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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반대 시민연대(이하 안티조선)'는 지난 7월9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소설가 이문열 씨의 칼럼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가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판단, 이문열 씨를 고소할 방침이다.

안티조선 측은 이 씨의 칼럼 중 "비전문적 정치논리에 의지한 전문성 억압도 홍위병식 특징이다. 지난 번 낙선운동은 특정한 정치인들만 겨냥했고, 어떤 안티운동은 특정 신문만 대상으로 삼았지만, 그렇게 하기로 한다면 다른 분야인들 운동의 대상이 못될 까닭이 없다"라는 부분을 문제 삼았다.

안티조선은 "현재 특정 신문에 대한 안티운동을 벌이는 경우는 안티조선일보운동뿐이다"며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문열 씨는 안티조선운동을 벌이고 있는 우리(안티조선)를 홍위병으로 매도,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안티조선측은 이 씨의 고소 이유를 "또 하나의 매카시즘인 '홍위병론'을 반복 재생산하는 일부 언론들의 행태와, 진실을 외면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칼럼 기고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덧붙여 안티조선은 "고소장은 7월27일 오후 4시 서울지방법원에 접수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안티조선의 이문열 씨 고소로 언론사 세무조사에 얽힌 복마전격의 논쟁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안티조선이 문제삼은 7월9일자 동아일보 칼럼의 전문.

[시론] 이문열/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

들리는 바로는 ‘언론사태’에 관한 내 견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소비자보호운동 차원에서 내 책의 반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형식논리로는 문화도 어김 없는 상품인 만큼 소비자는 보호돼야 하고 하자가 있는 상품은 반품될 수도 있다. 따라서 책도 당연히 소비자보호운동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사고를 한 걸음만 더 전진시키면 그게 얼마나 억지스러우면서도 위험한 운동이 되는지를 금세 알 수 있다. 몇 달 전에 잘 본 영화나 공연의 입장권을, 혹은 몇 년 전에 좋아서 산 그림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집단적으로 반품한다면 어떻게 될까.

더구나 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작가나 예술가의 견해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의 운동으로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가 중국 문화혁명을 주도했던 홍위병을 섬뜩하게 떠올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형식논리만 갖춰지면 못할 짓이 없었다는 점이다. 극히 추상적이고 초보적인 원칙만 갖춘 구호 아래 저질러진 숱한 문화적 파괴와 억압의 사례를 보라.

그들은 거기에 따라 공자묘(孔子廟)를 돌 하나 성하지 않게 파괴했으며, 늙은 작가 바진(巴金)을 하방(下放)시켜 강제노역에 종사시키고, 대작 ‘낙타상자’의 작가 라오쓰(老四)를 끌고 나가 사흘 뒤에 시체로 발견되게 했다.

그 다음 요즘의 시민운동에서 이따금씩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소수에 의한 다수 위장이다. 몇 명이 어떻게 모여 이루어진 단체인지 모르지만 만들어졌다 하면 그 즉시로 익명의 다수를 위장하고 대표성을 주장한다. 며칠 전 야당 당사 앞에서의 시위에서는 160여 개의 단체가 집결했다고 하는데 텔레비전 화면으로는 회장 부회장만 다 와도 그보다는 수가 많을 성싶었다.

비전문적 정치논리에 의지한 전문성 억압도 홍위병식 특징이다. 지난번 낙선운동은 특정한 정치인들만 겨냥했고, 어떤 안티운동은 특정 신문만 대상으로 삼았지만, 그렇게 하기로 한다면 다른 분야인들 운동의 대상이 못될 까닭이 없다.

대학에서 가르쳐서는 안될 교수를 내쫓는 운동, 노래 불러서는 안될 가수를 무대에 서지 못하게 하는 운동, 읽어서는 안될 책을 쓰는 작가로부터 몽매한 독자를 보호하기 위한 운동, 수구적인 감독에게는 영화 만들 기회를 주지 않기 운동 등은 어떤가.

특히 안티운동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공격성과 파괴성도 우리에게 홍위병을 연상시킨다. 흑백논리에 바탕해서 그렇겠지만 그들은 공격 대상에게 반론이나 회복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특히 웹사이트에서 오가는 공방을 보고 있으면 공격성을 넘어 섬뜩한 살기(殺氣)까지 느껴진다. 따라서 그들의 생산물은 언제나 파괴와 부정이다. 창조와 통합은커녕 승인과 조화 같은 당연한 지향도 그들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이런 저런 시민운동에서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까닭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자주 그들의 견해가 정부 혹은 정권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정부가 이미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면 따로 시민운동으로 옥상옥(屋上屋)을 세울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태연스레 정부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운동을 보게 되면 절로 어떤 이면적인 연계를 억측하게 된다.

거기에다 그들을 더욱 불리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의 정치상황이다. 아직껏 확고하게 다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군대나 경찰 같은 공권력도 선임자들의 악용 때문에 함부로 동원할 수 없게 된 정부가 의지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바로 홍위병 같은 힘일 것이다.

일반의 그런 예측에서 나온 의구와 경계가 어쩔 수 없이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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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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