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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리에 수를 놓는 소녀의 손가락.
ⓒ 진주

Holy City, Varanasi(성스러운 도시, 바르나시). 지구상의 모든 이를 위한 성지. 마음을 치유하는 사진집이나 아시아의 문화를 보여주는 여러 잡지에서 바라나시(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는 빠지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나 바라나시의 슬럼가인 바그와날라(Baghwanala),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된 직조공의 후예들입니다. 그들의 부모들이 직조공이었고, 이들의 자녀들도 베를 짜거나 사리(Saree, 인도 여성의 민족의상으로 폭 1m, 길이 4~11m의 옷감을 섬세하게 감아서 착용한다)에 수를 놓는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바라나시가 아름다운 사리로 유명한 것도 이들의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기계로 직물을 생산하는 중국계 공장들이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대량생산되는 직물은 수공으로 제작되는 직물에 비해 질이 낮았지만, 가격이 저렴해 훨씬 대중적입니다.

더구나 직조공들이 생산하는 직물은 중간상인들(이른바 '브로커'지요)을 반드시 거쳐야만 시장에 갈 수 있습니다. 이 중간상인들은 직물을 낮은 가격에 사들여 훨씬 많은 이윤을 남기면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굶어죽은 직조공만 4년 동안 43명... 빈곤의 수렁, 필연이 된 아동노동

▲ 직물을 짜고 있는 소년.
ⓒ 진주
아이들의 고운 손으로 한 땀 한 땀 장식돼 완성된 한 장의 사리. 한 벌당 중간상인한테 100인디안루피를 받으면, 그 중 30루피는 장식 재료를 구입하는 데 들어가고 나머지 70루피만 노동의 대가로 지불받습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400~500루피를 주고 사리를 사서 입습니다.

점차 밀려나는 수공업 직조공들은 일자리를 잃고 굶주리게 돼, 아이들이 일해야 합니다. 바라나시의 바그와날라를 비롯해 몇몇 지역에서 굶어 죽어간 직조공만 해도 지난 4년 동안 43명이나 됩니다.

이제 15살인 이크발 아마드(Iqbal Ahmad)도 머지않아 어쩌면 그 사망자 명단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크발은 여동생이랑, 이젠 꼬부랑 할머니가 되신 이모님 두 분과 함께 이 슬럼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빠는 7년 전에 결핵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도 2년 전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이크발은 사리를 파는 상점에서 한 달에 700루피를 받으면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7개월 전 이크발에게도 결핵이 생겨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결핵치료센터는 너무 멀어서 갈 수 없었습니다. 주위의 권유로 이크발은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에 갔습니다. 인도의 공공병원엔 빈곤층만 갈 수 있습니다. 정부가 발급하는 극빈층을 위한 카드(AAY 카드)나 빈곤층을 위한 식량배급카드 중 백색카드(White Ration Card)가 있으면 공공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백색카드가 있으면 접수비로 1루피, 진료비 명목으로 10루피를 지불합니다. 극빈층 카드가 있으면 모든 비용이 면제되는데, 몇 가지 특수한 검사엔 약간의 비용이 청구됩니다.

▲ 사리에 수를 놓는 14세 무슬림 소녀.
ⓒ 진주

멀게만 느껴지는 복지 정책과 계속되는 멸시

이크발은 공공병원에서 검사받고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치료비를 요구했습니다. 이크발에게는 극빈층 카드나 백색카드가 없어서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사가 요구한 건 뒷돈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도 사회의 많은 곳이 부패해 뒷돈으로 움직여지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이 전문가 집단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도의 빈곤이 절대적으로 감소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부패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이크발에겐 노란카드(No. 110099)가 있습니다. 이 카드는 오직 주민증 역할만 하는 ID카드입니다. 식량지원이나 의료보장 등 혜택은 전혀 없습니다. 지난 4월 이크발은 지방정부에 백색카드 발급을 신청했습니다. 정부 담당 직원은 받게 될 거라고 말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공허한 립 서비스가 그들의 업무일까요.

