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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편집자말]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 경찰통제선이 설치되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가운데, 참사 현장 인근 한 상인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 배, 감, 밥, 국 등으로 차려진 제사상을 내놓았다.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 경찰통제선이 설치되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가운데, 참사 현장 인근 한 상인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 배, 감, 밥, 국 등으로 차려진 제사상을 내놓았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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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1.
상담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실 생존자는 아닌 거 같아요. 와이키키 술집 앞에 끼어있었고, 압사 사고 골목으로 휩쓸려갈 뻔했던 것도 맞긴 하지만...

압박이 갑자기 심해져서 발이 안 닿았던 것도 맞지만, 숨을 쉬기가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와이키키 술집 벽으로 붙어야 살 수 있다고 난간에서 끌어주신 것도 맞지만, 그때 술집에서 문을 열어주고 대피해서 잘 살아남았고, 밤 10시 40분쯤부터는 '아 살았다, 이제 그럼 술 먹고 놀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었던지라... 참사 생존자로 분류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생존자로 분류되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 환자로 분류된 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환자라는 사실에 정신과 치료 연계 시스템을 안내 받고 나온 이후, 선생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상담 선생님 : "트라우마가 심할수록 스스로 고립이 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사 이후 혼자 고립되어 꾹꾹 참는 것보다 나의 슬픔을 타인에게 공유했을 때 그 슬픔으로 타인이 위로를 받을 수도 있어요. 글을 쓰시는 분이니, 트위터나 커뮤니티 등에 글로 연재하듯이 공유해보시는 것은 어떠세요?"

이렇게 권유받은 후, 저는 그날 제가 이야기와 상담 치료 이야기를 여러 편의 글로 공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 : "선생님 아무래도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상담 선생님 : "아니에요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지켜주는 것이 맞아요.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 첫 번째 심리 상담 치료하던 날, 선생님의 한마디에 큰 위로를 받았던 순간. 
 
필자가 경험한, 참사 이후 정신과 치료 과정

국가트라우마센터 전화상담(1577-0199)과 심리학회 전화상담(1670-5724)을 통해 20분간 전화상담을 진행한 후 거주하는 구의 정신복지센터 대면 상담치료 및 PTSD 검사 완료.
 
고위험도 PTSD 판정 후 정신과 치료 연계 → 거주지 연계 정신과 치료 무료 상담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고, 일주일 동안 상담 치료 후, 국가 트라우마센터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예정이라는 안내를 받음. 
 
 
2.
선생님, 어떤 감정이 오늘 힘들게 했냐고 물으셨죠.

오늘 언론에 이태원 현장에서 혼자 목이 쉬어라, 터져라 사람을 통제했던 경찰관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저는 구출된 후, 참사 현장 근처 새마을회관이라는 술집에서 '안으로 들어와 몸을 피하라'는 말을 들었고, 가게 안에 들어가 친구와 쉴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경찰관을 저도 보았고, 그때 처음으로 '압사...?로 사람이 죽었다고?'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 나온 것처럼 그 경찰분 혼자서만 현장을 통제한 건 아니었습니다. 새마을회관 사장과 직원들이 모두 가게를 내팽개치고 따라 나가서 통제를 도왔거든요

뿐만 아니라 저를 처음 대피하게 해준 참사 현장 근처 와이키키 술집 직원들도 문을 열어 저와 다수를 구해주셨고, 그분들도 가게를 뒤로 하고 야광봉을 사용해 온몸으로 참사 현장에 새롭게 유입되는 사람들을 막고 통제했습니다.

참사 소식이 알려지자 SNS에서는 참사 현장 근처 술집들이 왜 음악을 안 끄냐고,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냐고 욕을 많이 하더라고요. 음악을 안 끈 것이 아니고, 본능적으로 달려나가 통제하느라 음악을 끌 사람이 없었던 거였습니다. 현장이 통제된 후, 12시가 넘어서 술집 직원 분들은 잠깐 들어와 음악을 끄셨거든요.

무자비하게 주변 상인들을 욕하는 SNS를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꼈고, 화가 나고, 원망스러운 감정이 무지막지하게 올라왔습니다. 

