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플래쉬>의 포스터

영화 <위플래쉬>의 포스터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토마스 에디슨의 말이다. 어쩌면 천재와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격언일 이 문장도 영화 <위플래쉬>의 테렌스 플렛처 교수 앞에서는 이렇게 수정될 것이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모멸감으로 이루어진다.'

미국 최고의 음악대학 셰이퍼 음악학교의 재즈밴드 지휘자인 플렛처(J.K. 시몬스 분)는 '잘했어 Good Job'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 분야에서, 적어도 자신이 속한 재즈음악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아가 그는 분노와 모멸감이 끊임없는 노력의 훌륭한 동기가 되어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통해 실현하려 하는데 그 방편으로 온갖 폭언과 모욕을 서슴지 않는다.

플렛처는 주인공인 앤드루(마일즈 텔러 분)에게 비밥 모던 재즈(상업적 스윙 재즈에 대한 반발로 1940년대 중반 미국에서 등장한 자유분방한 재즈 연주 스타일)의 창조자로도 유명한 찰리 파커의 일화를 들려준다. 어느 공연에서 찰리 파커의 연주에 불만을 가진 드러머 조 존스가 그에게 심벌을 던졌는데 이에 모욕감을 느낀 찰리 파커는 끝없는 연습으로 1년 뒤 최고의 음악가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플렛처는 제2의 찰리 파커를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 조 존스의 역할을 자임했는데 아쉽게도 그의 제자 가운데서는 찰리 파커와 같은 인재가 없었다는 게 스스로의 말이다. 그런 그에게 주인공인 앤드루는 "그런 식이라면 제2의 찰리 파커도 못 견디지 않을까요?"라고 묻지만 "그렇다면 찰리 파커가 아니지"라는 플렛처의 답변에 이내 수긍하고 만다.

천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위플래쉬>에서 플렛처 교수를 연기해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차지한 J.K. 시몬스

<위플래쉬>에서 플렛처 교수를 연기해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차지한 J.K. 시몬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위대한 드러머를 꿈꾸는 앤드루와 폭압적인 교수법으로 그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플렛처의 대결을 그려낸다. 감독은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플렛처의 교수법과 이를 견디고 받아들여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학생 사이 끝없는 충돌 속에서 위대함이 빚어지는 순간을 포착하려 한다. 생후 18개월 만에 드럼 스틱을 잡았다는 전설적인 드러머 버디 리치가 아닌 바에야 찰리 파커와 같은 자기 극복이 필요하다는 게 플렛처의 지론인데 이를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영화도 얼마쯤은 이에 동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형적인 음악 영화나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다룬 감동드라마와는 상이한 구성인데 전반적으로 두 인물의 대립구도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영화는 앤드루가 플렛처의 눈에 띄어 그의 밴드에 들어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새로운 세계에서 만나는 충격적인 사건과 꿈을 위해 모두를 견뎌내려는 강박에 가까운 노력, 목표가 좌절되면서 벌어지는 파국적 사건들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는 솜씨가 일품이다.

플렛처가 지휘하는 밴드의 연습시간은 언제나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심사가 뒤틀리면 폭언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플렛처 앞에서 학생들은 고양이 앞의 쥐마냥 경직되어 덜덜 떨 뿐이다. 문밖에선 따스한 사람인 것도 같지만 연습실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변덕스러운 독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학생들은 플렛처의 템포에 맞추고 플렛처의 감정을 따르며 플렛처의 음악을 연주한다. 플렛처는 밴드의 주인이며 학생들은 그의 악기로써 존재하는 것만 같다.

학생들이 플렛처의 폭압을 견뎌내는 건 그것이 재즈음악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는 앤드루 역시 마찬가지인데 애인과 친구도 포기한 채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만을 꿈꾸는 그에게 플렛처의 밴드 바깥은 곧 실패한 인생이다. 앤드루는 플렛처의 온갖 모욕을 감내하며 더 나은 드러머가 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데 그 과정에서 비틀려가는 심리상태를 배우 마일즈 텔러가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플렛처의 교수법은 앤드루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마침내 나름의 성과를 이룬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방식인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백 보 양보해 찰리 파커가 조 존스가 던진 심벌즈 덕분에 일류 재즈 음악가로 거듭났다는 데 동의한다 하더라도 어디 천재가 찰리 파커와 같은 방식으로만 만들어지겠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플렛처의 교수법이 이뤄낸 성공사례를 그리면서도 동시에 그가 꺾었을지 모르는 수많은 가능성을 잊지 않고 드러낸다는 점은 존중받아 마땅한 미덕이라 하겠다.

끝없는 충돌 가운데 위대함이 빚어지던 그 순간

 <위플래쉬>에서 앤드루(마일즈 텔러 분)를 몰아치는 플렛처(J.K. 시몬스 분)

