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장르의 공포영화도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공포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TV에서도 공포영화 못지않게 전통적 공포 소재인 원혼과 빙의현상을 다룬 '전설의 고향'을 비롯한 '토요미스테리', '이야기 속으로', '위험한 초대' 등을 보면서 화장실에 가기를 무서워한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공포영화가 한편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무서웠던 공포영화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본 외국 공포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것으로는 드라큘라, 뱀파이어, 좀비(zombie), 미이라 , 강시가 있다. 외국공포영화는 주로 괴물이나 악마가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포영화는 주로 구천(九泉)에 떠도는 원혼을 배경으로 해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무서움의 강도를 더욱 높여준다.

우리나라 전통적 소복차림의 처녀귀신이 신토불이(身土不二)처럼 우리 정서와 맞물려 가장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 고유의 민족적 정서인 한(恨)이 우리 삶 속에 배어있고 우리가 이러한 한(恨)이라는 정서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10년 만의 폭염과 무더운 열대야(熱帶夜)속에 공포영화를 보며 더위를 시원하게 달래줄 것 같은 공포영화로 외국영화 3편과 우리나라 영화 3편씩을 선정해 비디오로 보았다.

우선 내가 본 외국 공포영화 베스트3편.

▲첫째로 폭염의 끝자락에 와있는 8월 13일 금요일에 1980년대 작품인 숀 커닝햄 감독의 <13일의 금요일>을 보았다. 이 영화는 크리스탈 호수 캠프장을 배경으로 살인마가 야영하는 여행객들을 이유 없이 '13일의 금요일'마다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내용의 공포영화다. 왠지 13일 금요일에 보아서 그런지 찜찜하기만 했다.

▲ <주온>
▲둘째로 올 여름에 용기를 내어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주온> 극장판 영화를 인터넷 영화 상영관에서 감상하였다. 원한과 저주가 쌓인 그 집을 방문한 사람은 모두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을 그린 공포영화다.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영화 <주온>에 나오는 2층집은 무언가 튀어나올 듯하고 음침한 기운이 감돌며, 누군가 내 뒤에서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아 등골을 더욱 오싹하게 만들었다.

▲ <링>
▲셋째로 본 영화는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영화 <링>(일본 1998년). 이 영화와 관련되어 실제 겪은 나의 경험담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7월 경 장맛비가 내리는 한여름 주말 밤이었다. <링>을 보고난 후 비디오 테이프를 꺼내려고 할 때 인기척이 없는데도 강아지가 갑자기 짖어대며 뛰어다녔다.

현관 앞 자동점멸등도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강아지가 왜 짖어대는 걸까 하면서 돌아서는 바로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망설이다가 용기 있게 전화기를 들었다. "영화 속 일이 정말로 나에게 일어나는가?"라는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다. 한 여인의 음성이 흘렀다.

"링 비디오 테이프 반납기간 지났어요. 지금 빨리 갖다주세요."

그러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나는 그냥 이불 속으로라도 숨고 싶었다. 그날 밤 화장실에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 연체료를 물었다. <링>보다 당시 분위기가 더 무서웠다. 지금도 '링' 제목만 보아도 그날의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이외에도 시리즈로 봐야 제 맛인 외국의 공포 스릴러 영화로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에이리언>(1979) 1편부터 4편도 볼 만하다. 또 몇 년 전에 첫 심야영화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본 라스폰트리에 감독의 <킹덤>(1994년도 상영시간 280분)도 있고, 해마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7년도)도 있다.

다음은 가장 무서울 것 같은 한국 공포영화 베스트3편. 피가 튀는 잔인한 스플래터(Splatter)나 고어(gore)에 속하는 외국 공포영화와는 달리 다음의 한국공포영화 3편은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한 공포 심리를 체험하게 해 주는 작품들이다.

▲ 우리 나라 원조(元祖) 공포영화 <월하의 공동묘지>
▲첫째로 우리나라의 원조(元祖) 공포영화인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1967년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몇 년 전 TV에서 재방영되었던 이 영화는 처녀귀신의 원조이며 최초의 소복차림 귀신영화이기도 하다. 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바로 이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둘째로 박기형 감독의 학교를 소재로 한 <여고괴담>(1998년도) 1편부터 윤재연 감독의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 계단>(2003년도)에 이르기까지 여고괴담은 시리즈가 있다.

▲ <인형사>
▲셋째로 올해 8월초 극장에서 본 정용기 감독의 <인형사>(2004년 7월 30일 개봉)를 보았다. 이 영화는 어릴 적 갖고 놀던 인형을 버림으로써 일어나는 인형의 저주와 복수를 그렸다. 음향효과만으로도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고 영화속 배경이 되는 깊은 산골 숲속에 있는 인형미술관은 귀곡산장을 연상케 한다.

<인형사>는 톰 홀랜드 감독의 <사탄의 인형>(1988)과 비교된다. 특히 인형의 집에서 작가로 있는 재원(김보영)이 주술사(呪術師)처럼 인형을 찌르는 장면은 압권이다.

더위를 피하고 여름밤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 공포영화를 보았지만 공포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낀 마음의 부담과 후유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공포영화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반작용에 대한 기우(杞憂) 때문이 아닐까?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로 볼 때에 스플래터나 슬래시와 같은 공포영화가 모방범죄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마저 생긴다. 지금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세계도처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테러와의 전쟁과 포로학살을 영화가 아닌 매스미디어를 통해 실시간 뉴스로 접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도 범죄예방을 위해 설치된 CCTV를 통해 공포영화보다 더 잔혹한 범죄 소식을 안방에서 TV를 통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영화보다 더 두려운 세상속에 있는 우리가 왜 일어나서는 안될 끔찍한 실제상황들을 모방하여 영화로 만드려는 것일까? 공포영화가 허구(虛構)를 통해 실제(實際)의 현실을 모방하고 닮아감으로써 희대의 살인마를 영화가 아닌 현실속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포영화도 과거처럼 무차별적 살인이나 잔혹한 범죄 행위를 묘사하며 관객들에게 일방적인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지양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공포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나 공포영화를 즐기는 관객 모두가 인간성회복과 생명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함께 인식해야 할 것이다.
2004-08-14 18:0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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