현장에 있지 않던 당신들이 도대체 무엇을 아냐고, 보이는 것과 전달되는 게 전부는 아닌 거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참사 초기, 언론에서는 주변 상인들이 얼마나 도왔는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관심도 없는 것 같았고요.

지금 한 이야기를 모 방송사 제보란과 시사 라디오 채널 제보란에 이야기했습니다. 주변 상인들에 대한 이야기 꼭 다뤄달라고요. 하지만 어디에서도 뉴스에 내보낼 생각은 없어 보였고, 대답도 오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언론은 어디에, 무엇에 관심이 있는 걸까요.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너무 무섭고 자꾸 두 눈을 감게 돼요.

- 화가 나고 원망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줄 수 있느냐는 상담 치료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 

3.
선생님, 제가 죄책감이 커 보인다고 하셨죠.
죄책감이라기 보다는... 제 자신이 좀 징그럽습니다.

저는 10시 40분 구출, 10시 50분 와이키키 술집 바로 옆 새마을회관 술집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대피하고 있던 친구를 만났어요.

그때까지도 전혀 상황 파악이 안됐습니다. 그냥 '특이한 압박 상태를 겪었나? 위험하긴 했는데 지났으니 됐지' 뭐, 이런 마음.

참사 관련 뉴스가 뜬 것도 아니었고, 마이크나 확성기로 누가 안내를 구체적으로 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저는 그저 대피하려고 왔지만. 그 술집에서 만난, 텔레토비 분장을 한 4명의 귀여운 친구들과 놀 생각에 시동을 걸고 있었어요.

귀여운 친구들이 춤을 추고 술을 건네주길래 받아먹었고, 같이 신나게 춤을 췄습니다. 15~20분 정도 그렇게 놀았던 것 같아요. 제가 얼마나 흥겹던지 영상을 찍어뒀더라고요. 그때 시각이 11시 7분.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영상 속 우리가 신나게 놀던 장면들 뒤로 구급요원이 들것으로 사람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는 걸요.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죄책감이 아니라 이건 좀... 제 자신이 너무 징그러운 인간인 거 같은 거예요.

친구들은 저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해주었지만, 친구들은 이 사실을 몰라요. 제가 입을 꾹 닫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며칠을 집에만 박혀 있었으니까요.

11시 7분 이후, 목이 터져라 통제하는 경찰관이 가까이 다가와 '앞에서 사람이 깔려 죽었어요. 통제에 동참해 주세요' 소리치는 걸 보고 술이 깨기 시작했어요. '에이 설마. 저 사람, 경찰이 아닐 수도 있어. 거짓말'이라고 속으로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통제되기 시작하고 거리의 인구 밀도가 현저히 낮아지기 시작하더니, 길 중간에서 서 있던 여자분들이 갑자기 픽픽 쓰러지더라고요. 한두 명이 아니길래 속으로 '단체로 약물을 했나보다, 그래서 구급대가 오는 건가봐'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선 채로 질식사했던 사람들이, 군중 무리가 풀리자 쓰러진 것이라는 걸 뒤늦게 뉴스로 알았습니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술 많이 먹고 싸움이 났나 보다' 생각했지만, 이내 곧 1초에도 몇 명씩 쏟아져 옮겨지는 사람이 80명 이상 되는 걸 보며 무언가 이상하다 직감했어요.

그때가 11시 30분. '이상하다 분명 사람이 죽었으면 기사가 뜰 텐데, 아직 기사는 안 뜨네, 그럼 다 살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구출되고 새마을회관으로 건너올 때, 바닥 쪽에 깔려 누워있던 여자분이 생각났어요. 그분의 친구분이 도와달라고 사람들에게 소리쳤지만, '술 먹고 쓰러진 사람인가 보다... 일단 얼른 빠져나가야지' 하고 그냥 왔어요.

선생님, 이 모든 사실을 친구들이 안다면
그래도 저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요?

말하지 못한 게 또 하나 더 있어요.
CPR(심폐소생술)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었어요.
그런데 너무 무서워서 하지 않았어요 집으로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던 거 같거든요.

