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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편집자말]
지난 10월 30일 오전 1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 호텔 앞에 구급차 및 소방·경찰관들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 위치해 있다.
 지난 10월 30일 오전 1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 호텔 앞에 구급차 및 소방·경찰관들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 위치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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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같이 살아나온 친구, 진실(가명)에게

우리는 그날 화려한 분장을 했고, 내가 너에게 화장도 해주었지.
너는 평생 이렇게 화려하고 짱짱한 피부 메이크업도 처음 받아본다고 했고, 기왕 이렇게 화려하게 분장했으니 우리 이태원 클럽 파운틴이나 프로스트에 가보자고, 클럽 가서 놀고 길거리에서 분장한 사람들이랑 사진 찍자고 했지.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가벼이 술집도 들렀다가 프로스트 바로 앞까지 도착했을 때 우리는 압박이 심해지는 걸 느꼈고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잃어버렸어.

SNS에서 사람들이 '밀어, 밀어' 소리치는 건지 '뒤로, 뒤로' 소리지르는 건지 갑론을박이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분명히 '뒤로, 뒤로' 였다고, 그래서 남자분들이 바로 다같이 등을 돌려 녹사평 방향으로 길을 틀고, 흐름이 한번 바뀌면서 우리는 반대로 나올 수 있었어.

너를 다시 만나고 두 시간여의 큰 참사를 두눈으로 목격하고난 후, 나는 현장에서 보다 집으로 돌아온 그 이후부터 고통이 심해지기 시작했어.

뉴스로 참사의 심각성과 진실이 드러나면서 어쩐지 내 뇌가 같이 죽어가고 있는 느낌이었거든.

나는 적극적으로 상담을 찾아다니고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았지만 가족과 같이 사는 너는 엄마 아빠가 걱정한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그리고 오빠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이태원에 가지 않은 척하고 집으로 돌아갔지.

가족과 공유하지 못한 채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과 뉴스를 보고 사담을 나누고 방으로 들어가 울고 목욕을 하며 혼자 풀고, 괜히 운동을 나갔다 와보고 하는 너를 보며 가슴에 응어리지는 것이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프다.

어떤 이들은 가족에게 무조건 공유해야 한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말해봤자 좋은 소리를 해줄 가족이 아니라면 그냥 말하지 않는 게 낫겟다 싶거든.
 
지난 3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내외국인들이 직접 작성한 추모글과 그림이 붙어 있다.
 지난 3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내외국인들이 직접 작성한 추모글과 그림이 붙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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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회 상담을 받았을 때, 내게 처음 물으시던 게 바로 '가족과 같이 사는지, 혼자 사는지' 그리고 '가족과 (이 일을) 공유했는지'였어. 

나는 이태원에 간 사실을 공유하긴 했지만, 내가 이렇게 죽기 직전으로 마음이 힘든 것은 공유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고, 그 상담사도 아무리 가족이어도 좋은 소리 들을 관계가 아니라면 공유하지 말고 가까이 연결된 친구, 내 말을 잘 들어줄 수 있는 관계에 털어놓고 말로 풀어야 한다고 했어. 

부모님은 세대가 다르니, 우리를 자식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니 공유 못 하는 마음은 원망하는 마음과는 다른 거다 라고.

그러니, 진실아 제발 전화 상담이라도, 더 용기 내서 대면 심리치료 한 번이라도 받아보고 와줘. 힘들수록 혼자 고립된다는 말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너를 떠올리게 해. 지금 연락 안 되고 혼자 꽁꽁 숨어있는 네가 너무 걱정돼.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그런데 왜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지.

한국심리학회 무료 심리상담 전화 1670-5724
국가트라우마센터 02-2204-0001
위기상담전화(24시간 야간 상담) 1577-0199
각 거주지 구마다 무료 정신상담센터 운영
각 거주지 구마다 정신의학과 무료 상담치료 연계운영 중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①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http://omn.kr/21i1i
③ '놀러 갔다가 죽은 걸 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http://omn.kr/21i3n
④ 생존자인 저는,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겁니다 http://omn.kr/21i3t
⑤ 묻고 싶습니다, '이태원 참사' 때 다 어디에 있었느냐고 http://omn.kr/21i3w
⑥ 쏟아진 친구들의 연락, 휴대전화 붙잡고 울었습니다 http://omn.kr/21i3v

덧붙이는 글 | 이 편지는 필자의 친구 진실(가명)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태그:#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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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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