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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가방속엔 이런 기기들이 항상 구비되어 있다. 좌측부터 MP플레이어, PDA폰, UMPC이다.
▲ 생활속의 디지털 나의 작은 가방속엔 이런 기기들이 항상 구비되어 있다. 좌측부터 MP플레이어, PDA폰, UMPC이다.
ⓒ 신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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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풍경을 잠깐 떠올려보자. 지하철 안 옆 좌석 사람의 이어폰에서 작게 들려오는 MP3 음악소리, 버스 안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PMP로 보는 영어 동강(동영상 강의)화면과 DMB화면, 인터넷이 지원되는 휴대폰으로 신문을 보는 사람들.

영화 <백투더퓨처>에서나 나올 법한 미래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이다.

IT회사에 근무하는 나 역시 이런 풍경에서 벗어날 순 없다. 컴퓨터 사용은 일상이며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은 이보다 더 다양할 터. 때로는 온갖 디지털 기기들을 안고 있는 나를 보면서, 전형적 '디지털세대'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 잠이 들기까지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디지털 기기들을 만지고 느끼며 반응하는 것일까. 특별할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 보자.

[출근길] 휴대폰 없인 일어날 수 없어!

휴대폰 하나면 언제 어디에서든 인터넷을 접할 수 있다. PC는 없어도 된다.
▲ 손안의 인터넷 휴대폰 하나면 언제 어디에서든 인터넷을 접할 수 있다. PC는 없어도 된다.
ⓒ 신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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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20분, 휴대폰으로 맞춰놓은 알람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간혹 듣지 못하는 사고가 생길 뿐이다). 정확한 시간에 미리 설정해놓은 노래가 흥겹게 흘러나온다. 이동통신 기지국에서 보내오는 시간은 너무나 정확하기 때문이다. 배터리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출근 시간 걱정은 휴대폰에게 맡긴다.

부랴부랴 출근 준비가 끝나면 책상 위에서 충전을 마친 MP3플레이어를 집어든다. 출근길에 5년 전 인기가요부터 원더걸스의 최신곡까지 원하는 곡을 그 날의 날씨에 따라 골라 듣는다. 비가 오면 김광석이나 부활을 찾고, 쨍쨍한 날이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를 찾는 식이다(아주 간혹 외국어 강의를 들을 때도 있으나 솔직히 10분 이상 들으면 지겹다).

전철역 입구엔 온갖 무가지 신문이 즐비하다. 나 역시 신문 하나를 챙겨들고 전철에 오른다. 뉴스가 목적이 아니라 어느 신문에나 있는 '오늘의 외국어'를 보기 위함이다. 전자사전을 꺼내 그날 나온 단어의 발음을 듣고, 전자연습장에 기록해 둔다. 내가 사용하는 PDA에 전자사전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전자사전으로 사용한다. 오늘 밤이면 새로 배운 이 단어는 기억에서 지워질 것이 뻔하기에 전자사전에 기록하는 것은 필수다.

이 작업까지 마쳤으면 PDA(정확히는 휴대폰 겸용 'PDA폰')로 그날 최신 뉴스를 인터넷으로 확인한다. 무가지 신문보다 정보가 빠르다. 최신 속보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40~50분 걸리는 출근 거리를 이동한다.

[회사] 컴퓨터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뭐니?

앞에서 밝혔듯 나는 IT회사에 근무한다. 컴퓨터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 것도 없다. 간혹 사무실 형광등이 나가면 교체나 할까, 그 외엔 컴퓨터는 내 몸과 다를 게 없다. 모든 일은 컴퓨터로 처리하고 직원들과의 간단한 소통마저도 메신저로 해결한다.

많지 않은 회의, 노트북과 PDA는 필수다. 필요한 자료는 노트북에서 찾아 보고하고, 간단한 메모는 워드 프로그램 하나 실행해 놓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긴다. 펜과 종이가 필요한 메모라면 간단하게 PDA 메모장을 실행해 화면에 그리면 그만이다.