사람 실려 나갈 때는 세상모르고 놀더니 정말 너무 징그러운 인간인 거 같아요, 저는.

그때 그냥 CPR 도울 걸 그랬어요.

- 죄책감이 커 보인다는 심리상담치료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 

"살아 돌아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서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며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을 적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서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며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을 적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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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담 선생님 : "큰 사고 현장에서 살아 돌아왔네. 다행이다! 우리 '다행'이라는 관점에 초점을 맞춰볼까요? 살아 돌아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OO씨. 시간을 되돌려 그날 그 시간으로 간다면, 쓰러져 있던 여성분을 도울 거 같으세요?"

나 : "모르겠어요."

상담 선생님 : "아마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사람이 꽉 들어찬 거리에서 떨어진 휴대전화나 소지품을 줍겠다거나 사람을 돕겠다고 몸을 숙이면, 그대로 내가 위험해질 수 있어요. 다시 한번 질문 할게요.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 사람를 구하러 몸을 숙이셨을 거 같으세요?"

나 : "아니요."

상담 선생님 : "CPR도 마찬가지예요. 전문 인력이 아니고 술을 드신 상태라 참여했어도 큰 도움되지 못하고 오히려 돕지 못했다는 무기력함을 느꼈을 수 있어요. 

그럼 우리 관점을 '다음번'으로 바꿔 볼까요?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내가 사람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 CPR을 배워봐야지. 우리 같이 CPR 배우는 거 알아볼까요?" 

상담 선생님 : "사람이 실려 나가는데, 그것도 모르고 술 먹고 춤추고 놀았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에요. 원래 술 먹고 노는 곳인데 벌어지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진 거예요. 우리 또 관점을 바꿔볼까요? 만약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이 있으면 정말 도움 되었겠다 싶으세요?" 
 

나 : "경찰의 마이크, 스피커, 확성기... 그리고 안 들릴 수도 있으니까 LED 전광 안내판 같은 거,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세계음식거리 술집 상인들도 그거 없으면 영업할수 없었으면 좋겠기도 해요. 상인들끼리 핫라인 연결도 있었으면 좋겠고..."

상담 선생님 : "좋은데요? 그럼 우리 이걸 가지고 지금 해볼 수 있는걸 해볼까요? 작게는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기. 크게는 언론사 제보 채널에 알리기.

우리 사회에서 참사가 다시 발생했을 때, 경찰도 통제를 하며 마이크나 확성기, 그리고 전광판을 이용해야 한다고요. 상인들은 마이크, 확성기, 핫라인 연결이 없으면 영업 못 하게 한다고요.

이 제보가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적극적으로 내가 행동하는 것이 지금의 무력감에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그런데 누가 알겠어요? 이게 만약 반영돼서 뉴스나 기사에라도 나올지? 그러면 갑자기 확 살아갈 힘이 백 배, 천 배는 될걸요?" 


- 두 번째 심리 상담에서 전문가의 필요성을 느끼다, 희망을 느꼈기 때문에.

5.
상담 선생님 : "어제 제가 담당하던 다른 남성분이 있어요. 똑같이 그 현장에 계셨고, CPR을 할 줄 알아서 한 시간 넘게 거기서 CPR을 도우셨대요.

그런데 마지막에 안면이 일그러져 있고, 팔다리가 모두 성치 않은 분이 자기 앞으로 왔는데, CPR을 하다가 그냥 집으로 도망쳤다는 거예요. 그게 너무 괴롭고 힘들다고 하셨어요. 이분에게 OO씨라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나 : "나였어도... 그렇게 했다." 


- 두 번째 심리상담에서 연대감을 느끼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② 이태원에서 같이 살아나온 친구, 진실에게 http://omn.kr/21i3o
③ '놀러 갔다가 죽은 걸 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http://omn.kr/21i3n
④ 생존자인 저는,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겁니다 http://omn.kr/21i3t
⑤ 묻고 싶습니다, '이태원 참사' 때 다 어디에 있었느냐고 http://omn.kr/21i3w
⑥ 쏟아진 친구들의 연락, 휴대전화 붙잡고 울었습니다 http://omn.kr/21i3v

태그:#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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