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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방해하고, 민주화를 가로막으며 평화통일을 저해하는 곡필을 일삼는 작가의 작품이 민족동질성 회복과 문화적 통일여건 조성을 위한 취지로 발간되는 <통일문학전집>에 수록될 자격이 있느냐."

지난 9월 17일 국회 문화관광위의 '문예진흥원' 국정 감사에서 민주당 최재승 의원은 문예진흥원이 기획해 추진하고 있는 <통일문학전집>에 작가 이문열 씨가 포함된 것을 두고 "발간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 작가의 작품이 선정됐다"는 내용의 서면질의서를 제출해 파문을 일으켰다.

최의원의 이러한 질의서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자 조,중,동을 비롯한 <경향> <국민> 등 주요 일간지들은 최의원의 발언을 '본분을 잊은 정치적 망발'로 규정하고 격렬한 비난을 가했다.

특히 <조선>은 9월 19일자 사설(최재승 의원의 망발)을 통해 "이야말로 자신들의 주장과 다르면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로 몰아붙이는 현 정권의 편가르기의 표본"이라며 "우리는 도대체 작가 이문열이 어떤 개혁을 방해했고 무슨 민주화를 가로막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소설가 윤정모 씨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와 이문열 씨의 작품(<황제를 위하여>,<사람의 아들>)이 <통일문학전집>에 수록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윤정모 씨는 글을 통해 최의원 발언 이후 각 일간지가 내놓은 기사들이 "공정과 객관성은 그 잣대가 너무 기울어져 있었고 다같이 한 목소리로 주장한 '공평성, 다양성 인정'에 대한 항변조차 제대로 짚어낸 사람이 없었다"며 "차라리 이번 전집제목을 <남북문학전집>으로 했다면 다양한 시각의 소설이 다 망라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윤정모 씨는 "내가 받은 문예진흥원의 작품의뢰 취지서에도 분명 남북이 함께 하는 <통일문학전집>이라고 명시되어 있었고 그래서 통일을 위해 일정하게 기여한 어떤 작품들을 위주로 전집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이문열 씨는 통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밝히며 이씨의 작품이 수록되는 것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윤정모 씨는 또 "이제 문예진흥원에 그 전집 명칭을 바꾸든가 이씨의 작품을 빼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정중히 권유하고 싶다"며 "만약 통일문학전집으로 계속 진행한다면 적어도 통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선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윤정모 씨가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글의 전문이다.

<통일문학전집>과 이문열 씨

솔직히 말해서 처음 나는 최재승 의원의 발언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은 <문예진흥원>의 '작품의뢰취지서'에도 분명 남북이 함께 하는 <통일문학전집>이라고 명시되어 있었고 그래서 통일을 위해 일정하게 기여한 어떤 작품들을 위주로 전집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았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문학전집 발간 전례가 그래 왔으니까.

그런데 최의원의 발언이 다시 시끄러워졌고 나는 내 생각이 편협할 수도 있다 싶어 그 내용의 기사들을 전부 찾아 읽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던 공정과 객관성은 그 잣대가 너무 기울어져 있었고 다같이 한 목소리로 주장한 '공평성, 다양성 인정'에 대한 항변조차 제대로 짚어낸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황종연 교수(<동아> 9월 19일자 "문학 향한 정치적 차별 중지돼야"-편집자)와 작가 이순원 씨의 글(<경향> 9월 21일자 "분서갱유라도 하겠다는 건가"-편집자)을 읽고 조금 안심을 했다.

황교수의 "... 이씨의 작품이 전집에 제외되어야 한다면 수록하기로 결정된 북한작가들의 작품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나는 "아 맞어! 우린 그들의 작품과 그 질을 모르지 않는가?"라는 것을 깨달았고 "북한 체제의 정당화에 봉사한 수많은 작품들은 이씨의 작품과 달리 민족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에서 "그래, 차라리 이번 전집제목을 <남북문학전집>으로 했어야 했어, 그랬다면 다양한 시각의 소설이 다 망라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황교수의 다음 인용문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은 문학에서 정치는 연주회장에 울리는 총소리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적인 것의 전횡은 문학이 애써 추구하는 그 나름의 영역을 일거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다"에서 나는 다시 묻고 싶어졌다.

