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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암 투병의 고통으로 눈물 마를 날 없는 아멜리아씨.
ⓒ 김혜원

"헤어지기 전날 남편과 애들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필리핀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울었어요. 남편과 애들이 정말 보고 싶어요."

기사 「"나무꾼과 선녀처럼 살고 싶었어요"」의 주인공 브란주엘라 아멜리아(33)씨를 필리핀에서 만났을 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다.

1999년 한국인 신근선(43)씨와 결혼해 승현(6), 승국(2) 두 아들을 두고 있는 그녀는 8번의 항암치료와 유방 절제 수술에 들어가는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차일피일 병을 키우다가 결국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떠나 필리핀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인 남자와 결혼하고 한국 국적의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지만 아멜리아는 의료혜택은 물론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혜택도 받지 못했다. 아멜리아가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않아 외국인신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주노동자나 외국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기관이나 단체, 병원이 있다는 정보를 전혀 접하지 못했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연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로부터 7일만에 1833만원의 성금이 답지한 것은 물론, 아멜리아를 한국으로 데려와 치료받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멜리아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필리핀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울었어요"

▲ 아멜리아가 살고 있는 D지구. 철거민 정착촌인 빈민가로 외부인은 물론 내국인들조차 출입을 꺼린다는 곳이다.
ⓒ 김혜원
11월 5일 오후 3시. 아멜리아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취재진이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들어서인지 아멜리아의 집에는 어머니와 외숙모 이웃 아주머니들 등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멜리아가 살고 있는 곳은 마닐라 공항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카비티 다스마리냐스 인근 철거민 정착촌 D지구(Area D)로 10만 명 가량의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이다. 필리핀인들도 들어가기를 꺼려할 정도라는 이 D지구에는 한 달에 한국 돈 15만원 정도로 5인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극빈층들이 살고 있다.

통역 및 현지안내를 위해 동행한 한인회 총무 양희준씨도 "워낙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대낮에도 강도, 납치, 총기사고 등이 빈번히 일어나는 치안부재지역이라 취재를 위해 근처를 둘러보는 것조차 위험할지 모른다"며 주의를 당부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 곳에 모여있는 이웃들은 위험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먼 정겨운 이웃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취재진의 인사에 아멜리아와 어머니는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아멜리아의 한국어는 간단한 의사소통도 어려울 만큼 아주 서툴렀다. 남편인 신근선씨와의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우리는 아멜리아와의 진솔한 대화를 위해 필리핀어인 따갈로그어에 능통한 현지교민 김지영(24·한국교민회장 김춘섭씨의 딸)씨의 도움을 받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필리핀어인 따갈로그어로 아멜리아와 이야기하고 있는 김지영씨(사진 왼쪽).
ⓒ 김혜원
"혹시 저희가 여기 왜 왔는지 알고 계세요?"
"네, 어제 남편에게 전화로 들었어요. 자세한 건 몰라도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치료도 해주신다고…. 고맙습니다. 승국이 아빠, 야쿠르트 아줌마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커다란 아멜리아의 눈에 금방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힌다.

아멜리아를 돕겠다는 한국 사람들의 관심과 온정이 모여 무료 수술 길이 열리고 1만7000달러 가량의 성금까지 마련됐다는 이야기를 전하니 아멜리아와 이웃들에게서 경탄이 쏟아졌다.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한국에서 치료를 받지 않고 필리핀으로 오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멜리아는 돈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남편 신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해 있는 상태라 아주버님과 형님의 도움으로 병원을 다녔지만 병원에서 제시하는 대로 1년간 여덟 번 항생제 치료를 받고 수술까지 하자니 병원비 마련이 막막했다는 것.

"필리핀에서 승국이를 낳고 1년간 젖을 먹였어요. 그러다가 유방에 이상이 생겼어요. 처음엔 그냥 젖이 뭉쳐서 그런 줄 알고 승국이 아빠한테 말도 하지 않았어요. 좀 더 심해진 뒤에 병원에 갔더니 유방암이라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며 더 이상 젖을 물리지 말라더라구요."

좀 더 정밀한 진단과 치료를 받기 위해 지난 5월 한국으로 돌아온 아멜리아는 결국 엄청난 병원비와 긴 치료기간을 감당할 수 없어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울먹였다.

▲ D지구에 살고있는 필리핀 아이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해맑다.
ⓒ 김혜원
"주변에서 한국국적 취득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가난은 친정인 필리핀에서도 그녀의 생명을 위협했다. 친정 부모님이 돌보아주시는 가운데서 필리핀 국민으로서 의료 혜택을 받으면 한국보다야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왔지만 필리핀의 사정도 딱하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멜리아는 현재 필리핀 국립병원에서 네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으며, 마지막 수술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항생제 치료 덕에 필리핀으로 들어올 당시 심하게 붓고 피고름까지 흐르던 환부는 붓기가 많이 빠져 있었다.

