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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 형!

 

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지 않수? 거 다 거짓말입디다. '내리사랑'만 있는 게 아닙디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관심 갖고 신경 쓰는 것 못지않은 사랑이 아이들에게도 있다는 걸 어려움을 당하며 알게 됐다우. 자식들의 '치사랑'이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그 얘길 해보고 싶다우.

 

정말 눈물 한 번 진하게 흘린 적이 있다우. 내 자식들 때문에. 아내나 남편,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나 한다고 하지 않수? 근데 난 그 팔불출이 기꺼이 되고 싶다우. 정말로 죽는 것보다 더 힘들구나 느낀 적이 있었다우. 아직 어린애들인 줄만 알았던 딸내미와 아들 녀석이 그렇게 대견하게 큰 걸 느끼곤 정말 속울음을 꺼억꺼억 울었다우.

 

누군, 남자는 일생에 세 번만 우는 거라잖수? 물론 전근대적인 마초 사상이 낳은 기우이긴 하지만…. 태어날 때 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하고, 나라가 망했을 때 우는 거라는데, 난 아무래도 그때 한 번 더 울어서 다른 남자들보다 한 번 더 울 것 같다우.

 

목사에서 주유원으로

 

김 형!

 

벌써 아득하게 멀어져 간 듯 하다우. 3년 전의 기억이. 너무 아팠던지라 그렇게 느껴지나 보우. 꿈에서라도 그때의 일들은 안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라우. 근데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심장을 벌떡거리게 하고, 머리며 얼굴, 팔다리에 주눅 든 무거리를 한 아름 안겨주고 떠날 때가 있다우.

 

상처는 그리 아물기가 어려운 모양이우. 김 형도 잘 알다시피 목사는 교회에서 제공해 주는 사택(師宅)에서 살며 목회를 하지 않수. 근데 후임지도 정해지지 않은 채 담임하고 있던 교회에서 내몰린 목사가 어딜 간단 말이우. 오해와 곡해, 무엇인가 해명하려고 하면 더 큰 오해의 덤터기가 다가오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진다우.

 

이미 등진 사이가 된 사랑하던 교우들이 몰려와 "집 빼!"라고 할 때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수? 참으로 미련한 좌우명을 신조로 하던 내겐 그 말은 청천벽력보다 더 한 것이었수. 그 신조가 뭔지 아우? '목사는 평생 돈을 모아서는 안 된다'는 거였수.

 

그러니 그 난리가 나서 교회에서 나올 때는 알거지지 뭐유. 그래도 몇 개월을 거기서 버텼다우. 나이 50에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돼 끼니를 걱정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수. 아내는 아내대로 돈벌이를 찾아 나가고, 난 나대로 헤매다 취직이란 걸 했는데 그게 바로 주유원 '알바'였다우.

 

그때 이야기는 이미 '주유소 알바 된 목사, 성깔 한번 부렸다가'와, '주유소 알바 된 목사, 담뱃값을 팁으로 받다'라는 두 글을 통해 말하지 않았수. 그때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놓은 게 책 한 권 분량이 넘는다우. 언제 한번 출판해 준다는 데 있으면 그러려고 하우. 그런 데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돈이라는 맘몬이즘이 그리 무서운 것을. 왜 그때는 그리 소홀하게 생각했었는지 모른다우. 그때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수. 짤막한 이 글에 그때 얘기 다했다가는 날 샐 거유.

 

"아빤, 세상을 너무 몰라요!"

 

김 형!

 

근데 말이우. 우리 집안이 그리 난리를 겪을 때, 딸내미는 대학 4학년이고, 아들아이는 외국에서 3학기째 유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우. 먹을 끼니 걱정만으로도 벅찬데, 사는 집에서는 나가줘야 하는데, 아이들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코스에 있는데….

 

아! 또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 가슴이 옥좨오는구려. 교회와 목회, 목회와 성도들, 성도들과 설교, 설교와 심방, 심방과 성도들…. 뭐, 이런 식으로 쳇바퀴 돌던 내 목회생활이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삭아들고 성도들은 더 이상 내게 성도가 아니었을 때, 곁에 여전히 남은 것은 아내와 두 아이 뿐이었다우.

