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제국> 오시마 나기사 감독

2000년에 개봉된 영화 <감각의 제국>을 제가 처음 본 것은 국내 개봉 훨씬 전인 1990년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본 출장을 갔던 직원이 사들고 왔거나 혹은 회사 영화 동아리에서 알음알음으로 돌려보는 국내 미공개 일본 영화들 속에 끼어 왔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감각의 제국>을 보기 전 남편은 저에게 아주 잘된 예술 영화라고 소개했습니다. 1930년대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을 영화화 해 칸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은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의 의도가 작품성 감상에 있지 않은 다소 불순한 흥미였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답니다. 영화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영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화면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붉은 색과 흐드러지듯 날리는 벚꽃, 지우산과 샤미센 등 색감과 질감으로 왜색적인 정취를 흠뻑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예쁘지도 잘 생기지도 않은 주인공 마츠다 에이코와 후지 타츠야의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간 아름다운 왜색과 영상미에 빠진 저와는 달리 남편은 상당히 조급해 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뭔가 기대하고 기다리던 장면이 있다는 뜻이지요. 아마도 남편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정사신을 기다렸던 모양으로 쉽게 스토리에 몰입을 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뭐야, 이거…. 배우들도 영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영화에 몰입하던 남편은 아베 사다가 키치조우의 성기를 자르는 장면에 와서는 결국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으윽…. 지독한 여자 같으니…. 정말 끔찍하다." 말을 잊지 못하는 남편은 마치 자신의 중요 부분이 잘려져 나간 듯 몸서리를 칩니다. 모든 남성에겐 거세 공포가 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동네 할머니가 "요 녀석, 이쁜 고추. 할머니가 따 먹을까?"하면 울고 도망가던 것도 무의식 중에 자신의 성기가 잘려나갈 수도 있다는 거세 공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지요. <감각의 제국>은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와 남성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의미가 달라지는 영화입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여성 주도의 성을 이끌어낸 여성주의 영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영화에서 남성 주도의 성을 주제로 했다면 <감각의 제국>의 경우 성에 탐닉하고 그것으로 파멸해 가지만 분명 여성 주도의 성을 보여 준다는 데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성 관객의 입장에서 <감각의 제국>은 분명 유쾌하지 않은 영화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섬뜩함을 생각할 때 분명 공포 영화로 분류해도 지나친 억지는 아니지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많은 남성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단연 '성기 절단' 장면을 꼽는 것도 제가 이 영화를 공포 영화로 보는 이유라면 이유가 될 것입니다. 영화 초반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사랑하는 남자 키치조우를 따라나선 아베 사다는 이전까지의 남성 주도의 성에 부합하는 착하고 사랑스런 여인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들의 도피와 함께 시작된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 성은 짐짓 남성에 의해 조장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집착하는 사랑에 빠져 이성을 잃은 여인 아베 사다의 올무에 걸려 빠져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이시다 키치조우의 비극적인 죽음을 예견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남성 관객들은 사랑하는 남자의 성기를 잘라 손에 쥐는 아베 사다의 모습에서 교미를 끝내고 숫사마귀의 머리를 물어 뜯는 암사마귀와 같은 섬뜩한 여성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공포에 질린 남편은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잘라 들고 있는 키치조우의 몸 한 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느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영화를 보고 난 후 제가 남편에게 해 준 한마디였을 것입니다. "여보, 나도 아베 사다만큼이나 당신을 사랑해."

덧붙이는 글 공포영화 응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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