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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사립고등학교 학부모회 단체들이 학교와 관련지어 편법으로 찬조금을 모금하는 등 비교육적인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를 지도 감독해야할 교육청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학교는 또한 '교육환경 개선과 학생복지사업' 등에 사용했어야 할 등록금의 일부를 매년 다음 연도로 이월시켜 2002년까지 22억 원을 보관해온 데다가, 용도가 불분명한 이 돈을 올해 학교 건물을 증축하는 데 사용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더군다나 '사립학교법'이나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에 의하면, 이 돈으로는 학교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되어 있는데도 교육청이 건축허가를 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교육청이 '불법'을 방조, 직무유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찬조금 그만 걷으라는 데 왜 자꾸 걷어들이나?

▲ 서울시교육청 전경
ⓒ 성낙선
서울시내 Y여고 학부모회 단체들은 지난해 6월 서울시교육청(이하 교육청)의 '불법 찬조금 모금 관련' 감사 결과, 학생 간식비·체육대회 경비지원·각 반 에어컨 설치비 등의 명목으로 학부모들로부터 총 9177만 원을 걷은 것으로 드러나 교육청으로부터 그때까지 집행하고 남은 찬조금 잔액을 환불하라는 시정조치를 받았다.

(사)참교육학부모회의 민원에 의해 시작된 이 감사에서는 이 밖에도 이 학교가 청소용역비 명목으로 전학년을 대상으로 1702만 원을 '징수'하여 회계 미편입 상태로 별도 관리해온 것이 적발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학교 학부모회 단체들은 올해 5월 다시 서울시교육청 특별감사에서 1학년 1인당 15만원, 2·3학년 1인당 20만원씩 185명에게서 모두 3455만 원의 찬조금을 걷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한 차례 '시정' 조치를 받은 상태에서 이 학교 학부모회 단체가 이듬해 다시 찬조금을 거둬들인 사실이 밝혀졌으나 교육청은 이번 감사에서도 여전히 찬조금 잔액을 환불하도록 조치하는 한편 '지도감독을 게을리한 학교장 등' 관련자들을 단지 '경고조치'하는 선에서 그쳤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면, 사실 찬조금 모금을 근절해야 하는 교육청으로서도 별 다른 대책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독립적인, 너무나 독립적인...
교장도 비정규직이라고?

Y여고는 학교 운영에서 매우 독립적이다. 이 말은 Y여고가 교육청의 '간섭'을 덜 받는 학교라는 뜻이다.

Y여고는 사학이라면 대부분 다 신청하는 '재정결함보조금(이하 보조금)'을 교육청에 신청하지 않았다. 보조금을 받게 되면 그만큼 교육청의 간섭을 받게 되는데 이 돈을 받지 않으니 그만큼 다른 학교들보다 구속을 덜 받게 되는 것이다.

이 학교가 보조금을 받지 않고서도 별 어려움 없이 학교를 운영하는 데에는 나름의 '비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조금은 인건비 등을 지급하는 용도로 쓰인다. 그래서 그런지 보조금을 받지 않은 이 학교는 유난히 비정규직(기간제와 강사) 교사가 많다. 심지어 교장까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교사한테 들어가는 인건비가 정규직에 비해 적은 것은 자명한 이치.

서울 사립고의 비정규직 교사 비율이 16%(공립은 4%)인 데 비해 이 학교는 무려 40%에 달한다. 교사 89명 중에 비정규직 35명, 정규직이 54명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담임을 맡고 있는 기간제 교사만도 6명이다.