<위플래쉬>에서 앤드루(마일즈 텔러 분)를 몰아치는 플렛처(J.K. 시몬스 분)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영화는 재즈밴드 가운데서도 앤드루가 맡은 드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피아노나 기타, 색소폰 등보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드럼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특히 영화는 주인공 앤드루를 더블타임스윙 주법을 장기로 삼는 드러머로 설정하고 있다. 역동적인 즉흥연주에 적합한 이 주법은 오직 리듬으로 승부하는 드럼만으로도 멋들어진 클라이맥스를 빚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영화의 핵심은 앤드루가 자기극복을 통해 진정한 재즈 음악가로 거듭나는 과정일 것이다. 처음 플렛처의 밴드에 들어와 그가 시키는 대로 그의 템포에 맞춰 더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에만 골몰했던 앤드루가 어느 순간 무대를 장악하고 플렛처에게 신호를 주기까지의 변화가 핵심이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자신의 템포에 맞추라며 앤드루를 심리적 공황상태로 몰아가는 플렛처의 모습과 그가 공연장에서 '내 공연' '내 밴드' '내 자리'를 강조하는 모습, 친척들과 만난 앤드루가 "음악은 주관적인데 어떻게 더 잘하는지를 평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 등을 의미심장하게 잡아낸다. 이는 플렛처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 밴드의 음악이 어디까지나 플렛처의 예술이며 연주자는 그가 다루는 악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에 플렛처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연주하며 주변 연주자들을 이끄는 앤드루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고 여기서 플렛처가 그에 대한 일방적 통제를 포기하고 어우러져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앤드루가 플렛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 명의 음악가로 거듭났음을 공표한다. 이로써 앤드루는 어엿한 재즈 음악가로 성장한 것이다. 앤드루를 통제하지 않고 그와 함께 공연을 만들어내는 플렛처의 모습은 처음으로 동료를 만난 음악가를 연상시킨다. 플렛처와 앤드루는 철저히 통제된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는 재즈밴드로 멋들어진 무대를 꾸며낸다.

플렛처는 스스로 학생들을 진정한 재즈 음악가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알고 있는 진짜 음악가가 되기 위한 과정, 즉 모멸감을 통해 한계와 마주하게 하는 계기를 거듭 제공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이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졌고 앤드루 역시도 얼마쯤은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플렛처의 사고를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극복하며 진정한 음악가로 거듭났다. 특유의 주법으로 듀크 엘링턴의 'Caravan'을 멋지게 연주하는 앤드루의 모습에서, 그리고 더없이 즐겁게 그와 협연하는 플렛처의 모습에서 그들이 그토록 꿈꿔왔던 순간을 관객도 얼마쯤은 같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는 천재적 재즈 음악가가 어떻게 태어나는가에 집중하며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막상 이를 명확하게 집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강렬한 두 캐릭터의 충돌과 이로 인한 극적 긴장감 조성, 매력적인 사운드와 멋진 클라이맥스, 흥미로운 편집까지가 한데 어우러진 영화임을 부인할 수 없으나 영화가 천착한 숭고한 변화의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는 어느 순간 돌변해 연주를 시작하는 앤드루의 모습을 통해 그의 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데 자기극복의 순간이기에 표현하기가 까다롭긴 했겠으나 보다 섬세한 장치가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영화는 한 편의 성장드라마이며 서부 영화나 갱스터 영화의 느낌이 나는 몇 안 되는 음악 영화다. 더불어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드럼 연주가 등장하기도 한다. 만약 <버드맨>이 없었다면 드럼을 사용한 최고의 영화 음악으로도 꼽힐 수 있었을 것이다. 스콧 힉스가 연출한 <샤인>의 유명한 연주 장면을 오마주한 클라이맥스 부분도 단연 일품이었고 영화에 삽입된 드럼 연주 모두를 직접 소화한 마일스 텔러의 노력은 그 이상이었다. 비록 아카데미는 J.K. 시몬스만을 치하했지만 이 영화가 성취한 연기의 공적을 따진다면 마일스 텔러의 몫이 못해도 절반은 될 것이다.

중반이 지나면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 편집에선 젊은 연출가 특유의 야심찬 시도가 두드러졌다. 몇몇 장면에선 과욕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다른 많은 요소가 관객들로 하여금 사소한 단점에 눈을 돌리지 않도록 잡아두고 있기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위플래쉬>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위플래쉬>에서 주연을 맡아 드럼연주를 직접 소화한 마일즈 텔러

<위플래쉬>에서 주연을 맡아 드럼연주를 직접 소화한 마일즈 텔러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위플래쉬>는 감독인 다미엔 차젤레가 고등학생 시절 겪은 실화를 풀어낸 작품으로, 2013년 선댄스 영화제 단편 부문에 출품되어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106분짜리 장편영화가 제작되었으며 이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관객상을 차지했다. 1985년생 젊은 감독인 다미엔 차젤레는 처음 이 영화를 장편으로 기획했으나 제작비 문제로 단편 제작을 먼저 한 뒤 장편 제작에 돌입했다고 한다. 이로써 대규모 상업자본 밖에서 제작된 독립영화를 꾸준히 후원해온 선댄스 영화제는 <위플래쉬>를 건져 올렸다는 또 하나의 업적을 역사에 새기게 되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위플래쉬>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된 것도, 유명 할리우드 스타가 출연한 것도 아니다. 이제 막 서른 줄에 접어든 젊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제작비가 없어 한참을 헤맨 끝에 만들어진 106분짜리 드라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근래 나온 한국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참신한 소재와 독특한 구성, 치열한 작가 정신을 갖췄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족한 건 대체 무엇일까? 어째서 한국에는 이와 같은 영화가 나오지 않는 걸까? 얄팍하고 괴팍한 몇 마디 문장과 별점 쪼가리를 짜게 주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는 일부 평론가를 생각해보면 나태한 작가에 심벌을 집어 던질 사람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상식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나마 이름난 몇몇 시상식에선 대규모 자본이 참여하지 않은 작은 영화가 소외되기 일쑤다. 시상식뿐 아니다. 단 몇 개의 멀티플렉스가 배급에 영향을 미치고 기업들은 자본의 논리로 제작 투자를 결정한다. 이를 저지할 시스템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본에 의해 기획된 천만 영화 뒤로 수십 개의 가능성이 관객에 선보일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다. 몇몇 평론가는 영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과 함께 작업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영화 산업의 수직계열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중요한 건 관객의 선택이다. 믿을 만한 평론가도, 극장도 없다면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 영화를 찾아 나서는 수밖에. 그렇지 않다면 늘 같은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똑같은 영화들만 보게 될 테니까. 그 여정의 시작으로 <위플래쉬>만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위플래쉬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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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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