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힘들 때마다 네가 자주 들여다본다는 그 사진이야. 네가 그랬지? “결국 행복한 삶이란 슬픔을 아는 자들의 유머러스한 삶”이라고.
▲ 돌발적 상황에서도 기꺼이 이를 즐기는 우리가족/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힘들 때마다 네가 자주 들여다본다는 그 사진이야. 네가 그랬지? “결국 행복한 삶이란 슬픔을 아는 자들의 유머러스한 삶”이라고.
ⓒ 고의숙

관련사진보기


한국이 갑자기 추워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걱정이 앞서는구나. 이곳 중국 역시 갑작스런 추위로 몸도 마음도 웅크려지는 요즘이다. 마음이 추우면 몸은 더 추운 법. 세계적 불황이라는 시점에 하필 대학문을 나서게 된 네가 겪을 한파를 생각하니 멀리 있는 엄마 마음이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다. 따뜻한 밥상이라도 마주하고 가족이 서로 격려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지난 10여년간의 혹독한 시련이 아마 지금의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내는 밑거름이 될 거라 엄마는 굳게 믿는단다. 첫 사회생활을 아르바이트로 시작하는 네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하다 옛일을 떠올리며 이 편지를 쓴다.

네 형을 잃고, 내가 살아야 할 이유였던 너

네 형이 작별인사도 없이 우리를 그렇게 떠나버렸을 때, 이 세상의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불가한 '모든 게 끝'이란 심정이었지. 이젠 더 이상 내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막막한 심정으로 누워있는데 네가 조심스레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니? '아!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아직 남아있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생 최초의 난관이라는 대입준비를 해야 할 고등학교2학년 마지막 기말시험 중에 닥친 형의 사고에 경황없기는 너 역시 마찬가질 터. 부모 눈치까지 보는 이중고를 겪겠단 생각이 그제야 들더구나. 네게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일어나야 해. 어서 일어나. 넌 아직도 엄마란 말이야.' 자꾸 주문을 외웠고, 어느새 내 몸이 주방에 있더라.

곧 넌 고3이 되었고, 가족 잃은 슬픔을 그저 각자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이겨내던 우리에게 또다른 시련이 닥치고 말았지. 우리완 그리 큰 상관이 없을 것처럼 생소하기 만한 IMF가 우리 가족을 이렇게 긴 세월 흩어져 살게 할 줄은 그 땐 상상도 못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큰외삼촌에겐 IMF가 직격탄이었던 거지. 보증을 선 외가 형제 모두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했고, 우리집 역시 경매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넌 대학입시를 치러야 했다.

다행히 아빠 회사의 도움을 얻어 그 집을 다시 구입할 수 있었지만, 네 수능 성적은 수도권 대학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였지. 그런 상황에서 신학대학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테고, 엄마 역시 네 형을 보낸 뒤 삶에 대한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어 선뜻 동의했다. 그러나 넌 그 곳에서 언행불일치의 성직자들에 대해 실망했고, 네 마음은 다시 달라지고 말았지.

재수까지 하면서 가까스로 새롭게 시작한 대학 생활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또다른 시련이 닥치고 말았지. 저 때문에 형제들이 경제적으로 고생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던 큰외삼촌이 중국으로 이주해 다시 사업을 시작하며 우리가 깊숙이 관여하게 됐지.

"절대 실패는 없다"던 큰외삼촌은, 그러나 간신히 새로 찾은 우리집까지 담보해 중국에 차려놓은 공장을 버려둔 채 야반도주하다시피 돌아오고 말았다.

"엄마 그래도 지금 우린 행복한 거예요"

삼촌네 다섯 식구에 우리까지, 가족은 여덟로 늘었는데 수입은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 과감히 학교 대신 일을 선택한 네 결단을 엄마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이미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곧바로 휴학계를 내고 특례병생활을 시작한 거 말이야.

"엄마, 어차피 해야할 군생활이고,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요. 보충역 판정 받았을 때 좀 실망이 되기도 했었는데 이때를 위해 예비해 주셨나 봐요. 제대로 활용해야죠."
"집에서 가까운 공익요원도 있는데 하필 그 먼 시화공단, 환경도 열악한 화공약품공장이야. 넌 환자잖아. 그건 말도 안 돼. 어른들이 해결할 거니까 넌 공부나 해."
"수치 좋아지고 있잖아요. 젊은 놈이 맨날 건강만 염려하면서 살 순 없어요. 한 번 해볼게요. 혹시 알아요. 그게 약이 될지? 그리고 이건 군대나 마찬가지예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죠. 공익근무라고 더 편하지도 않대요. 공익보다 월급도 훨씬 많은데 조금이라도 생계에 보탬이 되면 좋잖아요."

가족 모두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여덟 식구의 생계가 막막했으니, 병원 치료 중임에도 불구하고 네 결정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단다. 건강까지 담보하면서 노동자로 일하는 널 혼자 두고 다시 우리 모두는 중국으로 이주하고 말았으니, 그 때의 결정이 비겁한 것은 아니었을까 늘 마음 한 편에 짐으로 남아있단다.

네 취업을 시발점으로 용기를 내서 우리는 생활 현장으로 뛰어들었지. 아빠는 택시기사, 외삼촌은 노점상, 외숙모는 파출부, 엄마는 애보기로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더구나.

