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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양부족으로 한쪽 눈을 잃은 물라얌.
ⓒ 진주

처음엔 아이의 눈동자에 파리가 앉아있는 줄 알았습니다. 뜨거운 여름, 인도의 구석구석에는 파리들이 무진장 많아서 길거리에서 무엇을 하든 파리가 몸에 들러붙곤 합니다. 특히 달리트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들어가면 모든 아이들의 얼굴과 온몸에 파리들이 기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아이도 그러려니 생각했습니다.

영양부족으로 말라가는 아이들에겐 그나마 파리를 쫓아낼 힘도 없습니다. 파리 수만큼 인도 사회의 부패지수가 높지 않을까 상상한 적도 있습니다. 파리 수가 줄어들 때, 그만큼 부패도 줄어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 아이, 물라얌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파리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들끓는 파리였으면 훨씬 나았을 것을. 5살의 물라얌은 영양부족으로 왼쪽 눈이 감염되었고, 그 감염의 상처가 아이의 눈동자에 그대로 달라붙어 있었던 겁니다. 물라얌의 표정은 아이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오른쪽 눈도 점점 감염되어 언제 보이지 않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차라리 파리의 흔적이었으면...

▲ 물라얌과 엄마. 물라얌의 초가흙집 앞에서.
ⓒ 진주
물라얌이 살고 있는 곳은 바라나시 핀드라 마을의 라이타라 구역입니다. 물라얌은 이곳에서 무사하르('쥐를 잡아먹는 사람'이란 뜻으로 달리트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층의 하나) 달리트로 태어났습니다.

마을 이장의 논밭에서 일하는 물라얌의 부모님은 하루에 겨우 50루피(한화 약 1140원)를 벌고 있습니다. 그것도 고정적으로 일당을 받는 게 아니라 이장이 마음 내킬 때 주는 대로 받아야 합니다.

물라얌의 아버지인 사지반씨가 임금을 요구할 때, 이장은 때려죽이겠다고 곧잘 협박하곤 했습니다. 그 돈으로 하루에 겨우 한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마을의 달리트들은 사지반씨처럼 논밭에서 농노처럼 일하거나 대나무나 짚을 말려 바구니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사하르 가족 스물일곱 가구가 살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은 식량 부족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식량배급카드를 발급받지 못했으며, 카드가 있는 몇몇도 그나마 충분한 식량을 배급받지 못합니다.

공식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빈곤층을 위해 2000년부터 발급된 적색카드는 꾸준히 증가해왔습니다.

적색카드가 있으면 보리는 1㎏당 2루피에 구매할 수 있고, 쌀은 1㎏당 3루피에 구매할 수 있으며, 매달 25㎏까지 지원하던 곡물량도 2002년부터는 35㎏으로 증가되었습니다.

카드 발급 수도 2004년에는 빈곤한계선 이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23%에 해당되었지만, 2005년에는 38%로 증가했습니다.

38%라는 수치는 비율로 보면 아주 낮은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는 약 2500만 명에 해당되는 것으로, 빈곤한계선 이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수치와 현실보다 낮게 측정하는 정부 통계의 경향을 감안한다면, 혜택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으며 바로 이들이 인도 사회의 높은 사망률의 뿌리가 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부의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현실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도 미약합니다.

▲ 말린 짚으로 바구니를 엮고 있는 달리트. 아이는 낫이 위험한지도 모른 채 놀고 있다.
ⓒ 진주

▲ 말라가는 무하사르 아이들.
ⓒ 진주

부족한 식량, 불충분한 의료, 죽어가는 아이들

곡물을 파는 상점의 가장 큰 문제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과 정량대로 보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핀드라 마을의 달리트들에게도 이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 마을 대부분의 달리트들에게 카드가 없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이지만, 상점은 마을에서 2㎞나 떨어져 있어 교통이 매우 불편합니다. 먹을거리를 구할 돈도 부족한 상황에서 땡볕 아래 먼 길을 힘들게 걸어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 게 도착한 상점 관리자는 정량보다 무게를 적게 배급합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곡물을 다른 곳에 팔아넘기는 겁니다.

식량배급카드를 통한 또 다른 혜택인 의료보장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5살에 체중이 겨우 10㎏밖에 나가지 않는 물라얌은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공공보건소에 갔습니다. 담당의는 물라얌이 영양부족 3단계에 해당한다며 즉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공보건소는 의약품도 부족하고 입원시설도 부족해 물라얌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공공보건소도 마을에서 늘 먼 거리에 있어, 우선 급하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많은 이들은 돈이 들더라도 가까운 사설병원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정책이든 시설이든 존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현실 상황에 맞게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겁니다. 국가의 정책과 통계는 어두운 현실을 가리고 있는 그럴 듯한 변명에 불과할 수 있음을 깨닫는 데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죽음이 필요한 걸까요.

이 무사하르 마을에서 지난 몇 달 동안 3명의 아이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아이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 고통스럽게 손짓하는 물라얌.
ⓒ 진주
의료공무원인 간호보조사는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해 아이들과 어머니들의 건강을 체크해야 하지만, 지난 6년 동안 딱 한 번만 이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소아마비 예방 캠페인을 할 때 대외선전용으로 한 번 방문한 것입니다.

성지의 도시 바라나시에는 이렇게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습니다. 머지않아 IT 강국이 될지도 모르는 인도 사회는 부패와 무관심으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인도의 인구가 지상에서 두 번째로 많다고 해서, 어느 누가 굶어가는 이 아이들에게 맬서스의 <인구론>을 들이대며 매우 합리적인 자연법칙이며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라얌이 눈앞에 있는 누군가의 얼굴을 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꾸 나를 향해 어두운 눈빛으로 손짓을 했습니다. '배도 고픈데, 파리와 부패가 들끓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데' 하는 눈빛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께 마을을 방문한 인도변호사 비조(Bijo Francis)씨가 마을 사람들과 한 인터뷰에서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태그:#달리트, #무사하르, #인도 바라나시, #식량배급카드,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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