 

딸내미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참 철없는 짓을 해 우리 부부의 골치를 썩이기도 했다우. 그러던 그 녀석이 고민과 걱정과 시름과 한숨의 나날들 속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우리부부가 그래도 살아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우리에게 글쎄 인생을 얘기하고 위로란 걸 하지 않겠수?

 

"아빤 세상을 너무 몰라요!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요. 나 빼고는 다 적이에요. 아니 내 가족 빼고는."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참 아빠두. 내가 어린앤 줄 아세요? 알바하면서 별난 사람들 다 겪어봤어요. 그러면서 세상이란 믿을 게, 아니 사람이란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아빤 사람을 너무 믿어서 이 사단이 난 거예요. 좀 늦었지만 인생을 배운다 생각하고 용기 잃지 마세요. 저희들 걱정은 말고요. ….

 

그래도 우린 아빠가 사업하다 부도난 것은 아니잖아요. 남들은 부도나고 가구에 빨간딱지 붙고 아빠가 노숙자 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도 우린 아빠하고 같이 살 수 있으니 행복한 거예요. …."

"……."

 

유구무언입디다. 대학 때 그리 말리는데도 알바를 하더니 세상물정까지 얘기하니…. 김 형! 벌써 철부진 줄만 알았던 아이가 세상과 사람을 얘기합디다. 그러더니 자기 걱정은 말라고, 자신이 알아서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할 테니 염려를 말라고. 정말 그렇게 졸업을 하더니 남들은 그리 어렵다는 취직을 단박에 하고 지금은 어엿한 프로그래머 프리랜서가 됐다우.

 

관점의 차이라고?

 

김 형!

 

딸내미 자랑이 심하다구? 아들 자랑함 해볼 테니 들어볼라우? 그리 난리브루스를 겪고 있을 때 아들 녀석도 방학이라 들어와 한 달 여를 난리브루스 한 가운데서 그 파고를 다 겪었지 않수. 근데 이 녀석이 가타부타 말 한마디를 안 하는 거유. 그렇게 묵묵히 한 달을 지내다 학교를 정리한다며 돌아갔다우.

 

아직은 부모 그늘 밑에서만 살던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우. 그런데 이게 웬일이우? 도착하자마자 메일을 보내온 거유. 지 어미에게. 아내가 메일을 내게 읽어주며 눈물을 닦는데 나도 울지 않고는 못 배기겠습디다. 대강 요약하면 이렇다우.

 

"엄마,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라잖아요. 너무 마음 아파하거나 상심하지 마세요. 같은 물이 컵에 담겨 있어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희망이 될 수도, 절망이 될 수도 있다고 해요.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하는 것과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하는 것은 천지차이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기자고요.

 

엄마아빠가 참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뵙고 나니 저도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또 다른 좋은 기회를 주시기 위해 그러신 거라 믿어요.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저 때문에 걱정하지도 마시고요. 엄마아빠, 힘내세요!"

 

아들의 메일이 참 힘이 됩디다. 속에서 왈칵 눈물이 납디다. 아직 어린앤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이리 훌쩍 컸다는 게 새삼 느껴집디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 봐야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다더만, 정말 그런 거였다우.

 

김 형!

 

하지만 내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 친구가 다 친구가 아닙디다. 친척이 다 친척이 아닙디다. 그러나 처형의 경우 적극적으로 물질로 돕는데…. 그 사랑을 다 말할 수 없다우. 지금 딸내미가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며 사는 셋집이 그분이 준 밑천으로 시작된 거라우. 어려울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알 수 있습디다.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배우는 게 인생인가 보우. 어려울 때 아이들에게 한수 배우고 요샌, '나처럼 행복한 아빠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우. 어려움을 겪으며 아이들이 훌쩍 컸다고 생각했다우. 김 형! 우리 아이들, 다 큰 것 같지 않수? 어려울 때 가족, 정말 가족밖에 없습디다.

덧붙이는 글 | - <가족에게 길을 묻다> 응모글입니다.
- 글쓴이는 지금은 시골의 작은 교회의 목사로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때 세상사 모르는 저 때문에 마음 고생하신 모든 분들께는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태그:#가족, #고난, #목사, #주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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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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