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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월 31일 유방암을 앓고 있는 필리핀인 아내 아멜리아씨를 본국으로 돌려보낸 뒤, 어려운 살림 때문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신근선씨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그 후 <오마이뉴스> 독자와 네티즌들 사이에 아멜리아씨를 돕자는 성원이 줄을 이어, 오마이뉴스의 '좋은 기사 원고료주기'로 현재까지 1500만원이 답지했습니다. 그런데 아멜리아씨 사연을 제보한 사람이 누구보다 동네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에 눈이 밝은 '야쿠르트 아줌마', 박순녀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박씨의 삶 또한 범상치 않은 데가 있었습니다. 아멜리아씨 사연을 보도한 김혜원 기자가 이번에는 박순녀씨를 만나 그의 진솔하고도 아름다운, 이웃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어서 김혜원 기자를 필리핀으로 급파, 현지에서 아멜리아씨 이야기를 계속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편집자주>
▲ 어려운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치않는 박순녀씨.
ⓒ 오마이뉴스 김호중

[알립니다] 이렇게 돕겠습니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필리핀 아내가 국내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홀로 본국으로 돌아가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남편 신근선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보도되자 신씨를 돕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우선 네티즌 여러분들께서 이 기사에 보내주시는 '좋은기사 원고료'를 전액 신씨 가족에게 보내기로 했음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아주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있거든요. 제가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어 이리 저리 해보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요. 정말 죄송한데요. 기자님께 도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필리핀에 보내놓고 눈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신근선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제보한 분은 성남시 태평동 일대에서 야쿠르트를 배달하고 있는 박순녀(37)씨였다. 자신이 배달을 맡은 구역이 신근선씨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이다 보니, 자연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처음엔 호기심이었어요. 아주 예쁘게 생긴 아기랑 외국인 엄마가 길에서 놀고 있는 걸 오가는 길에 보면서 인사를 하곤 했거든요. 그러다 친해지게 됐지요. 애기엄마(아멜리아씨)가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하러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거든요. 얼마 후에 보니 정말 아이 아빠(신근선씨)가 애들을 데리고 놀고 있더라구요."

신근선씨는 주변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냥 보고 넘어가지 못하는 박씨를 천사라고 부른다.

▲ 엄마가 제보한 신근선 아저씨 기사를 보고 있는 아이들
ⓒ 김혜원
"박 선생님은 천사예요. 제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있는 걸 아시고 시의원까지 만나고. 여기저기 도와주려고 애 많이 쓰셨어요.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들었는데, 뭐라고 말씀 드릴 수 없이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첫 기사가 나간 뒤 신근선씨 가정을 도와주겠다는 네티즌들의 사랑이 속속 답지해 성금으로 쌓여가던 지난 2일, 박씨는 큰 아들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확인했다며 필자에게 전화로 감사의 마음을 알렸다.

"너무 감사해서 어쩌죠. 뭐라 말할 수가 없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박씨는 신근선씨를 돕고자 하는 네티즌들에게 감사와 함께 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감사하기도 하지만 죄송하기도 해요. 마음 아픈 이야기라 보시는 분들이 얼마나 부담이 되셨겠어요. 죄송합니다."

신근선씨 부부에 대한 기사가 네티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제보자인 야쿠르트 아줌마 박씨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져 직접 박씨 집을 찾아가 보았다. 수줍게 말문을 연 박씨, 그의 이웃 사랑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야쿠르트 배달, "수금 안 될 때 가장 힘들어"

▲ 엄마를 닮아 아이들도 밝고 맑다.
ⓒ 김혜원
"고향은 충북 보은이구요. 열대여섯 살쯤 성남으로 올라왔어요. 제가 팔 남매의 넷째거든요. 아래로 남동생만 넷이구요. 성남에 있는 양말공장을 다니면서 번 돈으로 동생 넷을 대학 공부 시켰어요. 정말 어렵게 살았지요. 그러다가 스무살에 결혼을 했어요."

너무 일찍 결혼한 것이 부끄럽다는 듯 박씨는 얼굴을 붉힌다. 이렇게 결혼한 박씨는 건축일을 하는 남편(김운기. 45세) 사이에 고등학교 1학년인 장남 김대성(양영고), 종서(태평중2), 종인(태평중1), 혜수(태평초3) 등 4남매를 두고 있다.

"IMF때 고생 많이 했어요. 남편이 4~5년간 놀고 있었거든요. 그때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살다가 힘들어서 돈도 빌려다 쓰고 그러다가 빚도 지고….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단 나아요(웃음). 남편이 다시 일을 나가고 저도 일을 해서 얼마간 벌고 하니까요."

배달일을 하며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면서도 수금이 안 될 때 가장 난감하다고 한다.

"비싼 야쿠르트 몇 달씩 드시고 몰래 이사 가는 분들이 있거든요. 한 달 내내 고생하고 그런 집이 몇 집 생기면 헛수고예요. 저희가 다 물어야 하거든요. 얼마나 힘이 빠지는지 몰라요. 부탁이니 제발 그러지 말아주세요."

