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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기자는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의 인턴 자격으로 인도의 빈민 지역(달리트 공동체가 있는 도시 외곽이나 시골 지역, 도시 내 달리트 슬럼가) 현장조사를 위해 5월 12일부터 7월 20일까지 바라나시에 머물렀습니다. 이 기간 동안 기아, 빈곤, 아동노동 현황을 살피고 가장 차별이 극심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을 다녔습니다. <편집자주>
▲ 게루씨와 돼지.
ⓒ 진주

게루씨의 돼지가족은 이 달리트 마을의 유일한 가축이자 재산입니다. 농사 지을 땅도, 별다른 생계수단도 없는 이들은 나뭇잎으로 접시를 만들어 팔거나 벽돌 생산 기간에 땡볕에서 진흙을 이겨 벽돌을 찍어내는 게 생계수단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 돼지가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습니다.

▲ 나뭇잎 접시를 말리고 있는 무사하르 여인.
ⓒ 진주

이 마을의 게루씨가 돼지를 키우게 된 것은 굉장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루씨를 통해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이 돼지 부부는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동산(動産)입니다. 하루하루 굶지 않고 살아가는 게 우선인 이들이 돼지를 얻은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돼지 부부는, 게루씨 가족이 기나긴 노동 끝에 얻어낸 것입니다. 게루씨를 비롯한 삼형제는 벽돌업체에서 오랫동안 예속노동을 했습니다. 양식을 살 돈이 없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빚이라도 져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달리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벽돌 생산업자나 마을의 안면 있는 상층카스트들에게 돈을 빌리는데, 호의적인 상층카스트들의 경우 이자 없이 빌려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상당한 이자를 물립니다.

달리트 마을에 처음 들어온 동산(動産), 돼지 부부

▲ 죽어버린 엄마 돼지.
ⓒ 진주
게루씨의 삼형제 중 맏형인 보투씨는 바라나시에서 이러한 예속노동의 문제를 처음으로 말하기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속노동금지법령이 있을 만큼 이 문제는 그 역사가 길며 인도 사회에서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오랜 카스트제도 속에 그 뿌리를 깊게 내린 이 노동형태는 너무나도 당연시된 폭력의 한 형태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드러내놓고 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그 생각을 말로 표현할 때,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더 큰 폭력과 멸시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투씨는 벽돌 생산 현장에서 일어나는 예속노동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둘째인 게루씨는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임금 지불 방식은 업주 마음대로이고, 불만을 토로하거나 그만두기를 원하면 때리고 협박해 말 그대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것에 맞섰습니다.

예속노동금지법령에 따라 이 노동이 예속노동으로 인정되면 중앙정부로부터 2만루피(약 46만원)를 보상받습니다. 게루씨는 오랜 싸움 끝에 보상금 2만루피를 받아 그 중 5천루피(약11만5천원)로 한 쌍의 돼지를 산 것입니다.

생존권 걸고 싸워 얻었건만... 속절없이 죽어간 엄마 돼지

지난 일 년 동안 돼지 부부는 잘 자라주었습니다. 올 여름엔 처음으로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았습니다. 엄마 돼지는 평생 적어도 네 차례 새끼를 낳을 수 있다며 게루씨는 엄마 돼지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러던 엄마 돼지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돼지를 전문적으로 키웠던 것도 아닌 터라 아픈 원인도 모른 채 엄마돼지를 데리고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병원엔 의사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 돼지는 죽고 말았습니다.

▲ 엄마를 잃은 새끼 돼지들.
ⓒ 진주

▲ 죽은 엄마돼지를 마을 입구에 묻고 있는 사람들.
ⓒ 진주

태어난 뒤 한 달 동안 새끼돼지에게 여덟 번 정도 보릿가루, 설탕, 물을 먹이는데 이틀에 32루피가 듭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돼지들이 커 가면 하루에 25루피의 비용이 듭니다. 돼지들이 성장하면서 이젠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합니다. 돈이 없는 게루씨는 나중에 갚아나갈 생각으로 상점에서 우선 사료용 곡물을 가져다 먹이고 있습니다.

게루씨가 달리트 공동체에 돌아와 돼지를 돌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벽돌 생산업자에게 빚이 있던 게루씨는 지난해부터 그 빚을 갚아나가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벽돌을 찍어내는 일을 했습니다.

인도에서도 바라나시의 여름은 가장 덥기로 유명합니다. 섭씨 40도를 넘어가는 것은 기본이고, 대개 45도에 이릅니다. 가장 더울 때는 50도까지 올라갑니다. 이 지독스런 땡볕 아래에서 게루씨는 무던히도 벽돌을 찍어냅니다. 아내와 아들도 함께 벽돌을 찍어내고, 어린 막내딸은 그 옆에서 진흙을 가지고 놉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열심히 찍다가 점심이 되면 아내와 함께 짜파티(보릿가루 반죽으로 만든 둥글넓적한 떡)와 야채볶음을 준비합니다. 벽돌 만드는 곳 옆에 임시로 지은 진흙집 앞에 불을 지폈기에 이들은 땀을 뻘뻘 흘립니다.