아픈 곳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하니 살짝 옷을 들어 가슴을 보여준다. 아멜리아의 왼쪽 유방은 검붉었는데 오른쪽 가슴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심하게 부어있었다. 유방 위로 불거져 나온 굵은 토란만한 크기의 혹에서는 아직도 이물질이 흐르고 있었다. 통증은 어느 정도냐고 하니 그리 심하지 않다고는 눈에 보이는 모습은 아멜리아가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 아멜리아는 집에서 가내부업으로 매트를 짠다고 한다. 매트 한 장당 가격은 6페소로 지극히 적은 돈이다.
ⓒ 김혜원
필리핀은 한국에 비해 의료비가 저렴하냐고 물으니 아멜리아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항암치료 1회에 6000페소 정도인데 이는 필리핀 사람들의 한달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아멜리아의 거주 지역에서는 이처럼 큰 돈을 들여 항암치료나 수술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큰 병이 생기면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멜리아에게 한국인으로서 생활보호대상자나 의료보호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국적을 취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물었더니 어이없는 답변을 한다. 외국인 아내가 한국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집과 확실한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그런 말을 들었느냐고 물으니 자신보다 먼저 한국인과 결혼해 현재 전남 화순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 아그네스에게 들었단다. 아그네스 역시 한국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받기까지 남모르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아멜리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D지구 내에 살다가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을 한 필리핀 여성만도 수십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아멜리아나 아그네스처럼 잘못된 정보로 인해 더 큰 고생을 하고 있는 듯했다.

▲ 아멜리아 곁에는 따뜻하고 정많은 이웃들이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아멜리아의 행복을 기도한다고 했다.
ⓒ 김혜원
동행한 양희준씨에 따르면 이들 중 70% 정도는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오거나 원만한 결혼생활을 이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사귀는 기간 없이 급하게 결혼하다 보니 문화적 차이와 언어장벽을 극복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는 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하고 문화적 차이도 많이 느꼈지만 한국생활에 대해서 좋았다고 말한다. 시댁 식구나 남편 모두 잘 대해주었을 뿐더러 특히 승현이를 낳았을 때에는 아들이어서 더욱 기뻤다고. 하지만 남편마저도 투병중인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둘 중 하나가 죽으면 애들은 어떻게 하나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멜리아, 우리와 같이 한국으로 가지 않겠어요?

울먹이던 아멜리아에게 한국에서 찍어간 신씨와 두 아들의 동영상을 보여주자, 아멜리아의 얼굴에서는 그리움과 기쁨의 눈물이 더 흘러내렸다. 이웃들도 컴퓨터 앞으로 모여들었다.

"승현이, 승국이…."

승현이 또래의 여자아이가 승현이를 알고 있는지 이름을 부른다. 아마도 승현이가 엄마와 필리핀에 머물고 있을 때 함께 놀던 친구인 모양이다.

▲ 취재진이 가져간 한국가족의 화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아멜리아.
ⓒ 김혜원
"아멜리아, 한국에 가면 병원(이주노동자진료센터)에서 무료로 수술도 받고 완치가 될 때까지 치료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돌아가겠어요?"

취재진은 조심스럽게 미리 준비해간 제안을 아멜리아에게 전했다. 다행히도 아멜리아는 감사하다며 당장이라도 돌아가겠다고 답했다. 다만, 수술 후 자신을 돌봐줄 보호자가 필요하니 친정어머니가 꼭 함께 가길 바란다고. 그렇게 바라던 아멜리아와의 동행 귀국이 결정된 것이다.

▲ 아멜리아 집 안에 걸려있는 신근선씨와 아멜리아의 결혼식 사진.
ⓒ 김혜원
아멜리아에게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돈도 집도 아닌 "한국어 공부와 취업"이라고 말한다. 의사소통이 안 되어 남편과 가족 간에 겪었던 어려움과 외로움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이 나으면 아픈 남편을 대신해 일을 해서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다고 한다.

아멜리아에게 다른 걱정은 후일로 미루고 우선 아픈 몸부터 고치고 보자고 했다. 그리고 건강해지면 많은 분들이 아멜리아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실 것이라 약속했다. 아멜리아는 또 운다.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다.

"여보 그리고 아가들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얼른 치료받고 완치되어 함께 살게 될 거예요. 시어머니 그리고 형님 내외분 정말 고맙습니다. 후원해 주신 한국 국민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매일 매일 불쌍한 저에게 도움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돌아가면 열심히 치료받고 빨리 나아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멜리아와 취재진은 월요일에 아멜리아가 한차례 더 항암치료를 받은 뒤에 빠르면 화요일 경에 귀국할 예정이다. 아멜리아의 어머니는 비자를 발급받는 대로 뒤따라 귀국하기로 했다. 아멜리아가 한국에 들어와 수술을 받고 완치해 남편과 두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취재진과 함께 필리핀 현지취재에 동행하며 많은 도움을 준 도연구님과 필리핀 교민과 다스마리냐스 지부장 김춘섭님, 양희준 총무님, 그리고 따갈로그어 통역에 도움을 준 김지영님께 감사드립니다. 모금을 통해 아멜리아씨의 친정을 돕기로 하신 필리핀 교민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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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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