 방을 노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거스 히딩크는 이를 잘 알고 있는 감독이었다. 우리는 지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공격력이 뛰어난 팀이 아니었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압박과 수비에 집중했다. 공격력은 강하지 않았지만, 1골만 넣으면 이길 수 있는 팀을 만들었다. 설령 득점을 못 하더라도 최소한 승점을 따내는, 패하지 않는 팀을 만들었다.

실제로 우리 대표팀은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을 제외하면, 16강전까지 모두 한 골 차로 이겼다. (미국전은 1-1 무승부) 스페인을 만난 8강전에서는 버티고 버텨 페널티킥으로 승리를 따냈다. 독일과 준결승전 역시 득점은 없었고, 1골 차로 패했다. 16강전과 8강전에서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면, 독일을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데는 무지막지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과 수비가 있었다.

우리 대표팀은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원을 받았고, 웬만한 프로팀보다 더 많이 모여 훈련했다. 그런데도 팬들이 좋아하는 공격 축구를 꿈꾸기보다는 수비에만 집중했다. 이것이 국제무대에서 성적을 낼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팀이 국제무대에서 성적을 낼 방법은 안정적인 수비뿐이다.

유럽, 남미와 대등하게 싸우고 싶다면, 구조를 바꿔야 한다. 기본기를 습득하는 시간보다 전술과 이기는 것에만 집중하는 유소년 시스템을 뒤엎어야 한다. 당장의 성적 때문에 어린 선수를 키우는 것을 등한시하는 프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한 예로 신태용호에서 프로 무대에 꾸준히 나서는 선수는 한찬희뿐이었다. (한찬희는 부상으로 인해 잉글랜드전에만 나섬)

프로 무대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어야 한다. 팀을 강등 위기로 빠뜨렸던 지도자가 명문팀 감독이 되고, 선수 시절 명성을 앞세워 명문 구단의 감독으로 자리하는 일이 사라져야 한다. 얼마 전 손현준 감독의 사퇴로 오랜만에 외국인 감독(임시)이 생기기는 했지만, 폐쇄적인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심지어 팬들까지도 어떤 전술로 나올지 예측할 수 있는 감독은 살아남을 수 없는 프로 무대가 되어야 한다. K리그 팬들이 아직도 세뇰 귀네슈와 세르지오 파리아스를 그리워하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뻔한 전술과 축구로 일관하는, 팬에 대한 배려는 찾기 어려운 모습에 실망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 무대에서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들의 발전이 가능할까.

대한민국 축구의 발전을 이끌어야 할 이들이 '어른'이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은 지도자만의 몫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국내를 거쳤던 움베르투 코엘류, 조 본프레레, 핌 베어벡 등이 그랬고, 가장 최근이었던 2014 브라질 월드컵도 마찬가지였다. 

국가대표팀에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이가 합류하고, 프로팀 지도 경험이 없는 이가 공격 전술을 기획한다. 월드컵 본선 8강을 목표로 한다지만, 코치진은 계속 바뀐다. K리그 클래식에서 30경기 출전 4골에 그친 공격수가 최전방을 책임지고, 무려 4시즌 동안 리그 4골에 그친 공격수가 국가대표팀에 선발된다. 한국 축구에 원칙은 존재하는지, 상식은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원칙이 존재해야 하고, 상식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어느 팀을 만나도 공격 축구를 꿈꿀 수 있다. 포르투갈이든 아르헨티나든 당당하게 공격적인 축구로 승부를 겨를 수 있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고민해야 한다. 어린 청년들은 물론 국가대표팀은 왜 동료의 패스를 튕겨내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기성용(호주)과 손흥민(개인 교습+독일), 이승우(스페인) 등이 왜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올라섰고, 기대를 받는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기대가 있었기에 결과는 아쉽지만, 우리는 신태용호를 비판할 수 없다. 6개월 벼락치기, 프로 선수라 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뿐인 상황 속에서도 기적 같은 성적을 냈다. 후회 없이 싸웠고, 우리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책임은 '어른'들의 몫이고, 미래를 위한 방안 역시 그들이 마련해야 한다. 매번 느끼는 세계 축구와의 격차를 좁히고 싶다면, 진정으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원한다면 말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U-20 월드컵 한국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