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해 칠순 생신 때, 손자손녀들과 함께 찍으신 사진
▲ 장인어른과 손자손녀들 지난 해 칠순 생신 때, 손자손녀들과 함께 찍으신 사진
ⓒ 이성한

관련사진보기


장인어른이 편찮으십니다. 많이 편찮으십니다. 장인어른에게 큰 병이 찾아왔습니다. 병원에 가서 조금만 치료 받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랍니다. 온 몸 깊숙이, 뼈 속까지도 마음 속까지도 아프게 만든 몹쓸 병이 왔습니다.

두 달 전에 처가에 갔을 때, 마당 의자에 앉아 장인어른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버지, 어째 안색이 안 좋으신데 어디 불편하세요?"
"요즘 속도 불편하고, 배도 조금 아프고… 며칠 째 변비에 걸려 변을 제대로 못 봤어…."
"그러셨어요? 얼른 가까운 병원에 가셔서 진찰을 받아보셔야죠."
"그렇잖아도 00 대학병원에 예약을 해 놨어. 병원에 가 봐야지…."
"꼭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평소 건강하셨으니 별 일 아닐 거예요."
"그래, 그럴 테지…."

사위자식인 나는 고작 장인어른께 그렇게 입술에 침을 발라 의례적인 말씀만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00대학 병원에 진찰 받으려 함께 가셨던 장모님에게서 전화 한 통이 불길하게 걸려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떠세요? 의사가 뭐라 하던가요?"
"…………………………으…응…."

장모님은 한 동안 말을 잊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 넋이 빠진 듯 기운 없는 목소리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서방, 아, 글쎄 아버지가 암이래!"
"예? 뭐라고요? 암이라고요? 어머니, 그게 사실예요? ……"

장모님과 나는 서로에게 말을 걸지 못한 채 한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차마 이 소식을 곧바로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상황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한 후 나중에 시간을 두고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나는 서둘러 일을 마치고서 저녁에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장모님을 만나고, 담당 의사를 만났습니다. 장모님의 얼굴빛은 어두웠지만 하얗게 질려있는 상태였습니다. 저녁 무렵 병원에 도착한 사위를 바라보시는 장모님의 눈가에 그렁한 눈물이 보였습니다.

의사는 나를 컴퓨터 앞에 앉히더니 장인어른의 검사결과 사진을 차례대로 보여주며 의례 의사들의 침착하고 냉정한 목소리 톤으로 검사결과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담당 의사의 설명을 가만히 들었습니다.

"000 환자는 대장암 4기입니다."
"네~에! 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여기 사진을 보세요. 이미 폐와 간, 신장 등으로 전이가 된 상태입니다. 이 상태라면 수술도 불가하고, 방사선 치료도 불필요한 상황입니다. 지금으로서는 항암주사로 치료하는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입니다."
"어디, 어디요? 으… 으……."

나는 담당의사의 설명을 옆에서 앉아서 들으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는 장인어른께 청천벽력처럼 찾아온 대장암 4기 검진결과에 대한 젊은 담당의사의 친절한 설명을 너무나 무력하게 듣고만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뭐라고 추가 질문을 할 겨를도 없이 의사는 검진결과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했습니다.

"최종 결과는 몇 가지 검사를 더 거친 후에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지금 환자의 상태는 거의 99% 대장암 4기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로 만약 치료를 받지 않으면 6개월, 치료를 잘 받으신다면 1~2년 정도 사실 수 있다고 봅니다."

장인어른의 암 소식, 가족 모두가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다

지난 해 칠순 생신 때 장인 장모께서 생일축하 떡을 자르시는 모습
▲ 장모님, 장인어른 지난 해 칠순 생신 때 장인 장모께서 생일축하 떡을 자르시는 모습
ⓒ 이성한

관련사진보기


의사의 설명을 듣고서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상황을 대체 누구에게 뭐라고, 어떻게 말하고 설명해야 할 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나는 정말 마음이 무거워지고 숨도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장인어른의 검진결과 소식을 전했습니다. 가족들도 모두 놀라고 황당해하며 망연자실했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장인어른의 병환은 가족들을 절망하게 했습니다. 모두들 충격이었고, 믿을 수 없었으며,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침묵으로 흘렀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허탈해했고, 상심했으며, 몹시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인 가족들 모두는 어느 순간 이내 서로의 눈빛을 맞추며, 힘을 내고 용기를 내자며 마음을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후 처가 모든 가족들은 각자 위치에서 제 할 몫을 나누며 열심히 장인어른의 치료와 평안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연세가 일흔하나이신 장인어른께선 벌써 두 달째 항암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처남과 사위인 나는 번갈아 장인어른을 병원에서 집으로 실어 나르는 자원 구급차 기사(?)가 되었고, 장모님은 늘 곁에서 손발이 되어주는 천사 같은 간병인이 되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처형과 처제 가족은 하루가 멀다 않고 처가에 전화해서 장인어른의 쾌유를 위한 정보도 말씀드리고, 열심히 운동하시도록 애교스런 잔소리(?)도 빠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온 가족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물심양면으로 그렇게 장인어른의 쾌유와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두 달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이제 가을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날짜가 지날 때마다 스치는 바람도 차갑고, 낮의 길이도 짧아져 오후가 지나면 금세 어두워져 밤이 되고 맙니다. 모든 것이 우주 질서대로 순환하고, 시간 역사 속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시골 처가 창가에는 병든 몸을 의자에 기대시고서 가을빛에 물든 농토를 처연히 바라보며 다가올 아내와의 머지않은 이별, 자식들과의 이별을 생각하고 계실 장인어른이 앉아 계실 줄도 모를 일입니다.

갑작스런 장인어른의 병환은 모든 가족에게 아픔이고 시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장인어른의 병환을 계기로 모든 가족과 형제들은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들 간의 우애와 신의를 진심으로 나누고 확인하는 또 다른 소중한 체험을 얻었습니다. 혹 몇 몇 형제들끼리 평소 바쁘고 소원하게 살았다면 이번 일로 인해 마음을 열어 반성하고 깨달을 수 있는 귀한 성찰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모쪼록 힘겹게 병마와 투쟁하고 계실 장인어른께서 묵묵히 자신의 살아온 삶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신의 가호와 용기가 임하시길 두 손 모아 간절히 소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가족에게 길을 묻다> 응모글 입니다.



태그:#장인어른, #암, #가족, #투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양시에 걷기 좋은 길을 개척하기 위한 모임으로 다음 카페 <고양올레>를 운영하는 카페지기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