비정규직 교사들은 '잦은 교체' 등으로 고용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 교사들이 너무 많을 경우, 학생들이 학습권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교육청은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 사립고등학교의 비정규직 교사 비율을 공립고등학교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올해 비정규직 교사 비율은 오히려 3% 가까이 늘었다. 비정규직 교사 비율을 낮추겠다는 교육청의 말과 의지가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것은 Y여고의 예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 성낙선 기자
교육청은 특히 이 학교의 학부모 단체가 이처럼 같은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해 "시정 조치하라는 공문을 보낸 뒤에 다시 공문을 보냈다"며 "이런 일이 재발할 경우 엄중조치하겠다는 내용을 이 학교에만 별도 통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청이 '경고조치'하고 '별도 통보'한 것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이다. 지금까지 교육청이 취한 조치만 놓고 보더라도 찬조금 근절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청 감사담당관실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Y여고가 작년에도 찬조금을 걷은 사실이 있어 올해에는 '특별감사'를 실시했다"며 "학부모 자생단체(학부모회)가 학교를 빌미로 편법으로 돈을 걷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학부모들의 입김이 워낙 세 (교육청의) 지시가 잘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장에게 지도감독 책임을 묻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육청이 원하는 대로 정작 '지도감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학교 또한 찬조금 문제에 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학교의 교장은 "찬조금은 학교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데다가 교감은 "학부모회 단체들이 자생단체이기 때문에 학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감사담당관실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찬조금 모금 관행에 대해 "내년에는 연초에 학부모회가 구성이 되기 전에 가정통신문을 발송하는 등 찬조금을 걷거나 내는 일이 없도록 알리고, 제도개선과 함께 '발전기금'이라는 제도를 적극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생 등록금을 모아서 학교 건물을 증축하다니...

▲ 서울시교육청 현판
ⓒ 성낙선
이 학교는 또한 십수 년 동안 학생 등록금 22억 원을 남겨 이 돈을 '뚜렷한 이유 없이' 보관해 온 사실에 대해 지난 2002년 서울시교육위원회 행정사무감사 등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지적'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교육청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계속해서 '지적'만 했을 뿐 이렇다 할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교육청이 '솜방망이'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런 데 있다.

등록금 누적에 대해 교육청 행정과의 한 관계자는 "학교가 뚜렷한 이유없이 등록금을 이월 누적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합리한 일"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법적으로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도 사실상 학교 관계자에 대한 징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더 큰 문제는 학교가 이 등록금에서 이월된 22억원 중 16억 4800만 원을 들여 학교 건물을 증축하겠다고 했을 때, 교육청이 학교 건물 건축비로 '교비(校費) 회계'에 속하는 등록금을 사용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는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이하 규칙)'을 무시하고 지난 6월 별 다른 검증없이 건축허가를 내준 데 있다.

사립학교법과 '규칙'에 의하면, 등록금은 '교비 회계'의 수입으로 하여 이를 별도 관리하여야 하며 '법인 회계' 등 다른 회계에 전출하거나 대여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조항은 사학재단이 등록금 등 학교 예산을 다른 용도로 '불법전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Y여고는 이번 학교건물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을 뿐더러 교육청은 허가를 내주어서는 안되는 사안이다. 그러나 교육청은 Y여고에 대해 건축 허가를 이미 내준 상태다.

이 학교는 또한 이월금을 장기간 적립하면서 '규칙'에 의거해 "적립금을 적립할 경우 적립금의 적립 및 사용계획을 사전에 관할청에 보고하여야 한다"는 의무 사항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청 시설과에 따르면, 이 학교 증축건물의 용도는 "학급교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학교는 지금 당장 교실을 늘려 지어야 할 만큼 상황이 급한 것도 아니다. 이 학교는 현재 빈 교실 수가 6개이다. 내년에 3개 반이 늘어난다고 하니 내년에도 결국 3개 반이 남아도는 셈이다.

이 학교의 교사들 중에는 "학교측이 도서관이나 교과 연구실을 확보할 목적으로 건물을 증축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용도는 현재로선 불분명한 상태다.

특히 이 학교는 이 학교 건물을 지으면서 교육청의 권장사항인 전자공개입찰을 거치지 않고 설계는 수의계약으로, 시공은 지명입찰을 한 것으로 드러나 공사과정에 비리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의 박정훈 사립위원장은 Y여고가 건축 허가를 받은 것에 대해 "교육청이 학교의 불법을 인정한 셈"이라며 "교육청, 학교 이사장과 교장 등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생들의 등록금을 과잉 이월시켜 학교 건물을 증축한 행위는 결국 학생들의 돈으로 법인의 교육용 기본재산을 증가시킨 행위"라며, "건축공사비는 당연히 '법인회계'에서 부담하고 16억 4800만 원은 '학교회계'에 편입시켜 학습환경을 개선하는 등 학생들을 위해 쓰여져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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