스탕달이 정치 일선에 나서 상대를 비방한 일이 있는가? 그는 작품으로 모든 이야기를 했지 공공장소나 지면을 빌어 반대파를 원색적으로 몰아붙인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가? 그런 미성숙한 작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통해 들어본 적이라도 있는가?

물론 작가 개개인이 다 다른 생각과 사상은 가질 수 있다. 문학의 역사가 늘 그래 왔고 그 시대에 따라 각자 자기 주장을 해온 것도 사실이며 그 주장이 영구불멸한 것 또한 없었다. 이념이나 사상이란 세월에 따라 끝없이 변화고 바뀌어왔으며 경향의 우열에 따라 주장이 강하거나 약한 것이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작가들이 하나같이 지켜온 것은 자기 나름의 도덕성과 지성이었고 자기 팬을 무사의 칼처럼 정적을 향해 직접 휘두르는 일을 극도의 수치로 알았다.

그러나 이문열 씨는 어떠했는가. <선택>이란 소설에서 여성작가들의 실명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같은 작가의 인격을 모독했다. 이 현대에 조선시대 여성을 끌어와 그 여성상을 이야기한다는 거야 그 사람의 취향이며 자유라쳐도 그에게 동료작가의 실명까지 써먹어도 좋다는 권한은 대체 누가 주었는가?

나는 이제 <문예진흥원>에 그 전집 명칭을 바꾸든가 이씨의 작품을 빼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정중히 권유하고 싶다. 만약 <통일문학전집>으로 계속 진행한다면 적어도 통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선별되어야 한다.

"이문열 씨는 통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문열 씨는 통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북한을 동포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본 것은 오직 북한의 체제와 그 정치권력자뿐이었고 그의 마음은 늘 그들을 향한 이글거리는 분노로만 차 있었다. 이것이 그가 이 전집에서 빠져야 할 이유 중 첫째이며, 만약 그쪽 체제에 순응한 작가들이 작품도 함께 실린다면 그 자신이 얼마나 기분이 나쁠 것인가.

둘째, 수년 전 동독의 어느 교수가 이씨의 소설이 좋아서 번역하고 싶었고 그래서 한국에 와 그를 만나자고 했을 때 그는 먼저 기관원을 앞세웠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만났을 땐 "당신 지령 받고 왔느냐, 나에게 노리는 것이 뭐냐?"고 노골적으로 닥달질을 해댔다.

그 동독의 교수가 받았을 인격모독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통일을 한 동독주민까지도 북한 빨갱이로 보는 그가 어떻게 통일문학 전집에 자기 작품을 주고 싶겠는가.

셋째, 아주 오래 전 어느 일간지에서 '기획 대담' 자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엔 진보진영 젊은 시인과 보수진영 이씨도 함께 했는데 그때 그는 이야기 도중 벌떡 일어나서 이 젊은 시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너 빨갱이가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대담이란 자고로 서로 자기의 의견과 주장을 말로써 풀어가는 것이지 그렇게 삿대질을 해대며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장소는 아닐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가 또 거품을 물어서가 아니라 그 젊은 시인은 막스 레닌을 존경하는 민중운동파며, 정도는 다르지만 그 역시 북한 체제에 일정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청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씨가 그것도 구별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순수한 사람까지도 북한빨갱이로 몰아붙여온 그 행위, 그로 인해 숱하게 상처받아온 사람들의 상식을 위해서도 "통일문학"에서는 빼주는 게 예의라는 것이다.

또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면 이순원 소설가는 "지난 50여년 동안 체제를 달리해온 남과 북의 문학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바로 <통일문학전집>의 발간 취지가 아니냐"고 반박해올지도. 그렇다면 더욱 더 그 중간다리가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남북 문학"으로 전집을 내서 먼저 상호 가려온 정서를 알린 다음 <통일문학전집>을 제작하는 것이 그 순서일 것이다.

오늘 밤 꿈자리가 시끄러울 것 같다. 다음 번 이씨의 소설엔 또 내가 이상한 이름으로 등장해서 그의 펜이 아닌 칼끝에 난도질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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