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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만 보고 결혼... 국내 생활 부적응 부추겨

많은 네티즌들을 안타깝게 한 '뇌졸중 나무꾼, 유방암 선녀' 기사의 신근선씨 부부 사연은 국제결혼을 한 많은 부부들이 겪는 애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국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보에도 어두워 원활한 부부생활을 하기 힘든 제2, 제3의 신씨 부부들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

▲ 아내 아멜리아씨를 필리핀으로 보내고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신근선씨. 신씨 역시 뇌졸중 환자다.
ⓒ 김혜원
신씨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사진만 보고 결혼한' 전형적 '농촌 총각'으로, 지난 1999년 10살 어린 필리핀 여성 아멜리아씨를 아내로 맞았다. 그러나 언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아멜리아씨는 한국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필리핀으로 돌아가려 했다. 아멜리아씨는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도 필리핀을 자주 드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병마까지 이들 부부를 괴롭혔다. 신씨는 뇌졸중에 걸려 반신을 쓰지 못했고, 아멜리아씨에게는 유방암 진단이 내려졌다. 부적응에 병마까지 겹치자 결국 두 부부는 '생이별'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주여성인권연대 김민정 간사는 "국내결혼이주는 알선 업체들의 개입으로 인한 경우가 많아서 얼굴도 안 보고 한국에 들어와 결혼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아멜리아의 경우 남편인 신씨가 잘 대해줘 본국도 오갈 수 있었지만 남편 정보도 모른 채 한국에 왔다가 어쩔 수 없이 함께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2년 동안은 국민 아니다?

국제결혼한 부부의 발목을 잡는 것은 또 있었다. 국적 문제다.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서는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 신씨 부부의 경우에도 남편 신씨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이지만, 국적이 없는 아멜리아의 경우 사회복지 관리카드에도 이름이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관리' 대상에서 아예 빠져 있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는 외국인에 대한 특례조항이 없어 아멜리아는 그동안 사회복지 지원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이에 이주여성인권연대 김민정씨는 "결혼한 지 2년이 지나면 국적을 신청할 수 있지만 국적 취득에는 각 가정마다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라면서 "'국적'이 사회보장의 전제조건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열린우리당 김춘진 의원(전북 고창 부안)실의 유경선 비서관은 "결혼한 이주여성 모두에게 우리 사회가 기본적 생활보장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국제 결혼한 가정 가운데 미성년자의 자녀를 키우는 무국적 외국인에 대해서도 보장을 해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 돕는 단체요? 그런 거 몰랐어요"

소외된 계층에 대한 정보접근 문제도 지적됐다. 외국인 노동자 단체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은 신씨와 아멜리아의 사연을 읽고는 한결같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필리핀으로 떠나지 않고 국내에서도 충분히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소외계층에 대한 '정보차단'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고기복 용인 이주노동자쉼터 대표는 "법무부 등에서 이주 여성에 대한 처우나 인권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고 또 많이 좋아진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이 내용에 대한 전파가 잘 안 된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고 대표는 "외국인 의료지원사업 등은 심지어 사회복지사나 단체 실무자들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 신씨의 아내 아멜리아씨. 한국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 보장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근 필리핀으로 떠났다. 암 치료를 위해 머리를 깎은 모습.
ⓒ 김혜원
신씨 역시 아멜리아씨를 아내로 맞은 이후에 외국인 인권단체의 활동이나 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며, 아내가 암 판정을 받은 이후에는 발만 동동 굴렀다고 한다. 신씨는 "아내가 필리핀으로 떠날 때까지 국내에서 치료를 받거나 지원을 받는 방법은 전혀 없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외국인 이주 여성을 위한 국내 정보가 정작 당사자나 가족들에게까지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지원 민간단체인 한국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 김해성 대표도 "아멜리아의 사연이 조금만 알려졌더라면 국내 단체나 병원이 나서서 할 수 있는 게 많았다"며 안타까워 했다. "국적 취득은 물론 병 치료나 수술까지도 외국인 지원단체의 도움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김 대표는 "정보에 어두워 그냥 주저앉아버렸을 제2, 3의 신씨 부부들이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주여성인권연대 김민정씨는 "이주여성들을 위한 정보 전달 체계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외국인 아내를 둔 대부분 가정이 (신씨 가족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부터 국적 취득, 사회보장 제도 등 이주여성을 위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체류심사과와 법무과에 확인한 결과, 2005년 8월 현재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외국 여성 중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여성의 수는 110개국(무국적 포함), 무려 6만1478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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