닷새가 멀다 하고 다가오는 이자날에 여덟 식구 생활비는 카드까지 동원해도 역부족이었다(이 카드가 결국 발목을 잡아 버렸지만). 수시로 비어버리는 쌀독을 바라보는 엄마 마음은 참으로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단다. 

그 때 엄마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준 사람 역시 너였다는 거 모르지? 두 시간이 넘게 지하철을 갈아타며 일터에서 지쳐 돌아온 네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내가 눈물을 보이자 내 어깨를 주무르며 하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엄마, 지금 우린 행복한 거예요.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보통 이런 형편에선 서로 원망하며 싸움만 하다가 원수지간으로 풍비박산이 된다는데, 우리는 비좁은 집에서 함께 복작거리면서도 오히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잖아요. 삼촌이나 엄마도 그렇지만 난 아빠가 참 존경스러워. 이 상황에서 어떻게 묵묵히 다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나도 꼭 아빠 같은 사람이 돼야지~."

그랬단다. 엄마의 결정으로 큰삼촌을 돕기로 했으니 한 번쯤 원망도 할 법한데 오히려 아빠가 먼저 택시기사로 나서면서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지. 그런데도 엄마는 아빠의 그 넉넉한 품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거든. 아빠의 진가를 네가 깨닫게 해준 셈이야.

게다가 엄마는 네가 한없이 착하기만 한 아빠와 과욕(?)을 부린 삼촌, 그리고 그 삼촌을 끝도 없이 뒷바라지하는 엄마를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다니 얼마나 고맙고 대견하던지. 새로운 용기가 생기더라.

"졸업했는데 어떻게든 제 힘으로 살아야죠"

깊고 긴 IMF 터널을 지나오면서 네 대학 졸업장만 손에 쥐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는데 아직 행운의 여신은 다가오지 않았나보다. 미국발 금융위기 소식이 날아들면서 네 취업에 이상이 생기면 어쩌나 염려되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으니 설마 했는데 결국은 설마가 이번에도 사람을 잡아버렸다.

"면접볼 기회라도 한번 왔으면 좋겠어요. 매번 탈락 메일을 받으니 기분이 좀 그러네요."

전화선을 타고 들리는 목소리가 예전과 달리 힘이 없다 했더니 끝내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는구나. 그런 네게 아무 힘도 되지 못해 엄마 마음이 한없이 안타깝기만 한데 곧, 예의 그 씩씩한 음성으로 조심스럽게 말했지.

"그래서 말인데요.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요. 하루 대여섯 시간 정도만 하면 되니까 취업준비에 그다지 문제되지 않을 거 같고, 이제부턴 부모님 돈 안 쓰려고요. 졸업도 했는데 어떻게든 제 힘으로 살아야죠.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나중에 꼭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네 대학졸업이 삶의 목표인양 하던 엄마에게 근사한 직장에 취업했다는 소식 대신 아르바이트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겠다는 말을 하기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심정을 헤아리니 또 마음이 아프구나.

엄마는 이번의 네 결정에도 여전한 응원을 보낸단다. 그러니 너무 미안해 하지마. 주눅 들지도 말고. 친구들 모두 부모 보호 아래 학창 시절을 보낼 때, 넌 오히려 어른들에게 용기를 주며 혼자서 묵묵히 그 어려움을 이겨냈잖아. 그 때 엄마가 얼마나 고마웠는데. 지금은 '청년실업'이란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을 만큼 대다수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이니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아들, 잘 할 수 있지? 우린 오뚝이 가족이잖아

갑자기 닥친 고난 앞에서 먼저 행동한 네 용기에 힘입어 우리 가족 모두는 똘똘 뭉쳐 서로 힘닿는 대로 어깨를 빌려주며 최선을 다했다. 이제 그 고통을 웬만큼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다시 찾아온 세계적 금융위기는 이 곳 삼촌과 이모의 공장에도 또 다시 적잖은 어려움을 주는구나. 

하지만 이런 돌발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지난 10년 동안 우리 가족이 모두 열심히 체득했으니 앞으로 더 힘든 상황이 닥친다 해도 우리 가족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 그치?

예전 그 막막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쌀독에 쌀이 비는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얼마나 다행이니. 용기 잃지 말고 힘내. 속이 비면 더 춥기 마련이야. 귀찮아도 밥 든든히 먹도록 하고 감기 조심해라.
                                                    
중국 칭따오에서 엄마가.

[주요기사]
☞ "마르크스로 돌아갈 때... MB "나홀로 신자유주의" 파국맞을 것"
☞ "여당 실세 의원, 국제중 가결 외압" "공정택 특별위" 쟁점 부각
☞ 알바면 어때, 첫 직장생활 주눅들지 마라
☞ 무식하고 처량맞은 이 노래의 중독성
☞ [엄지뉴스] 연탄 1500장이 도로에... 저걸 어쩌나!
☞ [E노트] 전여옥 "MB 없었다면 정권교체 불가능"

덧붙이는 글 | [가족에게 길을 묻다] 응모 글입니다.



태그:#가족, #실업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에 살면서 오블에 <고단한 삶의 놀이터>란 방을 마련하고 타국살이의 고단함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블로그 운영한 지가 일 년 반이 되었으나 글쓰기에 대해 늘 자신이 없어 좀 더 체계적이고 책임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시민기자 활동을 신청합니다. 주로 사는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주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