급여가 들어오는 날이면 내 PC는 잠깐 동안 은행으로 변한다. 휴대용 USB메모리에 담긴 공인인증서를 컴퓨터에 꽂고 보험료·카드값·친목회비 이체하느라 바쁘다. 은행은 ATM에서 현금을 찾는 업무 외엔 언제 방문했는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 대학교 때 삼촌에게 들었던 모 은행 동대문지점의 참하고 아리따운 창구 여직원과의 슬픈 로맨스는 디지털 세상에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잠깐의 휴식시간에는 동료의 휴대용 게임기를 빌려 게임을 한다. PSP·NDSL(닌텐도) 등 다양하다. 게임은 좋아하지만 휴대용 게임기까지 구입하면 헤어나오질 못할 것 같아 구입은 아직 안 하고 있다. 때로는 UMPC로 어제 놓친 드라마를 즐기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점심시간이 너무 짧다.

업무 특성상 전화를 사용할 때도 많다. 이 때 사용하는 전화는 역시 인터넷전화다. 일반 전화보다 통화료가 저렴해 사용한 지 오래다. 단점이라면 사내 인터넷망이 잠깐이라도 끊어질 경우 전화 역시 끊어진다는 정도. 그 날의 업무보고 역시 이메일로 전송한다. 종이는 거의 안 쓴다. 뭘 쓰지 않으니, 글씨 연습이라도 하지 않으면 악필로 소문난 필체가 더욱 악화될까봐 걱정이다.

퇴근 후엔 뭘 할까 고민하며, 인터넷 메신저나 휴대폰 문자로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도 한다. 메신저 혹은 문자 내용은 대략 이렇다.

"오늘 영화 볼랭? 빵빵칠(007) 개봉했엉~ㅋㅋ"
"그랭?ㅋ 그럼 시간 알아보고 문자 슝~ㅎㅎ""

정말 간단한 대화다. 이런 대화는 맞춤법을 지키면 오히려 대화가 무거워진다. 적당히 "ㅋㅋ" 거려 주는 게 예의 아닌 예의가 돼버렸다. 오늘도 이렇게 휴대폰 문자로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영화관 사이트에 접속해 몇시 영화가 디지털상영인지 확인한다. 데이트를 할 때나 친구와 영화를 볼 때 나는 가장 먼저 이 영화가 몇시 타임에 디지털상영을 하는지 알아본다. 필름보다 화질이 깨끗하지만 워낙 장비가 고가라 모든 상영관에 배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퇴근길&약속장소] DMB방송과 휴대인터넷으로 지루함은 그만~!

차량 혹은 커피숍에서 무선인터넷을 하는 모습은 이젠 흔한 일이 돼버렸다. 사진은 와이브로로 인터넷을 하는 모습이다.
▲ 무선인터넷 차량 혹은 커피숍에서 무선인터넷을 하는 모습은 이젠 흔한 일이 돼버렸다. 사진은 와이브로로 인터넷을 하는 모습이다.
ⓒ 신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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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퇴근길에는 DMB 방송을 즐겨본다. 이건 휴대폰으로 봐야 제 맛이다. USB로 나오는 PC용 DMB장치도 있지만 태생이 모바일 용이기에 화질이 안 좋다. 그렇게 이리저리 채널 변경하다보면 집까지 지루하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

오늘은 약속이 있으니 영화관으로 향한다. 약속시간까지 아직 30분이 남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면 되지만 짧은 시간은 아니다. 가방에서 UMPC를 꺼낸다. 항상 메고 다니는 작은 크로스백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컴퓨터다. 그리고 그대로 인터넷을 해주면 된다.

요즘은 서울 시내 대부분 커피전문점에서 무선인터넷(핫스팟)을 지원한다. 무선랜을 켜고 접속만 하면 바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몇달 전까지는 와이브로도 사용했다. 주 목적은 지하철 내에서 UMPC로 인터넷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인들 특히 친구들이 "오타쿠 같다,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하기에 거의 사용도 못 해보고 3개월 약정만 채운 채 해지했다.

