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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에 둘러싸인 고등학생 한모양과 박모군. 이들은 밖에서 '석방'을 외치다가 잡혀왔다.
전경에 둘러싸인 고등학생 한모양과 박모군. 이들은 밖에서 '석방'을 외치다가 잡혀왔다. ⓒ 송주민

 

얌전떨며 글을 쓸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나간 '기자'이기 전에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철저히 유린당한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객관성 운운하지 말라. 적어도 내가 두 눈 뜨고 직접 본 현실은 이렇게 솔직하고 가감 없이 쓰는 것이 더 객관적이니까. 지금부터 '포로'가 된 100여명 연행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여러분께 들려주고자 한다.   

 

나는 28일 자정부터 새벽 1시경까지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전경들의 방패막에 둘러싸인 100여명의 힘없는 민초 중 하나였다. 1시간 가까이 '포로'와 같이 갇혀서 남대문 경찰서장의 "정상적인 시민은 도로로 다니지 않는다. 작전을 시작하겠다"는 음성을 들으며 언제 뛰어들지 모를 전경의 방패를 보면서 공포감에 휩싸인 사람 중 하나였다.

 

자진해산 합의... 그런데 갑자기 둘러싸고 '강제 연행' 외쳐 

 

어쩌다가 경찰들에 의해 빙 둘러싸이게 됐냐고? 상황은 이렇다. 이날도 '촛불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은 또 거리로 뛰쳐나갔다. 도로를 점거하고 '거리 행진'을 통해 민주시민의 동참을 요구했고, 쇠고기 협상 무효를 외쳤다.

 

집회와 시위에는 '초짜'인 일반 시민들이 이끄는 가두시위다 보니 이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우왕좌왕'이었다. 을지로 2가와 명동 한복판에서 벌어진 경찰의 진압작전에 의해 점점 수가 줄어든 시민 대오는 서울 시청 앞에서는 300명 정도로 급격히 줄었다.  

 

시청 앞 3거리에서 다시 전경의 진압작전이 시작되었고, 시민들은 도로를 빠져나와 인도로 자리를 옮겼다. '평화시위 보장하라'며 강제적인 진압을 항의하던 중 고영석(36)씨의 "오늘 우리들이 외친 목소리는 충분히 전달됐을 거라 생각한다. 여기서 해산하고, 혹시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은 인도를 통해 청계광장으로 이동하자"는 의견에 합의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방패를 든 경찰이 시민들을 둘러쌌고, 프라자호텔 앞에서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시민들은 경찰책임자에게 "자진해산할 예정이고, 인도를 통해 청계광장으로 이동할테니 길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고, 경찰은 이를 받아들여 시청 앞 쪽으로 길을 터주며 이동을 허락했다.

 

그러나 경찰이 시민들을 다시 에워싼 것은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서다. 인도를 통해 시청 앞 광장을 지나던 100여명의 시민들을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경들이 다시 방패를 들고 에워싼 것이다. 그것도 도로가 아닌 시청 앞 광장 한복판에서 말이다.

 

처음에 시민들은 "곧 지나가도록 해 주겠지", "설마 자진해산하는 시민들을 어떻게 하기라도 하겠어"라며 다소 여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경찰에 둘러싸인 시민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고, '광우병 대책회의' 장기욱 간사는 "방금 전에 자진해산과 인도를 통한 청계광장 이동을 경찰과 합의했다"며 책임자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남대문 경찰서장의 "기자들은 나오라. 계속 남아있을 경우 장비손실 등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순간 시민들의 표정은 굳어버렸다. 한 시민은 "기자를 내보내고 우리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며 울먹였고, 처음 집회에 참여한 서울대 학생 3명은 "<오마이뉴스> 기자님은 남아 주실 거죠?"라고 말했다.

