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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잎으로 접시를 만들어 파는 무사하르 여성들.
ⓒ 진주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힌두교에서 비롯된 것으로 4개의 계급 즉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로 이뤄져 있고, 이 카스트에 속하지 못하는 천한 출신의 사람들이 '달리트'라고 배운 기억이 납니다.

힌두어로 말하면 위의 4계급은 '바르나(Varna)'라고 하고, 바르나를 구성하는 각 계급은 수많은 '자티(Jati 혹은 Jat)'들로 분할됩니다. 이 자티는 성과 직업에 따라 구별됩니다. 인도인들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의 성을 보면 출신을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직업에 따라 이 계급들이 분할돼 있지만, 인도가 독립을 이루고 자본주의 경제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상인 출신인 바이샤가 자본주의 경제세력에 동참하게 됐다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빈부격차가 심해짐에 따라 빈곤층이 더 두터워지고, 기존에 달리트에 속했던 자티들은 물론 수드라에 속하는 자티들이 더욱 비천한 삶으로 몰락하면서 빈곤층인 달리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제도는 사라졌지만 현실에선 여전한 차별

▲ 모여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무사하르 공동체 사람들.
ⓒ 진주
힌두 교리에 따라 태생적으로 신에 의해 주어진 신성한 의무와 권리 안에서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총체적인 사회시스템이 바로 카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5년 제도적으로 불가촉천민인 달리트에 대한 차별이 금지됐지만(The Untouchablility Act, 1955), 카스트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고 달리트에 대한 차별도 현실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4계급으로 이뤄진 바르나와 그 하위 카스트들인 자티들은 인도 사회가 조금씩 근대화하고 독립이 이뤄지면서 상층카스트, 후진카스트(OBC, Other Backward Caste), 그리고 지정카스트(Scheduled Caste)로 변화했습니다. 상층카스트를 중심으로 하여, 달리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지정카스트-지정종족 법령을 제정하면서 달리트를 공식적으로 지정카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지정카스트보다는 상층에 속하지만 사회적으로 비교적 악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후진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태생적으로 주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사회·경제·교육 여건에 따라 이 카스트에 속하게 됩니다. 이 후진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환경은 한 10여 가지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카스트에 기반을 둔 대부분의 인도 마을들은 세 공간으로 분할돼 있습니다. 마을 중앙에는 상층카스트들이 살고 있고, 그 주위에 후진카스트들의 공동체가 있으며, 마을 주변 구석구석 몇 군데에 지정카스트인 달리트 공동체가 형성돼 있습니다.

마을 주변이나 구석에 있는 달리트 공동체 사람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어갔다간 상층카스트들에게 얻어맞으니까요. 얻어맞는 것뿐인가요. 삶의 기반이 뿌리째 뽑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명마저도.

마음 놓고 물고기 잡을 권리도 없는 달리트

▲ 베차씨.
ⓒ 진주
바라나시의 북쪽 교외에 리푸르(Dallipur)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도 역시 세 카스트에 따라 공간이 분할돼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상층카스트 사람들도 아닌 후진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달리트 공동체 사람들이 사는 곳에 와서 한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마을의 달리트들은 무사하르(Musahar) 공동체입니다. 즉 그들의 성은 무사하르며, 성이 무사하르인 사람들은 달리트에 속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베차(Bechah·45)씨는 대여섯 명과 함께 마을 가운데쯤 있는 연못에 낚시하러 갔습니다.

연못 왼쪽에는 무사하르 공동체 사람들이 살고 있고, 연못 오른쪽에는 파텔(Patel)이라는 후진카스트 공동체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베차씨는 상층카스트 집에서 여러 가지 집안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한창 고기를 낚고 있을 때, 갑자기 후진카스트 공동체 사람들이 와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파텔 공동체 사람들이 무사하르 사람들은 이 연못에 올 수 없다며 폭행한 것입니다.

흠씬 두들겨 맞고 무사하르 사람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베차씨의 집은 이미 불에 타 재가 돼버린 상태였습니다.

베차씨 딸의 혼례가 코앞에 다가왔을 때였습니다. 집안에는 딸의 혼례비용인 8000루피가 있었는데, 옷가지들이랑 부엌살림이랑 보리 낱알들이 몽땅 타버렸습니다. 흙으로 벽을 만들고 짚으로 지붕을 만든 집에서 지붕은 사라지고 그 대신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무사하르 사람들이 연못에서 고기 잡다 폭행당한 상황을 고발하러 경찰서에 갔을 때, 파텔 공동체에 속한 대여섯 명이 무사하르 공동체 사람들이 사는 곳에 와서 베차씨네 집을 불태워버린 것입니다. 곧 결혼할 베차씨의 딸에겐 돌을 던져 다리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여름 기온은 이미 45℃를 넘나들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 햇볕을 피할지, 어디에 몸이라도 누일지.

불안감에 사로잡혀 약자 괴롭히는 후진카스트 사람들

▲ 집이 타버린 자리. 바닥에는 보리 낱알만 뒹굴고 있다.
ⓒ 진주
경찰서에 잠시 구금돼 있던 파텔 공동체 사람들은 며칠 후 풀려났습니다. 베차씨네 집에 불을 지른 것도, 불에 탄 돈이랑 잡동사니들도, 재와 함께 묻히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달리트 사람들이 경찰서에 다시 가도, 불지른 파텔공동체 사람들을 찾아가도, 돌아오는 건 그 몇 배에 이르는 폭력과 멸시뿐입니다. 물고기 몇 마리 잡은 대가로 집이 몽땅 타버린 것처럼.

베차씨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을 떠나려할 때, 후진카스트인 파텔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왔습니다. 한 무리의 여성들이 우리 옷자락을 붙잡았습니다. 그 여성들은 참 당당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마을 연못이 법적으로는 어느 한 개인에게 혹은 어느 한 공동체에 속한 것도 아니었지만 상층카스트가 연못을 오랫동안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상층카스트들에겐 모든 자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누릴 사회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후진카스트 공동체 사람들은 상층카스트들이 이 연못에서 고기를 잡을 때 도와주면서 고기를 얻곤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누리고 있는 영역을 무사하르 공동체와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후진카스트 공동체의 한 여성이 말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그 연못 근처에서 곡물을 기르고 있었던 것은 우리입니다. 오래 전부터 그 연못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도 상층카스트들과 우리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무사하르 사람들이 와서 고기를 잡겠다는 것인가요? 그 연못은 무사하르 사람들 게 아니에요. 무사하르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불태우고 나서 경찰서에 신고했어요. 인도 정부가 달리트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고 있고 좋은 일을 해주고 있는데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오래 전부터 연못이 그 곳에 있었다는 그녀의 말처럼,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카스트는 존재해 왔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들은 신성한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진카스트로 불리며 사회에서 퇴보하고 있는 이들은, 어쩌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한편으로 상층카스트를 대신해 달리트를 폭행하고 차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자신들이 더 차별받는 존재로 몰락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녀의 말처럼, 달리트에게 정부는 그 차별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몇 가지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그나마 이 정책들이 현실화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명목상의 정책들은 실행조차 제대로 되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간계급인 후진카스트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이 불안정해질 거라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오래됐다는 이유로 연못의 물고기조차 공유할 수 없게 말입니다.

▲ 후진카스트(OBC) 공동체 사람들.
ⓒ 진주

▲ 무사하르 공동체 사람들.
ⓒ 진주

태그:#달리트, #인도, #후진카스트, #지정카스트,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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