물론 약속 때마다 매번 이렇게 인터넷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UMPC를 매일 갖고 다니지도 않는다. 하지만 보름 이상은 갖고 다니기 위해 노력한다. 언제 어디서 쓸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없는 날에는 PDA가 있으니 걱정없다.

휴대폰과 버스노선번호, 정류장 번호만 안다면 언제 도착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 버스가 언제 도착하지? 휴대폰과 버스노선번호, 정류장 번호만 안다면 언제 도착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 신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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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이 다 됐다. 이렇게 데이트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솔로를 위한 염장질이다. 하이라이트는 나란히 커피를 마실 때 꺼내는 디지털카메라가 되겠다. 최대한 귀엽고 다정한 포즈로 몇장 찍어준 뒤 집에 도착해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동호회에 잘 나온 사진 한 장 올려주고 줄줄이 달리는 '시기질투성' 리플을 보면서 웃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예약한 디지털 영화까지 보고 데이트가 끝나면 버스정류장 표지판에 적혀있는 정류장 번호를 확인한다. 서울·경기권 버스정류장에는 5자리의 정류장 번호가 있다. 이를 휴대폰이나 인터넷으로 조회하면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기다리는 시간을 알 수 있기에 남는 시간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

[귀가&취침전] 드라마는 역시 HDTV야!

선명한 HDTV와, 영화감상용 HTPC, DVD플레이어가 보인다. 아날로그는 찾아 볼 수 없다.
▲ 거실의 모습 선명한 HDTV와, 영화감상용 HTPC, DVD플레이어가 보인다. 아날로그는 찾아 볼 수 없다.
ⓒ 신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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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후 귀가는 버스 혹은 전철에서 퇴근길과 마찬가지로 DMB를 보거나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는 등 그때 그때 다르다. 만일 영화가 늦게 끝나 택시를 타게 됐다면 열심히 MP3 음악만 듣는다. 흔들흔들 택시 안에서 뭘 보는 것은 포기하는 게 눈 건강에 좋다. 짧은 거리이고 카드택시라면 교통카드로 결재한다(실제로는 딱 1번 그렇게 해 봤다. 5000원 미만은 택시 쪽도 카드수수료가 없다고 하니 짧은 거리만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귀가 후에는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TV 삼매경에 빠진다. 거실에 설치한 42인치 HDTV로 보는 화질은 "역시 디지털이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디지털TV에 중간화질은 없다. 아날로그TV처럼 신호가 안 좋으면 화면이 자글자글 거리면서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아예 나오질 않는다. '모'아니면 '도'다. 안 나오거나 깨끗한 화질이거나.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정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날짜별·장소별로 정리한 사진의 용량이 상당하다. 하드디스크 데이터가 날아가기라도 한다면 어떨까? 정말 생각만 해도 무기력해진다. 내가 너무 디지털에 의지했나 싶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잠들기 전 혹시 메일 온 거 없나 침대에 누워 UMPC 들고 이메일함 확인하고 있다.

세상이 온통 디지털, 나는 단지 꼽사리일 뿐

참 많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디지털과 관련된 것들이 우리가 원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세상에 맞춰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가끔은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A·B면 순서대로 들으며 옛 기억을 떠올리고도 싶고, 유선전화를 들고 장시간 통화하며 연애를 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또, 지하철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들고 옆 사람에게 피해줄까 조마조마해 하며 고이 접어 읽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날로그는 향수가 돼 버렸다. 디지털이 지배하고 그와 관련된 기기들과 정보를 듣고 느끼며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빠르게 흘러가는 디지털 세상 속의 '꼽사리' 같은 존재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삭막해 보일 수도 있지만 디지털의 편리함을 적절히 이용하며 즐기면 그것으로 족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미래에는 지금 이러한 풍경도 향수라 생각하며 그리워할 때가 분명히 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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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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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사진, IT기기를 좋아하는 소심하고 철 없는 30대(이 소개가 40대로 바뀌는 날이 안왔으면...) 홀로 여행을 즐기는... 아니 즐겼던(결혼 이후 거의 불가능) 저 이지만 그마저도 국내or아시아지역.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유럽이나 미국,남미쪽도 언젠가는 꼭 가볼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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