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 사람들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서 죽음을 당하게 되면 성불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된다고 믿었다. 우리들이 흔히 무당이라고 불렀던 영환술사들은 이 시체들이 움직일 수 없도록 부적을 붙여놓고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강시는 근본적으로 시체이기 때문에 몸이 굳어 관절을 구부리지 못하고, 영환술사의 종소리에 맞추어 통통 뛰어다니면서 이동을 하게 된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무협소설에서 수련법의 대상으로도 종종 등장하여 각종 신공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설속의 강시가, 서양의 흡혈귀 신화와 맞물려 탄생한 것이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강시' 이며, 이것은 유관위 감독의 85년도 작품 <강시선생> 을 통해서 정의내려진 것이다.(국내에는 <생과 사> 라는 제목으로 알려짐) 이것은 마치, 기존의 좀비 신화를 조지 로메로 감독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에서 영화적인 언어로 새로히 정의내렸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좀비가 뇌를 먹는다던가,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는 식의 설정이 모두 이 영화로 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강시라는 괴물 캐릭터의 특성을 총체적으로 집약한 것은 <강시선생> 이다)
 강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강시' 는 최고의 인기 캐릭터였다. <강시선생> 이 촉발시킨 강시 열풍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유환도사 시리즈' 는 아기 강시를 유행시키면서 최고의 유명세를 치루었다. 유관위 감독은 80년도에 연출한 <귀타귀> 가 공전의 히트를 거두자, 중국 고유의 전설에 호러와 코미디를 접합시킨 형태의 강시 시리즈를 고안해내었다. <귀타귀> 에 잠시동안 등장했던 귀신 '강시' 는 유관위의 3번째 작품인 <강시선생> 에서 괴물로써의 모양새를 완벽히 갖추고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흡혈귀와 매우 유사한 형태인 강시는 나름대로 괴물 캐릭터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강시는 십자가와 마늘 대신에 팔괘와 찹쌀을 싫어하며, 심장에 말뚝을 꽂는 대신에 화장시키거나 고향에 묻어야만 통제가 된다. 유관위가 탄생시킨 강시 영화는 호러와 코미디, 그리고 무협을 절묘하게 접목시킴으로써, 매우 특이한 형태의 호러 장르를 개척해냈다. 블랙 코미디와 고어가 접목된 스플래터 무비와 비슷하지만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에 가까운 강시 영화는, 기존의 호러영화들과는 달리 별다른 고어 효과를 사용하지 않았다. <강시선생> 으로 인한 강시 열풍은 예상외로 거대한 것이었으며, 이후로 수도 없이 많은 강시영화들이 등장하였다. 일일히 기억하기 조차 힘든 강시 영화의 계보는 단순히 정리하기가 매우 힘이 들지만, 크게 '영환도사 시리즈'와 '유환도사 시리즈'로 나눠볼 수 있다. '영환도사 시리즈'는 유관위의 <강시선생> 을 기본으로 하는 오리지널 스토리 라인이며, 모두 '임정영' 이 영환도사로 출연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강시선생> 부터 <구마경찰> 에 이르기까지 끝도 없이 이어진 임정영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다. 허관문의 <미스터 부> 시리즈로 유명한 '허관영' 도 <강시선생> 에서 전성기의 화려한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강시숙숙> 이후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유관위는 <강시선생 93> 을 통해서 끝까지 '영환도사 시리즈' 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과거와 같은 큰 반응은 이끌어내지 못했으며, 유관위와 함께 강시 영화도 몰락하여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오리지널 '영환도사 시리즈' 보다 오히려 더 큰 인기를 누렸던 대만의 '유환도사 시리즈' 는 어린이들을 위해 제작된 영화이다. <강시소자> 부터 시작된 유환도사 시리즈는 <헬로강시> 를 거쳐 <유환도사> 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유환도사 시리즈' 는 거의 모든 시리즈에 등장하여 스토리 라인을 이어가는 '수박피' 와 '텐텐' 그리고 '아기강시' 덕에 큰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다. 강시 영화의 인기 돌풍에 중심축이었던 '아기강시' 의 존재는 <강시선생 2- 강시가족> 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나, 본격적으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유환도사 시리즈' 로 보아야 옳다. '유환도사 시리즈' 의 아기강시는 유별나게 귀여운 모습과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특이한 캐릭터로 인해 큰 사랑을 받았으며, 이례적으로 시리즈 전편에 걸쳐 동일한 배우가 역할을 맡았다. 언뜻보면 흡혈귀의 또 다른 사생아로 비추어질 뿐인 강시는, 그러나 다른 괴물들과 차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강시 영화를 살펴보면, 강시는 다른 괴물들과는 달리 피를 많이 섭취할수록 행동이 자유로워지고 지능이 발달하는 등, 살아있는 사람의 행동양식과 거의 비슷해진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죽은 시체가 살아난 '강시' 가 태생적으로 구세대를 의미한다는 것을 상기해볼 때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세대들을 섭취함으로써 현실에 적응해나가는 이 구시대의 망령은 다시 살아난 아버지이며, 나아가 자식을 살해하고 과거의 지위를 획득하려는 신화적 딜레마를 생성한다. 또 이미 죽어있는 시체인 '강시' 는 여타 괴물 캐릭터들과 비교할때 유난히 정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몸이 굳어서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점에서 강시는 서양의 좀비와 닮아있지만, '집단성' 이라는 특징 덕에 매우 역동적인 이미지인 좀비와는 달리 대부분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행동 양식도 매우 제한적이다. 하지만 강시가 근본적으로 '고향에 묻히지 못한 한' 이 서려있는 슬픈 괴물이라는 사실과 이 장르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유머는 이 경직되어있는 괴물에게도 인간성을 부여하고 (심지어 <헬로강시>에서의 여성 강시는 성욕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대중에게 친밀한 캐릭터로 다가가는데 일조한다. 좀비의 정치적 메시지도, 흡혈귀에 내재된 성적 함축성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대중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 강시는 한 시대의 유력한 아이콘이 되었다. 강한 코미디 성향 때문에 종종 무시되는 강시 영화는 쉽게 폄하되기에는 너무나 뛰어난 하위 장르다. 장르 전체를 아우르는 특별한 세계관과 설정들은 비록 서양에서 바라는 그들만의 오리엔탈리즘과는 거리가 있을지언정, 좀더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동양미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이 장르가 소화한 슬랩스틱 액션은 키튼이나 채플린이 그러했듯이, 친근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자아낸다.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임정영과, 너무 늙어버린 유관위, 그리고 멸종해버린 강시 영화들은 반드시 그에 걸맞은 재평가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 작업의 한가운데에는 텍스트적으로 가장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했던 <강시선생> 이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http://ozzyz.egloos.com/
http://www.horror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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