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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편집자말]
지난 3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내외국인들이 찾아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지난 3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내외국인들이 찾아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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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고 싶어졌습니다 

10.
선생님, 오늘은 처음으로 일상으로 복귀를 시도했던 날이에요.

원래 지난주 토요일에는 올렸어야 할 유튜브 영상을
그날 참사 이후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다가,
약간의 수정 작업을 하고 업로드를 한 후
카페에도 오랜만에 와보고, 앉아서 선생님께 글을 쓰는 중입니다.

함께 갔던 친구 진실(가명)이는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요.
아마 일상으로의 복귀가 저보다 더 늦어지나 봐요.
친구가 많이 궁금하고 그립지만 가족들과 사는 친구이니 걱정보다는 혼자의 시간을 갖도록 놔두고 있어요(이 글을 쓴 이후, 필자는 친구 '진실'과 연락이 닿았다. - 편집자 주).

선생님, 오늘은 이상하게 억울하고 화나는 감정이 올라오네요. 분명히 오늘 새벽까지는 괜찮았는데 어쩔 수 없이 또 돌멩이를 맞아요. 
여전히 제 의지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감정선이 너무나 속상합니다. 제가 정말... 이런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상담을 뒤로하고, 그냥 마음속으로 편지를 씁니다.

재난과도 같은 고통을 겪으면 사과하고 싶은 마음과
사과받고 싶은 마음이 함께 오는 것 같더라고요.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애도를 하며 사과를 하러 다녀온 후 ,
저는 그들에게 사과받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피해자들에게 헌화를 하고 절을 하며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요.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며 갚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던 것처럼

그들이 그렇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더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유감스럽니다'라는 말이 왜 이리도 듣기 싫을까요.
더 직관적으로 그냥 '잘못했다'고 말하길 바라요.
죄송하다고 직접적으로 사과하길 바라고 있어요.

선생님, 있잖아요.
정말이지 정치 언어라는 게, 대통령의 언어라는 게 따로 정해져 있는 걸까요?
돌려말하는 것 말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국민에게 하면 안 되는 걸까요.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그냥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행정 전반을 손보겠다고. 납작 엎드려서 싹싹 빌었으면 좋겠어요.

당신들이 제대로 사과했다면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이 지난 3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이 지난 3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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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이후 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채 인지하기도 전에
저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표를 보았던 것 같아요.

저에게 초능력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분에게 딱 한 번만 전화를 해서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단 한번도 남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남에게 져 본적이 없는 사람이군요.
처참한 재난을 겪어본 적은 당연히 없을 테고,
가까운 지인이 피를 흘려가며 죽어가도
아마 '왜 그렇게 힘들어하냐'라고 되물을 사람이군요.

언론에서는, 정치비평가들은 책임회피성 발언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책임회피를 넘어서 더 큰 무언가가,
대단한 아집과 고집이 있을 거예요.

당신은 아마도 주변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일 테죠.
왜냐고요? 사과를 하면 자신이 틀렸다는걸 인정해야 하니까.
사과를 하면 자신의 인생 전반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걸 테니까. 
부정할 수 없을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당신을 납득하기가, 이해하기가 어려우니까 제발 그렇게 말하세요."


억울한 감정이 문득문득 올라올 때마다 소리치고 싶어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어떻게 많은 인간을 책임지는 사람일 수 있느냐고요.

그 사람은 그걸 알까요?
당신의 최초 발언보다, 사과하는 모습이 더욱 상처였다는 걸요.

아마 상상도 못 하겠죠.

끝까지 버티다가 마지막 코너에 몰리자 겨우 사과하는 듯한 모습이, 
아마도 당신은 끝까지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지만 주변 상황이 이러니 떠밀려서 하는 것이었겠죠.
실시간으로 다 느껴져서 너무 속상했어요.

당신이 제대로 사과했다면,
그대들이 제대로 사과했다면 아마도 묻지 않았을 말.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겠어요
그래서 그날, 필요한 경찰 인력들은 다 어디에 있었느냐고.

저는 솔직히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이 글을 읽고 제가 큰일이 난대도요.

죽는 것보다 더 할까요,
이미 한 번 죽다 살아온 목숨이라 생각하고 사는 걸요.
내가 제일 무서운 건,
눈 감으면 보이는 그날 그곳의 사람들 얼굴이에요.
나는 그들을 이리도 무서워하고 벌벌 떠는데
왜 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나요.

정말로 피해자들에게, 전 국민에게, 당신들은 미안하긴 할까요.
침묵으로 일관하면 살아있는 사람도 죽게 만든다는 걸 정말 그들은 모르나요?
저보다 그들이 훨씬 어른이잖아요…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①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http://omn.kr/21i1i
② 이태원에서 같이 살아나온 친구, 진실에게 http://omn.kr/21i3o
③ '놀러 갔다가 죽은 걸 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http://omn.kr/21i3n
④ 생존자인 저는,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겁니다 http://omn.kr/21i3t
⑥ 쏟아진 친구들의 연락, 휴대전화 붙잡고 울었습니다 http://omn.kr/21i3v

태그:#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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