박씨는 남편과 자신이 벌고 있지만 아이들을 위해 한 푼도 써주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 아프다고 한다. 남에게 얻어 쓴 돈을 갚는 일이, 학원비나 간식비 등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하는 돈보다 우선 순위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고등학교부터 초등학교까지 신씨의 네 아이들 중 그 누구도 학원에 다니는 아이는 없다.

"공부는 잘 못해요. 그냥 중간 정도. 큰 아들은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요리학원 보낼 형편은 못 돼서 그냥…. 하지만 우리 혜수는 공부를 잘 해요. 너무 이쁘고 고맙지요. 제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데…."

박씨는 3학년짜리 막내딸이 더욱 예쁘다고 한다. 아들만 셋인 집에 고명딸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배달 일을 마치고 오면 단단해진 엄마 종아리를 밟아 시원하게 풀어 주기도 하고 청소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도 도와준다고 하니 얼마나 착한 딸인가. 그 엄마의 그 딸인 듯, 방학 때면 항상 엄마를 도와 야쿠르트 배달까지 하는 효녀라고 근동에 소문이 자자하다.

▲ 방학때면 엄마와 함께 야쿠르트 배달을 나간다는 막내딸 혜수
ⓒ 김혜원
맘 착한 엄마에, 맘 착한 아이들?

"아침 한 번 차려주지 못했어요. 늘 애들이 챙겨먹고 다니구요. 설거지는 막내가 다 해놓구요. 너무 피곤한 날이었어요. 집에 들어와 보니 큰 아들(대성)이 밥하고 반찬하고 만들어 놓았더라구요. 얼마나 고마운지…. 제가 이래요 애들한테 해주는 것도 없이 일만 시키고…."

착하고 고운 엄마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도 남달라 보인다. 아이들에게 혹시 엄마가 제보해서 도움을 주게 된 신근선 아저씨 기사를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예, 봤어요. 저도 마음이 아파요. 당연히 도와주고 싶지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엄마의 선행을 익히 보아온 터라 이상할 것도 없다는 반응이다. 큰아들 대성이에 의하면 어릴 적 한 번은 엄마가 이웃의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자기들이 푼푼이 모아둔 장학저축을 해약해 전달한 일도 있다고 한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고도 줄줄 우는 눈물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박씨의 아이들도 박씨와 다르지 않다.

"무료 식사권이 생겨서 애들 하고 밥을 먹으러 갔었거든요. 밥을 먹고 나오는데 길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또래의 아이들을 만난 거예요. 그때 대성이가 '아까 그 식사권 우리가 먹지 말고 저 애들이나 줄걸' 그러는 거예요. 아마 저도 마음이 아팠던가봐요."

박씨의 큰 아들 대성이는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해서 청소를 하는 것으로 수업료 면제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것 역시 힘들어 하는 엄마를 돕기 위해 대성이가 생각한 일이라고 하니, 신씨가 어려운 환경 속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것은 이렇게 밝고 착하게 커가고 있는 아이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 일에 상관 말고, 야쿠르트 배달이나 잘하세요?"

자신이 배달하는 지역내 독거노인 5~6분에게 무료로 야쿠르트를 넣어 드리고 있다는 박씨는 배달을 하면서 가슴 아픈 일들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고 한다. 버젓이 공직이나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는데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어머니를 방치하는 자식에겐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넘치는 짓이지만 직접 전화도 해보았다고 한다.

"남의 일에 참견 말라더라구요. 얼마나 화를 내고 끊는지 저도 화가 나더라구요. 참 나쁜 사람들이에요."

박씨는 주변에 안타까운 사연이 너무 많다며 그 걱정 때문에 잠을 못자서 입술이 부르틀 정도란다.

"우리 이웃인데요. 약시로 시력이 좋지 않았던 아이 아빠가 공사장에서 들어간 분진 때문에 아주 시력을 잃었거든요. 그런데 추석 때쯤 그 집 애가 놀이터에서 놀다 팔이 부러진 거예요. 어쩌다 그랬는지 상처로 세균이 감염 되었다더라구요. 그 집도 답답해요. 남편이 시력을 잃어서 일도 못하는데 애는 아프고…."

▲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는 박순녀씨 가족.
ⓒ 김혜원
"희망이 보여 행복해요"

이웃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며칠씩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요즘 세상살이라면, 야쿠르트 아줌마 박씨는 세상을 거슬러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나에게 박씨는 이렇게 말한다.

"남편과 둘이 열심히 벌어서 빚부터 갚아야 해요. 지금도 열심히 갚고 있구요. 딸내미가 자기 방을 달라는데 제가 10년만 기다리라고 했거든요. 열심히 벌어서 빚갚고 나서 넓은 집으로 이사 가야죠. 저는 그래도 요즘이 제일 행복한 거 같아요. 희망이 보이니까요."

이웃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며 눈물이 그렁그렁 했던 박씨의 눈이 희망을 이야기하며 다시 밝아진다. 남의 아픔에 공감함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박씨. 신근선씨 말대로 그녀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야쿠르트 옷을 입은 천사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녀가 밤잠을 못자고 기도하던 대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모든 기적의 시작을 만들어준 박씨. 그녀에게 마음으로부터의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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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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