▲ 벽돌을 찍어내고 있는 게루씨 가족들.
ⓒ 진주

▲ 아내와 함께 점심을 준비하는 게루씨.
ⓒ 진주

▲ 게루씨네 가족의 한 끼 식사.
ⓒ 진주

▲ 벽돌로 임시로 만든 집.
ⓒ 진주

달리트도 기피하는 고된 노동, 벽돌 만들기... 벗어나고는 싶지만

뜨거운 볕과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지불했던 것입니다. 게루씨처럼 아내와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남편의 모습은 인도 사회에서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게루씨는 점심을 먹은 후 어린 딸과 함께 놀아주면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다시 해가 질 때까지만 일을 합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서는 해가 지면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해가 있는 동안 할당량을 끝내야 합니다.

가족 3명이 하루에 찍어내는 벽돌은 평균 1300장 정도 됩니다. 벽돌 1000장 당 160~170루피(3700~3900원 정도)를 받는 게 일반적이지만 게루씨는 업주에게 빚이 있는 관계로 140~150루피(3200~3400원)를 받습니다. 이자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게루씨는 몬순 전까지만 일하고 싶었습니다. 벽돌을 만드는 일은 달리트들이 하는 일 가운데에서도 가장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입니다. 너무도 힘겨운 노동이지만 노동의 대가가 아주 적기 때문입니다.

게루씨는 돼지도 있으니, 어서 빨리 마을로 돌아가 돼지를 보살피며 마을 사람들과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빚만 없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일이 벽돌 일입니다. 그러나 먹고 살 길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그만두기도 쉽지 않습니다. 업주가 임금을 제대로만 계산해준다면 올 몬순이 끝나고 다시 시작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업주는 게루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몬순이 시작되기 전, 게루씨는 돼지 부부에게 희망을 걸고 마을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6살 때 시작된 중노동의 굴레,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기만 하는 삶

열여덟 살에 결혼하고 난 뒤 벽돌을 찍어내는 일을 시작했으니, 게루씨가 이 일을 한 것도 벌써 한 20년 되었습니다. 6살 때부터 상층카스트인 브라민의 집에서 가축을 돌보는 일로 시작된 게루씨의 노동의 삶은 그 뒤 릭샤(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력거, 현재는 자전거를 개량한 사이클릭샤와 소형 엔진을 장착한 오토릭샤가 대부분이다) 끌기, 과수원에서 일하기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처음 9년 동안 한 브라민의 집에서 가축을 돌보는 일을 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받은 돈은 처음에 20루피였다가 가장 많이 받았던 때가 100루피였습니다. 게루씨는 좀 더 돈을 많이 벌어보려고 하루 60루피 벌이로 릭샤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형의 아픈 딸을 위해 릭샤를 팔아 약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벽돌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여러 벽돌 생산 업체를 돌면서 일해야 했습니다. 어떤 벽돌 생산업자의 경우 사람은 좋았지만 일이 잘 되지 않았고, 어떤 업주는 임금은 그런대로 지불해주었지만 욕을 너무 심하게 하고 사람대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벽돌을 만들 때 1000장을 만들면 36루피를 임금으로 받았고, 매주 식비로 80루피를 받았습니다. 당시 40루피면 일주일 동안 잘 먹고 놀 수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300루피로 일주일 동안 먹고 살기가 정말 어려워요. 옛날엔 돈을 벌어 고기도 사고 생활에 필요한 다른 것들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불가능해요."

▲ 무사하르 공동체에 있는 게루씨 집.
ⓒ 진주

많은 달리트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게루씨처럼 말합니다. 옛날엔 더 잘 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더 많이 벌긴 하지만 물가가 훨씬 높아서 살 수 있는 양이 너무 적다고. 이들의 생활환경과 삶의 질은 얼마나 변화된 것일까요.

게루씨의 집은 예나 지금이나 진흙집이고, 할아버지 이전 때부터 살았던 그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가진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없습니다. 벽돌 생산 임금은 과거에 비해 겨우 4~5배 올랐지만, 생활비로는 예전의 10배 이상의 비용을 들여야 합니다. 정부 정책의 절반 이상은 부패가 좀먹고 있고,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 갈 여력이 없습니다.

이들에게 발전이란 무엇인가

발전은 어디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요. 누구의 삶은 나아지고 있는데, 누구의 삶은 더 하락하고 있는 것일까요. 인도는 신이 선택한 나라였고, 인도의 민족적 영웅인 간디는 이 달리트들을 하리잔(신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의 첫째 아들이 브라만이라면, 서자격인 달리트를 적자격 막내아들로 격상시켜 부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간디는 카스트 제도를 불멸의 신의 제도로 정착시키면서 달리트들을 신의 정식 아들로 인정하길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 힌두어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있는 게루씨.
ⓒ 진주
올해는 인도가 독립한지 60년이 된 해로 8월 15일이 독립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달리트들은 인도에 식민지 역사가 있었는지, 인도가 언제 독립했는지도 모릅니다. 민족적 영웅인 간디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사회가 이들에게 사회구성원으로서, 국가가 이들에게 국민으로서 기본적인 조건조차 형성해주지 않으니, 달리트들이 자신을 인도인으로 생각할 근거가 없습니다.

게루씨는 아내 돼지가 죽고 난 뒤 아프기 시작한 돼지 아빠도 얼마 전에 팔았습니다. 게루씨는 마을사람들과 힌두어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아 있는 건 6마리 돼지뿐이고 돈을 어찌 구할지 아직 막막하지만, 그에겐 바르게 살고 싶은 바람이 절실합니다. 가능하면 빚을 지지 않고, 가족들을 지키면서, 새끼돼지들에게 희망을 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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