 

전경들에 둘러싸여 전쟁에서 항복한 포로와 같이 쪼그려 앉아있던 시민들은 계속되는 남대문 경찰서장의 낭랑한 목소리에 점차 공포감에 휩싸여갔다. 남대문 경찰서장은 "여러분들은 불법 집회를 했다, 사전에 해산하라고 말했는데 전혀 말을 듣지 않고 불법 집회를 했다"며 "정상적인 시민들은 차가 다니는 길에 다니지 않는다. 곧 연행 작전을 시작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타임머신 타고 80년대 와 있는 기분"

 

언제 뛰어들지 모를 '방패'를 보며 웃음을 잃은 서울대 학생 홍예지(22)씨는 "이럴 정도로 잘못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워낙 들려오는 소리가 흉흉해서 두렵다"며 "우리 사회의 '비민주성'에 대해 막연히만 생각을 해 왔지만 이런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국민대책회의 장기욱 간사는 "청계광장으로 평화적으로 이동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도로도 아닌 광장 한가운데 갇혀있는 시민들을 어떻게 납득해야 하냐"며 "해산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는데 이렇게 가둬놓고 강제 연행을 한다면 분명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천 구월동에서 온 주부 길미경(46)씨는 "80년대 군부독재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서울 시청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며 "남편과 3명의 자녀가 엄마가 어디 갔는지도 모를 텐데 이 상황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신당동에 사는 유경수(27)씨는 "경찰의 폭력진압 소식을 들은 후 안 나올 수가 없어서 나왔다. 과거에만 존재한줄 알았던 이런 식의 탄압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리나라가 살기 좋다는 생각을 얼마 전까지는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20대 여성은 "무섭고 두렵다. 그리고 슬프기도 하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렇게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상황을 우리 손으로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들 울먹이며 "미성년자 석방하라"

 

 경찰의 연행에 무서워하며 강제 집행을 거부하고 있는 두 학생
경찰의 연행에 무서워하며 강제 집행을 거부하고 있는 두 학생 ⓒ 송주민

경찰은 둘러싼 방패 밖에서 촛불을 들고 "석방해 달라"고 요구하는 고등학생들까지 잡아넣기 시작했다. 미성년자인 한아무개(18)양과 박아무개(19)군은 갇혀 있는 시민들 앞에서 촛불을 들고 "시민들을 풀어 달라"고 외치고 있던 중, 졸지에 경찰의 물리력 행사에 의해 방패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한양은 눈물을 흘리며 "풀어주세요"라고 외쳤다. 박군도 "우리는 미성년자예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며 울먹였다. 이들이 연행에 응하지 않자 결국 10여명의 경찰이 투입하여 울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강제로 끌고 갔다.

 

순간, 밖에 있는 시민들도 눈물을 흘렸다. 한 주부는 "청소년은 풀어줘야 되는 것 아니냐"며 눈물을 글썽였고, 끌려가는 청소년과 함께 온 친구 아무개(16)군은 "사기당하는 기분이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는 존재들이냐"며 고개를 떨궜다. 취재를 하던 기자들도 "힘내라. 우리가 이 상황을 다 전달해 주겠다"고 외쳤다.

 

결국 방패에 갇혀있던 시민들은 전원이 다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됐다. 전경버스에 올라 경찰서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밖에서 이 상황을 지켜본 시민들은 "힘내세요", "묵비권, 묵비권"을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고등학생 김아무개(19)양은 "정말 화가 난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며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정부 여당의 의도가 결국 전두환 때로 돌아가자는 것 같아서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은평구에 사는 김승호(52)씨는 "전에 시위나갔다가 연행될 때는 시민들 손에 화염병과 몽둥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촛불'만 들고 있는데도 이런 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민주주의의 후퇴다"라며 "많은 시민들이 속으로는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더 많은 울분이 터져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비가 오는 시청 앞을 떠나지 않았다. 29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시민은 다음과 같이 외치며 계속해서 촛불을 들었다.

 

"우리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또한 불편한 것은 참아도 부당한 것은 못 참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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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문화제#강제 연행#가두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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