사실 한 공동체 내에서 33명에게만 백색카드를 발급해줍니다. 달리트(Dalits) 공동체처럼 대다수가 극빈층이라면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1998년부터는 세금을 내지 못해 그 빚도 고스란히 이크발에게 돌아와 있는데.

이크발의 삶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아무리 정부의 식량보장 정책이 확산돼도 꼭 발급돼야 할 대상에게 해당 카드가 제대로 발급되지 않는 현실에 부딪히게 됩니다.

설령 해당카드를 소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극심하게 작동하는 인도 사회에서 달리트들이 식량을 구입하러 상점(이른바 공정가격상점, fair-price shop)에 가도 구입을 거부당하는 또 하나의 벽에 부딪히고 마는 게 현실입니다.

<로이터 연합통신>의 조나단 기자와 함께 이 바그와날라 슬럼가를 종일 돌아다녔습니다.

아이들은 외국인들이 신기해보이기도 하고, 뭔가 기대하는 게 있어서인지 우리를 따라왔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슬럼가의 아이들이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아이들이지만, 조나단과 저를 보면서 해맑게 웃었습니다. 사진을 찍어주면 정말 좋아했고, 수줍게 숨기도 했습니다.

삶에 짓눌린 열다섯 소년의 무표정이 두려웠습니다

▲ 야위어 가는 이크발.
ⓒ 진주
하지만 이크발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번도 표정이 변하질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수줍어서 말을 잘 못했지만, 이크발에겐 두려움과 무감각이 침묵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나단이 뭔가 물어보면 무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함께 온 인권단체 사람들은 내게 이크발의 사진을 찍어달라며 이크발에게 상의를 벗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결핵치료를 위해 충분한 영양섭취가 매우 중요하지만, 영양섭취는커녕 한 끼를 해결하기가 어려워 말라가는 이크발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멀찍이 서서 이크발을 보고 있던 저는 사람들의 부탁이 다소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두운 집안, 이크발의 무표정과 바짝 야윈 몸이 저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이크발이 어떤 기분일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크발에게 무료로 진료 받을 수 있는 의사를 소개해주고, 그 후 갠지스 강에 가서 이크발을 위해 꽃잎을 띄워주었습니다.

▲ 딥다안(Deepdaan). 나뭇잎 접시에 꽃을 두르고 촛불을 놓아 갠지스강에 띄우며 소원을 빈다.
ⓒ 진주


달리트와 식량 배급 카드 제도

달리트, 다른 말로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s)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아웃카스트(outcast)로 이야기되는 사람들입니다.

카스트를 이루고 있는 4개의 계급 밖에 있는 사람들로, 이른바 '오염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쉽게 말해 노예와 같은 막노동을 하거나 더러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지요.

1950년대에 사회제도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도 카스트는 폐지됐지만, 실제로는 사회에서 변함없이 존속하고 있으며 차별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식량 배급 카드 제도(Targeted Public Distribution System)는 인도 정부에서 1997년 6월부터 기존의 분배제도를 개선하면서 특히 농촌과 도시 지역의 빈곤한계선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보장해주기 위해 여러 상이한 카드를 발급하는 제도입니다.

이 공공분배정책은 그 대상을 빈곤한계선 이상에서 살아가는 가구(Above Poverty Line, APL, 황색카드, 기름 구입 시에만 혜택), 빈곤한계선 아래에서 살아가는 가구(Below Poverty Line, BPL, 백색카드), 그리고 2000년도부터는 빈곤한계선 이하에서 살아가는 가구에서 가장 극빈층으로 분류했습니다(Antyodaya Anna Yojana, AAY, Extremely Marginalized Grain Scheme, 적색카드).

가장 극빈층에 해당하는 AAY는 계속 증가해 BPL의 38%에 이르고 있으며, 각 가구는 해당카드를 발급받아 지정된 식품가게(fair-price shop)에서 식량을 보급 받도록 돼 있습니다.

태그:#인도, #바라나시, #달리트, #아동노동, #백색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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