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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기자는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의 인턴 자격으로 인도의 빈민 지역(달리트 공동체가 있는 도시 외곽이나 시골 지역, 도시 내 달리트 슬럼가) 현장조사를 위해 5월 12일부터 7월 20일까지 바라나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기아, 빈곤, 아동노동 현황을 살피고 가장 차별이 극심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을 다녔습니다. <편집자주>
▲ 인권단체 사무실 앞에 모여 있는 이주노동자 가족들.
ⓒ 진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라나시의 한 민간 인권단체(PVCHR, 인권감시위원회)에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이른 아침, 보따리를 이고 지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사무실의 작은 앞마당에 그저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19명의 남자들, 17명의 여성들, 그리고 아이들은 28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무실의 한 직원은 이들을 위해 성명서를 작성했습니다. 직원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기입한 뒤 그 옆에 본인 지문을 날인하게 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쓸 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 무슬림인 이들은 서벵골주에서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바라나시로 온 이주노동자들입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대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에서 온 3세계 노동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나라 인도에서는 자신의 고향과 주거지를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대표적인 이주노동자들입니다. 몬순 시기엔 거의 대부분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일자리가 있는 특정 시기 동안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 일을 마친 뒤 몬순이 시작되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들은 2006년 11월부터 2007년 5월까지 바라나시의 볼라 벽돌생산업체(Bhola Brick Kiln)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두 100만 루피(한화 약 2275만원)나 되는 임금이 체불되었습니다. 체불된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 함께 모여 고소장을 작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벽돌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들과 같이 이주노동자들이거나 달리트들입니다. 부유층의 집이나 새로 지어진 근대적인 집들은 그 재료와 형태가 상이하지만, 바라나시의 집이나 건물의 대부분은 벽돌로 지어져있다는 걸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최하층 달리트 마을의 집들은 그저 물에 진흙을 이겨 만들어져 있습니다.

선지급 굴레에 묶인 예속노동자

벽돌이 생산되는 과정은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언제나 돈이 없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달리트들은 벽돌 생산업자가 제공하는 선지급 임금을 거부하지 못합니다. 벽돌 생산업자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달리트들에게 임금을 선지급합니다. 한 사람당 1천~2천 루피(한화 약 2만2750원~4만5500원) 정도 미리 지급해 생계를 유지하게 한 뒤, 축제가 끝난 10월이나 11월에 벽돌을 생산할 시기가 되면 이들을 불러 모아 벽돌을 생산하게 합니다.

예속노동(bonded labour). 21세기 인도 사전에 있는 이 단어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말 중 하나일 것입니다. 강제노동도 아닌 이 노동방식은 선지급된 돈 때문에 노동자들이 정해진 노동에 묶여 일이 끝날 때까지 꼼짝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돈을 받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미리 지급된 돈을 받는 건 개인의 선택 아니냐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와 다릅니다. 이는 카스트제도가 낳은 구조적인 실업과 빈곤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돈을 받아 먹을거리를 사든지 아니면 굶든지, 삶을 연명하는 방식은 둘 중 하나입니다.

벽돌을 만드는 노동일은 달리트 사회에서도 가장 피하고 싶은 노동입니다. 어느 달리트에게 물어보아도 벽돌 생산일을 하는 달리트 공동체들이 가장 열악하다고 말합니다.

벽돌 생산일을 하는 이들은 황량한 사막 같은 곳에 먼저 가족들이 몇 달 동안 함께 지낼 만한 작은 흙집을 만듭니다. 노동력이 있는 모든 가족 구성원은 섭씨 45도를 넘어가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최대한 많이 벽돌을 만들어야 합니다.

볼라 벽돌 생산업자는 노동자들이 거주할 공간으로 생산현장 근처에 짚으로 만든 헛간을 제공했습니다. 짚으로 만들었으니 비가 오면 어떨지 상상이 됩니다. 그리고 1000장의 벽돌을 만들면 지불되는 급여는 160~170루피(한화 약 3640~3825원) 정도 됩니다. 3~4인의 가족은 하루에 1000~1500장의 벽돌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지급받는 돈은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토요일 300~500루피(한화 약 6825~1만1375원)였습니다. 온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을거리를 사고 나면 이 돈은 동납니다.

▲ 관할 관청을 찾아가 임금 체불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이주노동자들. 이들은 지역의 행정치안장관을 찾아갔으나 바로 만나지 못하고 2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 진주

헛간에 살며 종일 일해도 기아선상... 그나마도 체불 일쑤

1970~80년대 노동 상황이 매우 열악했던 한국 사회에서 많은 생산업자들이나 공장주들은 특히 어린 노동자들에게 용돈이나 주고 남은 돈은 자신이 관리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속적으로 체불했습니다. 현재 인도의 이 노동자들도 과거 우리 노동자들처럼 굶지 않을 만큼의 돈만 지불받을 뿐입니다. 나머지 급여는 몬순이 시작되기 전 노동이 끝날 때까지 자본가의 손에 있습니다.

7개월에 걸친 노동이 끝난 뒤, 서벵골의 이주노동자들은 업주에게 임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업주는 체불된 임금을 주기는커녕 그들을 폭력으로 대했습니다. 이들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지역 관할 경찰서에 임금 지불을 요청하는 고발장을 낸 뒤, 지역의 행정치안장관(District Magistrate)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관할 담당자인 부행정치안장관(Sub-District Magistrate, SDM)은 자리에 없었습니다. 2시간 넘게 땅바닥에 주저앉아 기다린 끝에 담당자가 왔습니다. 이들에겐 법적 절차 따위도 없습니다. 주저앉은 채로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관할 담당자는 경찰서에 고발장이 접수된 후 소환된 업주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업주는 현재 돈이 없어서 노동자들에게 2주를 기다려달라고 요구했으며, 2주 후에 임금을 지불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업주에겐 2주라는 기간이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 이들 이주노동자 가족들에게 2주는 결코 만만치 않은 기간입니다. 어디서 거주하고 무엇을 먹고 살지 막막한 이 시간은 이틀이든, 2주든, 2년이든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당장 갈 길이 먼 서벵골주의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인권단체 사람들은 목청을 높여가며 싸웠습니다. 오늘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이들에겐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관할 직원의 강한 요구에 따라 업주는 회계직원을 시켜 돈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돈이 없다는 말도, 2주라는 기간도 체불된 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악랄한 수법에 불과했습니다.

현실과 거리가 먼 예속노동법

▲ 고향을 향해 떠나는 서벵골주의 이주노동자들.
ⓒ 진주
이러한 노동자들의 존재 때문에 인도에는 관련 법령인 예속노동법(bonded labour act)이 있습니다.

이 법령을 적용해, 노동자들이 예속노동을 한 것으로 입증되면 업주들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명령에 따라 체불된 임금과 함께 노동자 한 명당 벌금으로 2만 루피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법률에 따라 법적 절차를 밟게 되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 법령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도 무리수가 큰 일입니다.

일반노동법을 적용해 SDM에게 사건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업주에게 체불된 임금을 즉각 지불하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서벵골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오랜 노동의 힘겨움과 언제나 되풀이되는 싸움을 어깨에 짊어지고 고향을 향해 떠났습니다. 언제 또 오게 될지, 또다시 싸워야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태그:#인도, #바라나시, #예속노동, #임금 체불, #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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