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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편집자말]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글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글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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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은 무사히 집에 가셨을까요?

9.
* 잠이 오지 않고, 못 자는 새벽엔 자신(상담 선생님)과 전화 상담도 연결되지 않으니, 자신(상담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보는 방법으로 글을 남기는 것도 좋다는 말에 메모장에 써둔 글.

선생님, 저는 확실히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요.
잠이 찾아오지 않는 오늘 밤은,
무섭고 두렵고 초조해서 잠이 오지 않는 게 아닌 거 같아요.

그냥 밤 내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립던데요.
'그리움'이었어요.

콘헤드(고깔 모양의 뾰족한 머리 형태) 코스튬을 한 3명 가족이 기억나요.
20대 딸, 50대 엄마, 아빠더라고요. 
세대 관계없이 그렇게 콘헤드 코스튬을 하고 길거리 즐기는 게 너무 보기 좋더라고요, 그분들은 무사히 집에 가셨을까요?

녹색어머니회 코스튬을 하고 단체로 6명이서 몰려다니던 남자 애들은 잘 갔을까요?
'엄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얼른 집에 들어가' 하고 장난도 쳤는데요. 
덩치는 산만해서 어머니 가발을 쓰고 점을 찍고 녹색 모자를 쓰고 노는데, 웃기고 귀여웠어요.
사진이랑 영상도 찍어뒀거든요, 방금도 보고 왔어요.
연락이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워요, 그냥.

아기들이 예년보다 이태원에 정말 많았거든요.

지금은 30대인 저는 사실 26살부터 매년 핼러윈을 즐겼어요.
그런데 올해 처음 이태원에 한국 아가들이 많이들 나와있더라고요.

몇 년 간 한국 핼러윈 문화도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어요. 나도 내년에는 더욱 캐릭터가 짙고, 아이들이 반가워할만한 캐릭터로 분장해야지, 예쁘고 섹시한 거 말고 아기들이 좋아할 만한 거, 도날드덕 분장을 꼭 해야겠다 싶었고요.

너무 귀여웠고, '해피 핼러윈' 외치며 먼저 다가가 인사도 많이 해주었어요. 아이들 표정이 어떤지 아세요?

어른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해주면 부끄러워 하지만 두 눈에 반가움이 가득해요. 초콜릿을 주면 더 좋아하고요. 아이들은 역시 자기를 이뻐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어요.

아기들이 필요로 하는 건 자기를 무리에 끼워주고 같이 놀아주는 어른인 거, 혹시 아세요? 아이들은 어른들이랑 놀고 싶어 해요.
어린아이들일수록 자기 우주는 부모이자, 그 부모의 친구들이거든요.

아이와 어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축제는 핼러윈 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는 여전히 핼러윈이 너무 좋아요.

오늘 밤에는 그 아기들이 생각이 많이 나네요.
걔네는 집에 잘 갔겠지? 뉴스에 아이들 이야기는 없는 거 보니 다들 집에 잘 갔나 봐. 같이 온 엄마 아빠를 잃은 건 아니겠지.

7살짜리 조카가 있거든요.
이모가 핼러윈에 환장하고 놀러다니는 거 알고 있어요.
유치원에서 핼러윈 취소가 됐나 봐요.
왜 이번엔 안 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
오래 생각해봤어요.

사람 많은 데는 위험하니까 가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나중에 커서 이태원도 가는 게 아니야라고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단편적으로 그렇게 가르치면 이태원은 나쁜 것,
핼러윈은 나쁜 것, 파티는 나쁜 것, 모든 유흥은 나쁜 것이 되는 거 아닐까요.

저는 여전히 핼러윈이 좋습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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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어떻게 나쁘죠?
엄마 아빠랑도 같이 놀고 다른 어른들이랑도 놀고
자기 친구들이랑도 노는 축제인데요.

사회의 역할이 뭔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우리는 왜 혐오사회로 가는지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인지,
본질을 파악하고 맥락을 짚어주는 어른이어야 되는 거 아닐까요.

아, 정말 생각할수록 핼러윈은 잘못이 없어요. 이태원도 잘못이 없고요.

그런데 너무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어요.
곧 또 국화꽃 놓으러 이태원에 갈 거예요.
가서 더 당당히 이태원에서 밥도 먹고 올 거고,
내년에도 핼러윈 분장 끝장나게 하고 이태원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들은 잘못이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도날드덕으로 분장을 꼭 해야겠어요.

그런데 뉴스에서 이제 방송과 공연계에서 '핼러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네요.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걸 어른들은 정말...
모르나 봅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①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http://omn.kr/21i1i
② 이태원에서 같이 살아나온 친구, 진실에게 http://omn.kr/21i3o
③ '놀러 갔다가 죽은 걸 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http://omn.kr/21i3n
⑤ 묻고 싶습니다, '이태원 참사' 때 다 어디에 있었느냐고 http://omn.kr/21i3w
⑥ 쏟아진 친구들의 연락, 휴대전화 붙잡고 울었습니다 http://omn.kr/21i3v

태그:#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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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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